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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섹스토이는 ‘반려가전’이다”···해방촌 ‘혜영 언니’의 4년 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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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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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용품 전문점 ‘피우다’ 강혜영 대표가 4년 전 가게를 오픈하며 겪었던 좌충우돌 에피소드는 밤을 새워 이야기해도 모자르다. 사진| 박민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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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토이는 ‘반려가전’이다.”

여성들이 당당히 ‘성의 향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섹스 라이프스타일숍을 표방하는 ‘피우다’의 강혜영 대표는 ‘혜영 언니’라는 닉네임으로 각종 미디어로 대중과 성 담론을 이어가고 있는 유명 인사다. 그는 코로나19 이전, 1년에 한 번씩 100명을 모아 성교육 워크숍을 떠나기도 했으며 홈페이지에 1:1 온라인 성 상담 창구를 열어두고 있다. 그는 오프라인으로도 밝고 유쾌하게 성 담론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서울 용산구에 ‘피우다’를 열었다. ‘꽃처럼 내 몸을 피우다’라는 의미를 담았다.

■섹스토이숍, 매출보다 고객 보호가 우선

지난 8일 찾은 ‘피우다’는 코로나19 수도권 거리두기 4단계 격상을 앞두고 온라인으로 사전 예약한 고객의 방문만 받고 있었다. 해방촌 카페에 놀러왔다가 재미 삼아 들렀다는 두 명의 여성 고객은 하릴없이 발길을 돌리는 모습이다.

“성인용품점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다고 상상해보세요. 생각만해도 끔찍해요. 당장 뉴스거리가 될 수도 있고 주인이나 고객이나 죄인도 그런 죄인이 없을 거예요.”

강 대표는 지난 해 이태원 클럽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던 당시를 떠올렸다.

“이태원 게이바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을 때 여론을 몸소 체험했어요. 보통 클럽과 차이가 없는 곳인데도 게이 클럽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의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잖아요? 저희도 성인용품숍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이런 상황에 더 보수적으로 대처할 수 밖에 없어요. 매출보다 중요한 것이 고객 보호거든요.”

그간 성인용품숍을 운영하며 겪었던 우여곡절을 이야기하자면 ‘밤샘 토크’도 모자라다. 강 대표는 어린 자녀로 둔 부모의 항의 전화로 첫 눈물을 쏟았단다.

“‘우리 아이가 그 가게 앞을 지나가면서 뭘 배우겠느냐’고 ‘수치스러운 일을 한다’며 호통을 쳤어요. 저는 ‘아이가 영화를 볼 때 조금이라도 야한 장면이 나오면 못 보게 하는 것은 성교육에 좋은 솔루션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씀드렸죠. ‘성은 우리 생활에 중요한 일부인데 분위기가 밝고 전문적인 성인용품점을 본다면 성에 대해 수치심이 없이 자랄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그렇게 말을 잘 하면 우리 아이에게 성교육을 해주던가!’라고 소리치더라고요.”

강 대표는 아이를 데리고 오면 성교육을 해드리겠다고 응수했다. 미성년자라 매장 안에 들어올 수 없으니 가게 앞 벤치에 앉아서라도 해보겠다고 했더니 ‘말이 안 통한다’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런 취급까지 받아야 하나 싶은 마음에 눈물이 울컥 나왔다. 매장 안으로 들어와 제품을 구경하다 다짜고짜 성 희롱 발언을 던지는 남성도 있었다.

“구경하던 사람이 갑자기 제게 ‘너도 이런 거 해주면 좋아하냐’고 대뜸 물어보는 거예요. 저는 속으로는 바들바들 떨었지만 이런 때를 대비해서 매뉴얼을 만들어놨고 수없이 연습했거든요. ‘여기는 섹스토이를 파는 곳이지, 성을 파는 곳이 아니다. 내가 개인적인 성생활을 이야기할 의무는 없다. 은행가서 은행원에게 돈 좋아하냐고 묻냐? 편견을 갖고 와서 일하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면 안 된다’고 했더니 막 화를 내며 밖에 있던 화분을 발로 차 박살내고 가버렸어요.”

