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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이스라엘 장관이 美아이스크림을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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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과 분쟁 중인 지역서 판매는 우리 가치와 안 맞아”

이스라엘 총리가 철회 요구 “심각한 결과에 직면할 것” 경고

조선일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지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식료품점에 19일 미국 벤앤제리 아이스크림 전용 냉장고가 놓여져 있다. 벤앤제리는 이날 "서안지구에서 우리 아이스크림을 팔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로이터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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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아이스크림 업체 벤앤제리스(Ben&Jerry’s)가 이스라엘 분쟁 지역에서 자사 아이스크림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하자 이스라엘 전역에서 불매 운동이 불붙는 등 반발이 커지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 일반 국민은 물론 총리와 장관까지 벤앤제리스 비난에 나서 이 문제가 국제 이슈로 커지는 양상이다.

벤앤제리스는 지난 19일(현지시각)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지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아이스크림을 파는 것은 우리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이 지역에서의 내년 판매 계약을 갱신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으로 서안지구를 점령해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했는데, 팔레스타인 주민을 차별한다는 논란 속에 양측 유혈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나프탈리 베네트 이스라엘 총리는 20일 벤앤제리스의 모기업인 영국 유니레버 회장에게 전화해 “이 조치를 철회하지 않으면 심각한 결과에 직면할 것”이라고 강하게 항의했다. 주미 이스라엘 대사는 미 35주 주지사들에게 서한을 보내 “기업들의 이스라엘 보이콧은 반(反)유대주의 편향”이라며 벤앤제리스를 제재하라고 요구했다. 이스라엘 경제 장관은 자택 냉장고에 있던 벤앤제리스 아이스크림을 쓰레기통에 처박는 동영상을 틱톡에 공개했고, 정치인과 국민도 “우리에겐 (벤앤제리스의 경쟁사인) 하겐다즈가 있다”며 벤앤제리스 불매운동을 선언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고작 아이스크림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벤앤제리스의 미국 내 독특한 정치적 입지 때문이다. 벤앤제리스는 일명 ‘행동주의 아이스크림’이다. 민감한 사회 이슈마다 먼저 나서 진보 진영의 여론을 이끌고 타기업 동향에 영향을 끼친다.

지난해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 과잉 진압으로 숨진 뒤 5일 만에 벤앤제리스가 트위터로 “백인 우월주의를 타파해야 한다”고 ‘좌표’를 찍자, ‘흑인 목숨은 소중하다’ 운동이 미 전역에 확대되고 대기업들이 이를 따라온 게 대표적인 예다. 뉴욕타임스 등은 “이스라엘은 벤앤제리스의 ‘탈(脫)이스라엘’ 선언이 바이든 정부 미국에서 급속히 퍼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벤앤제리스는 뉴욕 출신의 히피였던 벤 코언과 제리 그린필드가 1978년 버몬트주의 주유소를 개조해 창업, 현재 미 고급 아이스크림 시장의 25%를 차지한다. 이들은 ‘기업의 힘을 사회·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쓴다’는 강령 아래 각국 군비 경쟁부터 빈부격차, 인종차별과 성차별, 거대 기업의 정치권 로비, 탄소 배출 등에 저항하는 메시지를 내며 이를 제품 개발에 이용해왔다. 2000년 다국적기업 유니레버에 넘어갔지만 이런 창업 정신은 건드리지 말라고 요구, ‘행동주의’ 전담 부서까지 두고 있다. 미 진보 진영에선 특정 이슈가 생기면 ‘#벤앤제리스는아직트윗안올렸나’라는 태그를 붙이며 이 기업의 동태를 살핀다.

[뉴욕=정시행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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