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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이슈 끊이지 않는 성범죄

군, 자정능력 있나…공군 성추행 사건 대응 ‘총체적 부실’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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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합동조사단 38일만에 ‘중간 수사결과’ 발표

은폐시도·부실수사·허위보고 책임자 무더기 기소

공군 법무실장 등 핵심 책임자 수사는 여전히 미적

‘제 머리 못 깎는’ 군 수사 특유의 한계 드러내


한겨레

박재민 국방부 차관이 9일 오전 국방부에서 공군 성추행 피해자 사망사건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한 뒤 사죄의 인사를 올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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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무개 공군 중사가 성추행 피해를 당한 뒤 ‘극단적 선택’에 내몰리는 과정에서 군이 총체적으로 부실하게 대응했음이 국방부 합동수사 결과 확인됐다. 하지만, ‘핵심 책임자’ 가운데 하나인 전익수 공군 법무실장(준장) 등에 대해선 수사가 진척되지 않는 등 군 수사 특유의 한계도 드러냈다.

국방부 합동수사단은 9일 오전 국방부 기자실에서 ‘성추행 피해 여군 중사 사망사건 관련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해 이날까지 총 22명을 입건해 10명을 기소했고, 나머지 12명에 대해선 수사 중에 있다고 밝혔다. 또, 이미 보직 해임된 6명 외에 성추행이 발생한 공군 제20전투비행단장 등 9명의 추가 보직해임을 요청하고, ‘허위 보고’ 혐의가 있는 공군본부 군사경찰단장 등 과실이 중대한 이들은 형사 처분과 별개로 징계위원회에 회부할 방침이다. 이 발표는 국방부가 지난달 1일 공군으로부터 사건을 이관 받아 수사에 착수한 지 38일 만에 이뤄졌다.

국방부의 중간 수사결과 그동안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드러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부실 수사, 허위 보고 등 의혹 대부분이 사실로 확인됐다.

이 중사가 피해를 당한 직후 1차 가해자인 장아무개 중사(구속 기소)는 차에서 내려 부대로 복귀하는 이 중사를 쫓아와 “너 신고할 거지, 신고해봐”라고 위협했고, 다음날엔 “하루 종일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라는 말로 협박을 시도했다. 상사인 노아무개 준위(구속 기소)는 강제추행을 보고받은 뒤에도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다 피해가 간다. 너도 다칠 수 있다”는 말로 신고를 하지 말도록 종용했다. 노아무개 상사(구속 기소) 역시 “없었던 일로 해줄 수 있겠냐”며 회유를 시도한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 신고가 이뤄진 뒤에도 군의 대응은 느리기만 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공간 분리가 이뤄진 것은 사건 발생 이후 보름이 지난 3월17일이었다. 그 전까지 이 중사는 여군 독신숙소를 기준으로 1차 가해자인 장 중사 숙소와 960m, 2차 가해자인 노 준위 숙소와는 겨우 30m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이 중사는 3개월 간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큰 상처를 입고 제15특수임무비행단으로 근무지를 옮겼지만 새 부대에까지 ‘성추행 피해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이 중사의 새 상관이 된 대대장(불구속 기소·명예훼손)은 부대원들 앞에서 “새로 오는 피해자가 불미스러운 사고로 전입 온다”, 중대장(〃)은 “전입자가 성 관련 일로 추측되는 사건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 중사를 적극 보호해야 했던 공군본부 양성평등센터는 이 중사의 피해 사실을 3월5일에 보고 받고도 지침을 위반해 가며 한달 뒤인 4월6일에야 이 사실을 국방부에 알렸다.

이 중사를 결정적으로 좌절의 늪에 빠뜨린 것은 부실 수사였다. 제20비행단 군사경찰은 이 중사의 피해사실이 고스란히 담긴 블랙박스 영상을 제출 받고도 가해자인 장 중사를 4월7일에야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군 검찰은 두 달 가까이 수사를 뭉개다 5월31일에야 장 중사를 처음 조사했다. 국방부 합동수사단은 제20비행단의 담당 수사관 ㄱ 준위, 군사경찰 대대장 ㄴ 중령, 군 검사 ㄷ 중위 등을 직무유기 혐의로 수사 중이다. 또, 5월23일 이 중위가 숨진 뒤 성추행 피해자임을 누락한 채 국방부에 보고한 공군본부 군사경찰단장과 중앙수사대장에 대해선 허위보고 및 허위공문서작성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군 수사의 ‘한계’도 명백히 드러났다. 특히, 초동 수사의 최종 책임자인 전익수 실장 등에 대한 수사는 사실상 진척되지 않고 있다. 합동수사단은 지난달 16일 전 실장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으나 아직 휴대전화에 대한 포렌식은 진행하지 못했다. 전 실장은 합동수사단의 거듭된 소환 요구를 거부하다 중간수사 발표가 이뤄지는 이날 참고인 신분으로 비공개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전 실장은 억울하다며 자신에 대한 수사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로 이첩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합동수사단은 전 실장을 “검찰사무에서 배제할 것”이라고만 말했다.

한편, 이 중사의 유족들은 입장문을 내어 “국방장관이 대통령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엄정한 수사 의지를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수사 진행 상황을 보면 아직도 그 의지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는 뜻을 밝혔다.

길윤형 기자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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