올해로 ‘피우다’ 오픈 4주년을 맞았다. 강 대표는 “대중의 성 인식은 더디지만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고 체감했다.

“성인용품점하면 까맣게 선팅된 창문에 음침하고 허름한 가게가 연상되지 않나요? 성인용품 점포가 카페처럼 대로변에 나와 있다는 것 자체가 변화라면 변화지요. 지금이야 그런 일이 없지만, 여성 고객께 기구 설명을 하다가 ‘클리토리스’라는 단어가 나오면 ‘그게 뭐예요?’ 되묻는 분들도 부지기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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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영 대표는 성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아직 갈 길이 멀게 느껴지지만 이따금 변화도 감지한다. 그는 가장 시급한 것으로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위한 올바른 성교육을 꼽았다. 사진| 박민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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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담론, 더디지만 한 발자국씩

어느날 70대 부부가 멀리서 매장을 찾아와 그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어머니께서 뒤늦게 클리토리스와 오르가즘에 대해 알게 됐다고 하셨어요. 그러자 자신의 며느리가 생각났대요. ‘아들에게 제대로 성교육을 못해주고 장가를 보내 며느리에게 미안하다. 며느리도 나 같은 삶을 살까봐 걱정된다. 섹스토이를 사주고 싶은데 조심스럽다’고 하셨죠. 결국 본인들이 쓰실 섹스토이를 신중하게 고르시게 한 뒤, 며느리에게는 여성의 몸 관련 에세이를 먼저 권하는 게 좋겠다고 상담해 드렸어요.”

섹스토이 사용 후기를 스스럼 없이 말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여성용 섹스토이를 우스갯소리로 삼아 ‘전자 서방’이라 부르기도 한다. 남자친구가 여자친구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긴 출장을 앞둔 남성이 여자친구에게 섹스토이를 사주겠다고 찾아오기도 했어요. 또 어떤 분은 여자친구와 좋아하는 포지션이 있는데 ‘내 팔이 너무 짧아서 5㎝ 정도만 연장해줄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하다’며 구체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어요.”

강 대표는 고객을 대상으로 성적 고민을 들어주는 온라인 채팅창도 운영 중이다. 여성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은 오르가즘에 관한 것이다.

“여성들의 절대적 고민 1위는 ‘삽입으로 오르가즘을 못 느낀다. 내 몸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거예요. 오르가즘이 표현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 달라요. 오르가즘은 여러 가지 자극의 복합체이기에 어떤 방식으로 느끼든 좋고 나쁜 게 없어요. 나에게 맞는 즐거움을 찾는 것이 중요하고, 성적 욕구가 없다면 억지로 할 필요도 없는 거예요. 결국 1순위는 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주체성이죠.”

누군가는 섹스토이의 강력하고 지속적인 자극에 만족하다 보면 실제 파트너와의 섹스가 주는 즐거움이 반감되는 건 아니냐는 의문도 던진다.

“생식기의 신경은 혀보다 회복력이 빨라요. 예를 들어 매운 음식을 즐겨 먹다가 한 달간 매운 것을 끊고 다시 먹게 되면 엄청 맵다고 느끼거든요. 생식기의 신경은 자극이 닿았을 때 그 상태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잠깐의 휴식으로 곧 원상태로 회복되거든요. 섹스토이로 인해 실제 섹스가 재미없어질 거란 걱정은 기우라고 봐요. 또한 섹스토이는 혼자 즐기려는 용도가 아닌, 만족스러운 섹스를 도와주는 보조 역할이 더 커요.”

성에 대한 편견이 미세하게 공기처럼 흩뿌려진 사회에서 모든 것을 한 번에 바꿀 솔루션은 없다. 강 대표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만큼은 제대로 된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 세대는 ‘성은 곧 수치스러운 것’으로 학습됐어요. 내 몸을 부정적으로 인식한다면, 내 삶에 주체적일 수 있을까요? 젠더 갈등의 해결 역시 상대방의 성을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해요. 생리의 불편함, 원치않는 순간의 발기 같은 차이점에 대해 솔직히 목소리를 내고 충분한 대화가 따라온다면 서로에 대한 공감은 커지지 않을까요?”



이유진 기자 88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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