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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전문]‘김경수 수사’ 허익범 특검 인터뷰 “댓글 120만 개 조사…진실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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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대통령 선거를 전후로 댓글 여론을 조작한 혐의로 기소된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54)에게 대법원이 21일 유죄를 확정했다. 2018년 6월 7일 임명된 허익범 특별검사팀도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게 됐다. 법원에 제출된 증거목록만 1551개에 여론 조작에 동원된 댓글 120만 개, 조작에 활용된 포털 아이디 3027개 등의 통계로 인해 “디지털 증거의 교본이 된 특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21일 동아일보는 ‘문재인 정부 1호 특검’이자 최단 기간(60일)만에 수사를 종료하며 ‘드루킹’ 김동원 씨와 김 전 지사의 유죄를 이끌어낸 허익범 특별검사(62·사법연수원 13기)와 서울 서초구 특검 사무실에서 2시간 가량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소감은.

“드디어 김 지사와의 지난한 진실 싸움이 끝났다. 2018년 6월 27일 수사를 개시해 8월 24일 기소했다. 이후 3년간 재판에서 유무죄를 다투다보니 디지털 증거에 심혈을 기울였다. 김 지사 측은 혐의를 전면 부인했기 때문에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입증하라고 요구했고, 그때마다 증거를 다시 뒤져 입증했다. 김 지사 측이 혐의에 대해 ‘이런 사실은 없다’고 할 때마다 김 지사 측이 내세운 주장보다 2배 많은 디테일을 가지고 맞서야 했다. 텔레그램 대화창을 수없이 봤다. 힘든 여정이었다. ‘이제 그만 해도 되는구나’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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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서울 서초구 특검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응한 허익범 특별검사.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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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선거운동의 대가로 관직을 제공하는 것이 불법이라는 특검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큰 의미다. 후보자가 특정되지 않았더라도 미래에 후보자가 될 사람이 선거운동을 위해 이익(센다이 총영사직)을 제공했을 때 공직선거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는데, 대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그렇지 않으면 후보자 등록만 안 되면 매관매직을 해도 합법이라는 말이 된다.”

―김 지사가 2018년 지방선거를 돕는 대가로 드루킹 측에 총영사직을 제안한 것이냐.

“대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렇다고 본다. 기록을 보면, 김 지사 측이 드루킹에게 일본 대사직을 줄 수는 없다고 하자, 드루킹 공범이 드루킹에게 텔레그램을 한다. ‘현재 하고 있는 뉴스 작업을 모두 중단하고 향후 지방선거와 관련한 작업도 하지 않겠다는 뜻을 김경수에게 통보하자’는 내용이었다. 이후 드루킹 측이 오히려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를 비판하는 댓글 조작까지 하며 위협적인 ‘실력 행사’를 한다. 그러자 김 지사 측이 센다이 총영사직을 제안한다. 이는 2017년 대선 뿐 아니라 2018년 지방선거까지 도움을 받기 위해 드루킹을 달랜 것이라고 본다.”

―진실을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는 말은.

“수사 초기부터 지금까지 ‘오직 증거가 가리키는 방향으로만 가겠다’는 입장이었다. 내 역할은 증거가 하는 말을 재판부에 전달하는 것. 증거가 ‘아니다’라고 말하면 주장하지 않았다. 혐의를 드러내는 진술이 있어도 객관적 증거, 디지털 증거가 없으면 주장하지 않았다. 법리적인 부분은 조금 달라질 수 있었지만, 결국 사법부는 댓글 여론 조작과 관직 제안 등 기본적인 사실관계는 모두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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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서울 서초구 특검 사무실에서 기록을 검토하는 허익범 특별검사.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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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김 지사가 킹크랩(댓글 여론 조작 자동화 프로그램) 시연을 봤다고 확신한 순간은.

“드라마 같은 한 달이었다. 수사가 개시된 2018년 6월 27일부터 7월 23일까지도 킹크랩 시연을 봤다는 진술만 있지, 증거가 없었다. 언젠지도 몰랐다. 그런데 김 지사가 처음 파주 드루킹 사무실에 왔을 땐 밥을 먹었다는 진술이 있었다. 김 지사 운전기사도 밥을 먹었을 것 같아 카드 내역을 조회했다. 2016년 11월 9일 오후 7시경 드루킹 사무실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은 기록이 나왔다. 그래서 11월 9일 드루킹 측 문서를 살펴보니 ‘킹크랩 브리핑 자료’가 나왔다.

