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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결정적 한끗]⑤미원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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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상품'에서 젊은이들의 '잇템'으로 '리브랜딩' 성공으로 시장영역 확장 박차 전은주 대상 마케팅팀장 인터뷰 [비즈니스워치] 이현석 기자 tryon@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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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비즈니스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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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사건에는 반드시 결정적인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역사책의 내용이 바뀌기도 합니다. '그때 다른 결정을 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른다'는 말이 익숙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은 꼭 역사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하게 접하는 많은 제품에도 결정적인 '한 끗'이 있습니다. 그 절묘한 한 끗 차이로 어떤 제품은 스테디셀러가, 또 어떤 제품은 이름도 없이 사라집니다. 비즈니스워치에서는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제품들의 결정적 한 끗을 찾아보려 합니다. 결정적 한 끗 하나면 여러분들이 지금 접하고 계신 제품의 전부를, 성공 비밀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이제부터 저희와 함께 결정적 한 끗을 찾아보시겠습니까. [편집자]

'가그린'과 '대일밴드', '봉고'의 공통점은 뭘까요. '보통명사'가 된 제품입니다. 정식 명칭은 따로 있지만 우리는 항상 저 이름으로 부르곤 합니다. 조미료에도 이런 제품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해 온 '미원'입니다. 미원은 MSG를 사용한 조미료입니다. 우리는 감칠맛이 폭발하는 음식을 먹고 나면 "MSG 넣었네"라고 하지 않습니다. "미원 넣었네"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미원은 우리에게 조미료의 대명사가 됐습니다.

하지만 미원이 저 제품들과 다른 점도 있습니다. 가그린과 대일밴드는 다른 브랜드에서 만든 비슷한 제품들도 잘 팔립니다. 심지어 봉고차는 스타렉스에게 자리를 빼앗겼습니다. 반면 미원은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젊은 소비자에게 인기를 끌며 시간을 거스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탁월한 마케팅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름부터 달랐다

미원의 한자 표기는 맛 미(味), 으뜸 원(元)입니다. 맛을 좋게 만드는 조미료의 본질을 담고 있습니다. 더 나은 이름을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죠. 잘 알려진 것처럼 미원은 최초의 인공조미료 '아지노모토'를 벤치마킹했습니다. 이 제품의 일본어 표기는 '미소(味の素)'입니다. 미원과 같은 맛 미 자에 바탕 소(素)자를 사용했죠. 의미가 같습니다. 여기에 일본어 훈독에 따르면 소와 원 모두 '모토'로 읽힙니다. 물론 이를 노린 작명이겠죠. 이때문에 미원은 이름까지 아지모토를 베꼈다는 이야기도 들었죠.

미원이 처음 출시된 1956년 국내에는 마땅한 조미료가 없었습니다. 전쟁 직후라 물자 자체가 귀했습니다. 그러니 조미료가 있었을리 만무합니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의 입맛에는 일제강점기 내내 친숙하게 먹어 왔던 아지노모토가 깊숙하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아지노모토와 이름까지 비슷한 미원이 등장합니다. 소비자들은 아지노모토가 돌아왔다고 여겼겠죠. 미원은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갑니다. '1가구 1미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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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원은 아지노모도의 많은 점을 벤치마킹한 제품입니다. /사진=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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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름은 경쟁 제품과의 라이벌전에서도 빛을 발합니다. 삼성은 1969년부터 '미풍'을 선보이면서 미원과의 본격적인 경쟁에 나섭니다. 미풍은 아지노모토와 기술 제휴를 맺었습니다. 여기에 저가 전략까지 구사하며 시장을 공략했습니다. 미원과 미풍의 품질 차이도 거의 없었습니다. 미원에게는 큰 위기였죠. 하지만 미풍은 결국 미원과 대등한 위치에 서보지도 못하고 패배했습니다.

당시 미풍은 브랜드 파워, 반일감정 등 여러 요소에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광고업계에서는 '이름'도 하나의 패인으로 꼽습니다. 당시에는 한자를 주로 사용했습니다. 조미료 이름에 미(味)는 반드시 넣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미원이 선점하고 있었던 바람에 경쟁 제품 대부분이 '짝퉁'으로 여겼습니다. 일각에서는 발음의 문제도 이야기합니다. 미원의 발음이 미풍보다 쉽고 자연스러워 소비자들에게 심리적으로 더 쉽게 다가갔다는 분석입니다.

