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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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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신과함께' 작가 주호민, 폐암 투병 아버지 위해 2인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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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주호민과 아버지 주재환. [사진 제공 = 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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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 등 인기 웹툰 작가인 주호민(40)은 3년 전 아버지인 민중미술가 주재환(80)과 공동 전시를 제안받았지만 거절했다. 당시 웹툰을 연재 중이어서 바쁘기도 했지만 그때까지 아버지와 함께 뭔가를 해 본 적이 없었다. 그 흔한 가족 여행도 없었으며 유년 시절 아버지는 늘 '부재중'이거나 '작업 중'이었다. 예민해서 TV 소리를 못 키우게 하고 대화가 없어 늘 무서웠던 아버지를 다시 보게 된 '사건'이 일어났다. 2019년 아버지가 폐암 3기 진단을 받고 수술대에 오르자 더 늦기 전에 부자 전시를 열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열린 서울시립미술관 '호민과 재환' 반응이 뜨거운 가운데 지난달 30일 '뮤지엄 나이트' 유튜브 방송에 나온 주호민은 "아버지가 '담배를 65년 피웠는데 80세에야 암이 생겼으니 선방했다'고 말하시며 요즘도 마음껏 피운다"고 부친의 근황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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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환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 [사진 제공 = 서울시립미술관]


이날 방송에서 그는 미술가로서 아버지를 다시 보게 된 계기로 2000년 서울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주재환 개인전 '이 유쾌한 씨를 보라'를 꼽았다. 주호민은 "아버지 작업실에 널부러져 있던 그림들이 미술관에 걸려 있으니까 낯설었다. 유년 시절 후줄근했던 친구가 결혼식에서 턱시도를 빼입은 것 같았다. 아버지가 생각보다 대단한 화가라는 데 놀랐다"고 말했다.

부친은 주호민의 첫 독자이기도 했다. 연습장에 만화를 그려 보여주면 주재환은 "재미있게 해라"고 격려했다. 재미는커녕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었지만, 한국 신화를 토대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해석한 웹툰 '신과 함께'는 관객 2000만명을 동원한 영화가 됐다.

전시장에 가면 주호민의 촌철살인 세상 풍자가 아버지 유전자(DNA)로부터 비롯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재환 1987년작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는 계단을 내려가면서 더 굵어지는 오줌 줄기로 사회 위계질서를 희화화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여전히 계급이 존재하며, 아래로 갈수록 오물을 더 뒤집어쓴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주호민 '신과 함께-저승편' 중 '죽어서야 로열층'에서 납골당 위치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빈부 격차를 묘사한 장면과 묘하게 겹친다. 사람 눈높이에 맞는 가운데가 가장 비싸고 맨 꼭대기와 바닥 언저리가 저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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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민 `계단에서 뭐 하는 거지`. [사진 제공 = 서울시립미술관]


주호민은 이번 전시를 위해 부친의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를 만화로 재구성해 '계단에서 뭐 하는 거지'를 제작했다. 아버지 작품과는 반대로 서로 잡아주고 올려주는 인물들을 연출했다. 주호민은 "사회 문제를 녹이는 만화 작업을 하다 보니까 너무 심각하지 않으면서도 세상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아버지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작들을 살펴볼수록 주재환의 번뜩이는 재치에 놀라게 된다. 주재환의 2010년 설치작품 '다이아몬드 8601개 vs 돌밥'은 찌그러진 냄비 안에 돌을 잔뜩 붙이고 다이아몬드 8601개를 두개골에 붙인 영국 현대미술가 데이미언 허스트 작품 사진을 대비시켰다. 그 아래에는 브라질 북부 난민촌 주부들이 냄비에 돌과 물을 넣고 끓이면서 배고파 보채는 아이들에게 "조금만 기다리면 밥이 될거야"라고 달래면서 지쳐 잠들기를 기다린다는 이야기를 담은 책 '탐욕의 시대' 표지가 있다. 전시는 8월 1일까지.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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