김 지사가 국회에서 출발했을 테니 법원의 영장을 받아 차량 기록을 조회했다. 역시 11월 9일 오후 5시 43분경 국회를 출발했다고 나왔다. 운전기사가 파주 드루킹 사무실 근처에서 밥 먹은게 7시 20분경이다. 마지막으로 드루킹 측 진술은 11월 9일 김 지사에게 사무실에서 킹크랩을 시연했다는 것인데, 그 시간에 킹크랩을 작동시키기 위해 오후 8시 7분부터 23분까지 접속한 로그기록이 나왔다. 이걸 밝혀낸 게 2018년 8월 중순이었다. 며칠 뒤 김 지사를 기소했다. 긴박한 한 달이었다. 김 지사 측은 드루킹 측이 준비한 닭갈비를 먹느라 시연을 못 봤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중요한 쟁점이 아니었다.”

―수사 과정의 난항은.


“자원이 정말 부족한 상황에서 부단히도 노력했다. 디지털 증거가 핵심인 사건은 증거물의 암호를 풀고 분석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장비가 필요하다. 현행법으로는 검찰이나 경찰에서 장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고 돼 있다. 그래서 기관에 장비를 빌려달라고 요청하면 ‘우리도 쓰고 있다’며 쉽게 빌려주지 않았다. 포렌식 장비 하나에 2, 3억 원씩 한다. 데이터를 분석하려면 분석툴 프로그램도 있어야 한다. 대표적인 게 ‘인케이스’인데 5000만 원 정도 한다. 이건 못 구해서 한 급 떨어지는 프로그램을 썼다. 향후 다른 특검이 출범한다면 좀 더 지원이 필요하다.”

―특검팀 짜서 출범하는 것도 어려웠다던데.

“향후 특검에겐 팀을 구성할 수 있는 재량권을 더 줘야 한다. 당시 문재인 정부 지지율도 높은 상황에서 검사가 현 정권 핵심 인사에 대한 특검에 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검사 13명을 파견 받을 수 있는데, 법무부와의 협조가 쉽지 않았다. 추천한 검사 전원을 파견해줄 수 없다는 답변도 받았다. 수사 개시 전에 미리 파견 검사를 받아서 함께 기록을 검토하고 토론해야 하는데, 수사 개시 당일에 파견을 보내주기도 했다.”

―여권의 핵심 인사를 수사한 부담도.


“그렇다. 특정 정당이나 외부기관에서 매일 원색적인 비난이 나왔다. 난 아들이 없고 딸만 둘인데 내가 아들을 어딘가에 청탁해서 부정 취업시켰다는 의혹도 나왔다(웃음)”

―안타까운 사건도 있었다.

“2018년 7월 23일 고 노회찬 의원이 유명을 달리했다. 당시 드루킹의 계좌를 추적하다가 노 의원 측에 송금된 내역이 나왔다. 7월 23일 여기까지 수사됐다는 수사관의 보고를 받았는데, 돌아가셨다는 기사가 나왔다. 소환 조사한 적은 없다. 자금 흐름을 추적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한 사람이 떠나간 것에 대해…(침묵) 개인적으로 그 분을 존경했다. 워낙 청렴결백하게 살았으니 실수를 용납하지 못해 선택을 하셨나 생각했다. 이후 3번 정도 조용히 노 의원 묘지에 다녀왔다.”

―같은 날 모친이 세상을 떠나셨다.

“7월 23일, 같은 날 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99일 후였다. ‘특검을 그만둬야 하나’ 생각하며 혼자 사무실에서 울었다. 원래 낙상사고로 누워 계시다가 돌아가셨다. 특검팀이나 외부에 모친상을 알릴 수가 없었다. 개인적인 조사이고, 당시는 공직 수행 중이었기 때문에. 밤 11시까지 근무하고 상갓집에 가서 밤을 새고 다시 새벽 6시에 특검 사무실에 출근해 일을 했다. 발인하고 장지로 갈 때까지 그렇게 했다. 매달 어머니 산소에 간다. 며칠 뒤 기일이라 어머니랑 이야기하러 찾아뵐 것이다.”

―특검 수사 연장 신청은 왜 안 했나. 60일 만에 종료된 최단 특검이었다.

“두 가지 이유다. 2018년 8월 25일이 수사 종료기간이었다. 문 대통령, 김정숙 여사와 드루킹, 김 지사의 연관성이 남은 의혹이었다. 하지만 이때까지 나온 단서 중 객관적 증거는 없었다. 방조한 단서도 없었다. 오직 있는 건 ‘외곽조직 중 드루킹이라는 사람이 있다’는 걸 김 지사가 문재인 당시 후보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는 진술, 그리고 드루킹의 대외 선거조직인 ‘경인선(경제도 사람이 먼저다)’과 관련해 김 여사가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지지자들과 악수를 나누며 ”경인선도 가야지. 경인선에 가자“고 말하는 영상이 다였다. 더 적합한 객관적 증거가 있었다면 수사 연장을 신청했을 것. 두 번째 이유는 특검 인사·조직 관리의 어려움도 있었다.”

―1심 재판 때 정말 바빴을 것 같다.