시대를 초월한 '타깃 마케팅'

미원의 힘은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미원은 65년 역사 동안 숱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MSG 유해성 논란이 대표적입니다. 특히 MSG 유해성 논란은 20년 넘게 미원을 괴롭혔습니다. 많은 브랜드가 사라지고도 남을 시간이죠. 하지만 미원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절묘한 타깃 마케팅으로 이를 극복합니다.

미풍은 '기술'을 앞세워 미원을 압박했습니다. 큰 규모의 자동화 공장을 과시하는 TV 광고는 물론, 신문 광고에서는 아지노모토와의 제휴 사실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반면 미원은 가정주부나 평온한 가족의 이미지를 광고에 담았습니다. 당대 최고 배우인 김지미 씨 등이 당시 미원 모델로 활동했습니다. 어떤 신문광고는 서툴게 그려진 갓난아이의 모습을 담기도 했습니다.

이 광고들을 본 소비자들은 미풍은 '제품', 미원은 '생필품'으로 인식했습니다. 게다가 조미료의 핵심 소비자는 가족의 식탁을 책임지는 가정주부였습니다. 소비자들은 기술보다 친근한 이미지를 택합니다. 더 강한 브랜드 파워를 가진 미원이 이미지 메이킹에서도 앞선 겁니다. 미원은 미풍과의 경쟁에서 '완승'을 거둔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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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원과 미풍은 마케팅 전략에서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사진=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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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원의 마케팅은 2010년대 들어 다시 한 번 주목받습니다. 당시 20년간 이어져 온 MSG의 유해성에 대한 오해가 일정 부분 해소됐습니다. 하지만 시장 상황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미원은 더 이상 대세가 아니었습니다. 브랜드는 노후화됐습니다. 회사 이름마저 미원에서 대상으로 바뀌었습니다. 미원의 존재감은 점점 옅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대상은 미원을 '리브랜딩'합니다. 2014년 10월 제품 이름을 '발효미원'으로 바꾸고 패키지를 리뉴얼했습니다. 제품 패키지에는 미원의 원료인 사탕수수를 담아 화학조미료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팝업스토어도 엽니다. 팝업스토어에서는 1970년대 가격으로 미원을 사용한 국밥을 판매했습니다. 중장년층 소비자에게는 추억을, 젊은 소비자에게는 신선함을 줬죠. 부활의 첫 걸음이었습니다.

2016년부터는 젊은 층을 겨냥한 마케팅을 전개합니다. 가수 김희철 씨가 '픽미원'을 외치며 춤을 추는 미원 브랜드 광고를 선보입니다. 이 광고는 '프로듀스 101'의 주제가를 활용해 젊은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2018년에는 '소 한 마리, 닭 한 마리' 캠페인이 전파를 탑니다. '미원을 사용하면 소와 닭을 살릴 수 있다'는 재미있으면서도 의미있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이 광고로 미원은 기존의 노후된 브랜드 이미지에서 탈피하는데 성공합니다.

젊어진 미원, 다시 소비자 곁으로

미원은 지난해부터 시장을 본격적으로 노크하고 있습니다. 다만 미원 자체보다는 미원 브랜드를 담은 제품을 판매하는 데 집중하고 있죠. 대상은 지난해 요리잡지 '이밥차'와 미원 레시피북 '미원식당'을 발간했습니다. 무신사와 협업해 업계를 넘나드는 한정판 굿즈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이 굿즈는 MZ세대 소비자들의 한정판에 대한 니즈를 제대로 저격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미원의 주력 분야인 식품 카테고리에서도 신제품을 하나둘 선보이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최초의 미원 브랜드 스낵 '미원맛소금팝콘'이 출시됩니다. 이 제품은 출시 한 달 만에 30만개가 판매됐습니다. 품귀 현상을 빚으면서 SNS에서 미원팝콘을 구매했다는 인증 글이 넘쳐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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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원은 브랜드 이미지 변신 이후 제품을 꾸준히 내놓고 있습니다. /사진=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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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제품은 '미원라면'이었습니다. MSG 유해성 논란과 함께 라면에서 퇴출된 후 수십년만의 귀환이었죠. 미원라면은 출시 이후 GS25가 판매하는 150여 개 라면 중 10위권의 매출을 기록하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젊은 층에게 '감칠맛'을 선사하며 시장을 공략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미원팝콘과 마찬가지로 SNS 인증샷도 넘쳐나고 있습니다.▷관련기사:[눈에 콕콕]'감칠맛 곱빼기요~' 대상 미원라면(2021년 6월 14일)

이처럼 미원의 시간은 이제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미원은 1세대 조미료입니다. '낡은 제품'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미원은 젊은 세대의 호응을 얻으며 4세대 조미료(액상발효조미료)가 장악한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결국 마케팅의 힘입니다. 미원의 다음 변화는 어떤 모습일까요. 전은주 대상 마케팅 팀장을 만나 직접 들어봤습니다.

