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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전시’ 뒤엔 최저임금 노동자 [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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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무기계약직

“17년 일했는데 처우 그대로”

문체부는 “관련 예산 빠듯”

[경향신문]

경향신문

국립중앙박물관 무기계약직 노동자 강해원씨가 언론 공개 행사 당일인 지난 20일 박물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붉은색 조끼를 입은 이가 유인물을 들고 다가왔다. 손에 건네곤 “꼭 읽어달라”고 말한다. “이건희 명품 전시 뒤에는 9년을 일해도 최저임금인…”이란 문구가 인쇄된 A4 용지다. 상단 이미지는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이건희 기증작’ 중 최고 화제작이다.

20일 오전 8시50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이 개최한 이건희 기증작 언론 공개 행사에 가던 참이었다. 본관 앞 광장에서 유인물을 전한 이는 강해원씨다. 박물관에서 중국어 통역가로 일하는 무기계약직 노동자다. 행사 소식을 듣고, 무급 선전전과 1인시위에 나왔다고 했다.

“2005년 입사할 때 기본급이 150만원이었어요. 17년 차인 올해 203만~204만원입니다.” 시급으로 따지면 최저임금 수준이라고 했다.

그는 “17년 사이 부동산 값이 지금 이렇게 뛰었는데, 맞벌이하는 와중에도 나아지지 않았다”며 “ ‘나라에서 운영하는 기관인데, 참고 일하다 보면 잘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17년이 지나도 처우는 똑같아 답답했다. 제 생활도 17년 전 그 자리이거나 거기서 더 떨어졌다”고 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 무기계약직 인건비는 ‘사업비 내 인건비’다. “ ‘국민문화향유권’ 예산 같은 여러 예산이 있어요. 인건비는 최저임금으로 설계했고, 예산 상황에 따라 동결 아니면 물가인상률 정도만 오르죠. 지난 17년이 그랬어요.” 지난해 임금 협상 때 문체부 측에선 ‘2000원 인상’을 제시해 노조가 거부했다고 강씨가 전했다.

“정규직의 80% 수준에만 맞춰달라”는 강씨 요구는 과한 게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중앙행정기관 무기계약직 노동자의 임금 격차 문제를 두고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맞는 합리적인 무기계약직 임금기준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지난해 1월 대법원은 김모씨 등 7명이 대전MBC를 상대로 낸 소송 상고심에서 “정규직과 같은 임금·수당을 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기자와 통화하며 “예산 범위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실현하기 위해 교섭 중”이라고만 했다. 실현할 수 없는 액수의 예산을 두고 어떻게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실현할지 의문이 들었다.

“대한민국의 문화강국 브랜드를 강화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황희 문체부 장관이 지난 7일 ‘이건희 기증관’ 건립 계획을 발표하면서 한 말이다. 문체부는 보도자료에 ‘문화적·산업적 가치 창출을 통한 문화강국 이미지 강화’라는 말도 적었다. 이 기증관에서도 강씨 같은 노동자들이 일할 것이다. 최저임금을 받는 이들의 노동으로 이룬 문화강국은 무엇인가. 삼국 시대 토기와 조선 시대 백자 등 기증작을 두고 “이건희 회장 컬렉션은 기술혁신과 디자인을 중시한 기증자의 경영철학과 맞닿아 있다”는 박물관의 헌사도 기억났다. 노동조건, 노동가치를 중시하는 철학을 지닌 국가기관은 언제 나타날 것인가.

인터뷰 말미에 강씨는 상여금·수당 문제도 알렸다. “명절 상여금은 40만원입니다. 14년 동안요. 가족수당이 없어요. 가족이 있는데….” ‘가족’이란 단어의 무게 때문이었을까. 그는 이 말을 하며 울먹였다. “이건희 명품 전시 뒤에는 9년을 일해도 최저임금인…” 다음 이어지는 문구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눈물이 있습니다”이다.

글·사진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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