“드루킹, 김 지사 등 총 12명을 기소했다. 전방위 총력전을 할 때. 동시에 12명에 대한 재판에 참석해야 하니 1주일에 3번 재판을 하기도 했다. 드루킹을 증인으로 불러 신문할 때는 오전 10시에 시작해 밤 11시 30분쯤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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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서울 서초구 특검 사무실 문패 옆에 선 허익범 특별검사.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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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과정에서의 가장 중요했던 것은.

“디지털 증거를 법원에서 증거로 인정받는 것이다. 증거가 오염되지 않았다는 무결성, 동일성, 원본성을 입증해야 비로소 텔레그램 대화 하나가 법원에서 증거로 인정된다. 수사단계에서 증거를 수집하며 그때그때 이미징을 뜨고 ‘원본과 동일하다’는 증거를 남겨놓은 것이 ‘신의 한수’였다. 수사 기간 동안 24시간 가동된 포렌식팀에게 고맙다.”

―2심에선 댓글을 전수조사했다.

“지난해 7월 20일 새 재판부에서 ‘댓글을 전수조사 하라’고 석명요청을 내렸다. 김 지사 측이 ‘웃음’ 기호나 ‘ㅠㅠ’ ‘ㅇㄱㄹㅇ’ 등 자음이나 모음만 적힌 댓글을 빼야 하고, 오히려 드루킹이 문재인 당시 후보를 비난하는 방향으로 ‘역작업’을 해서 김 지사와 공모가 아니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한 특검팀 10명이서 한 달 동안 120만 개의 댓글을 하나하나 조사했다. 김 지사 측 주장대로 자음으로 된 댓글을 빼더라도 댓글 90만 개를 전수 조사한 결과 문재인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댓글은 6300여 개로 전체의 약 0.7%였다.”

―포렌식 자격증까지 땄다고.

“이달 29일 합격 여부 결과가 나온다. 디지털 증거가 핵심인 재판인데, 재판에서 김 지사 측이 디지털 증거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면 법정에서 즉각 반박하지 못하고 ‘전문가에게 의견을 구해 서면으로 답변하겠다’고 하는 것이 싫었다. 대법원에서 사건을 파기환송해서 다시 재판을 해야할 수도 있으니 우리가 직접 포렌식 자격증을 따자고 했다. 다들 하자고 했다. 법무부에서 유일하게 인증하는 포렌식 자격증은 한국포렌식학회에서 발급하는 자격증이다. 거기 시험을 봤다.”

―향후 특검에게 조언을 한다면.

“특검의 자세다. 어떤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외압이나 정치적 의도가 있으면 증거를 무시하게 된다. 그럼 특검으로서 자격이 없는 것.

둘째는 결국 증거를 재판부에 얼마나 완전무결하게 분석하고 제시하느냐의 싸움이다. 그게 수사와 재판의 당락을 결정한다. 예전엔 인적 증거인 진술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물적 증거가 8, 인적 증거가 2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 관련 범죄 사건이었다.

“민의의 대표는 국회의원(당시 김 지사는 국회의원이었다.)이고, 민의를 대표하라는 게 선출 공무원이 담당할 기본적인 책무다. 그 민의가 그대로 반영되는 게 선거다. 그래서 선거의 공정성이 중요하고, 민의에 해당하는 여론이 제대로 전달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요즘은 인터넷 여론의 힘이 크다. 그런데 이 여론을 조작한 범죄다. 절대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는 범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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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서울 서초구 특검 사무실에 모인 특검팀. 왼쪽부터 하상민 증거분석관, 정수진 특별수사관, 이준혁 특별수사관, 허익범 특별검사, 이 언 특별수사관(공판실장), 노은호 특별수사관, 김지원 특별수사관, 장영주 특별수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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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팀에 하고 싶은 말.

“정말 고생 많이 했다. 증거 수집이나 재판부에 제출할 의견서 작성 과정에서 내가 참 닦달을 많이 했다(웃음). 주말이고 평일 야근이고, 밤을 새워서라도 재판부에 제출할 의견서의 기한을 지켰다. 근거가 빈약하면 세 번이고 네 번이고 고쳤다. 이를 위해 증거를 찾고 또 찾고. 참 미안한데, 모두 뜻을 모아 수행해준 특검팀 전원에게 고맙다.”

―향후 계획은.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못 보냈다. 수사할 때 하루에 세 시간밖에 못 잤다. 공판 과정에서도 집중 심리할 때는 두 세 시간만 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 때문에 1박 여행은 못하더라도 당일치기로 가족들과 바람을 쐬고 오고 싶다. 살도 많이 빠졌다. 지금 61kg이더라. 피자 같은 것도 좀 먹어야겠다. 내일 모레 7월 23일이 어머니 돌아가신지 3주년이다. 돌아가신 뒤로 한 달도 빼놓지 않고 매달 어머니 아버지 묘소를 갔다.”

박상준 기자 speakup@donga.com
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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