재치·유머 담긴 '영원한 브랜드' 만들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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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은주 대상 마케팅 팀장. /사진=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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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소개를 부탁합니다

▲2001년 대상 소재사업, 전분당 연구소 연구원으로 입사했습니다. 이후 기술영업까지 직무를 확장하며 일해 왔고, 2010년 식품사업 마케팅부서로 직무를 전환했습니다. 초기에는 전공 분야인 올리고당 등 당류 중심으로 마케팅 업무를 했습니다. 2016년부터 조미 카테고리로 업무를 확장해 ‘픽미원’을 시작으로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미원은 오랜 시간 동안 역사를 이어왔습니다. 비결은 무엇일까요

▲미원은 출시 이후 꾸준하게 독자적인 기술 개발에 주력해 왔습니다. 연구력과 생산력 향상에 열을 올렸죠. 이 사실이 널리 알려졌고, 국산을 애용하던 사회적 분위기와도 맞아떨어져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미원은 미풍 등 경쟁 제품이 저가 경쟁을 벌일 때도 브랜드 파워와 소비자를 믿고 적절한 가격 정책을 이어왔습니다. 브랜드 가치를 지킨 점이 역사를 이어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 생각합니다.

-아직까지도 MSG를 유해하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일부 남아 있습니다. 그만큼 마케팅을 진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 같은데요.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분야는 어딘가요

▲회사 내에서는 다양한 부서가 관심을 갖고 도움을 주는 품목이라 특별히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 회사의 대표 브랜드인 만큼 이를 지켜내야 한다는 사명감이 큽니다. 외부 마케팅 활동에서도 최근 미원 브랜드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지고 있어서 어려움이 크게 줄었습니다. 새로운 미원 마케팅을 할 때마다 기대가 큽니다.

-미원은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50년 이상 된 브랜드가 젊은 계층을 주요 소비자로 설정하는 것이 쉽진 않았을 것 같은데요. 왜 젊은 소비자를 공략하기 위해 나섰나요

▲미원은 MSG유해성 논란과 함께 언제부턴가 관심 밖의 브랜드가 됐습니다. 과거와 미래가 단절된 상태였죠. 때문에 '관심을 받는 일, 그래서 한 번 사용해 보는 일'이 전략적 과제였습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소비자 계층이 MZ세대 등 젊은 소비자였습니다. 그들의 호기심과 이슈 확장력에 주목했죠.

-미원이 다시 젊어진 비결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안전성과 같은 복잡한 이슈에 대한 인식 개선은 내려놓고, 가볍고 재치 있게 브랜드를 어필하고자 했습니다. '픽미원' 광고가 시작이었죠. 이 광고가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습니다. 미원이 온라인에서 언급되기 시작했죠. 미원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소비자가 바로잡아 주고, 사용처를 이야기하는 등 자발적 홍보까지 이뤄졌습니다.

-미원을 활용한 제품이 잘 팔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후속 제품이 기대된다는 이야기도 많은데요. 출시 계획은 있나요

▲2018년 젊은 소비자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환경 주제를 미원 브랜드 스토리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덕분에 젊은 층의 미원에 대한 호감을 높였습니다. 이들이 지난해 선보인 미원 굿즈와 올해 선보인 맛소금팝콘, 라면 등을 많이 구매하는 주력 소비자로 자리잡았습니다. 앞으로도 시장 니즈에 대응할 수 있는 제품을 구상할 계획입니다.

-앞으로의 미원 모습이 궁금합니다. 어떤 마케팅 전략을 구상하나요

▲관심을 받는 데 성공했다면 이제부터는 정체성을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호감형 브랜드로 키워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미원의 정체성인 '감칠맛'을 보다 널리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만 일방적 정보전달 보다 요즘 세대의 공감과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상황 속에서 재치와 유머를 담아 이야기할 것입니다.

(*이번 인터뷰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서면으로 진행됐습니다)

☞6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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