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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다윗 SKB, 골리앗 넷플 이겼다"…해외CP '무임승차' 사라지나(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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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오상헌 기자, 김수현 기자] [법원, 넷플릭스 망 사용료 채무부존재 소송 기각

"당사자 협상할 문제" SK브로드밴드 손 들어줘

해외 CP 국내망 '무임승차' 관행 개선 전기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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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망 사용료를 낼 의무가 없다"며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낸 소송을 기각했다. 이에 막대한 트래픽을 유발하면서도 사실상 공짜로 국내 통신망에 '무임승차'해 온 해외 콘텐츠사업자(CP)의 관행에 큰 변화가 일 전망이다. 법원이 "망 사용료를 내야 한다"고 직접 판시한 건 아니지만 해외 CP도 망 품질을 공동 관리하고 합당한 이용대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사실상 인정한 판결이어서다. 유튜브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글은 물론 국내 진출을 앞둔 글로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사업자의 망 관련 계약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넷플릭스 "망 사용 지급 의무없어" 소송 기각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0부(김형석 부장판사)는 25일 오후 넷플릭스 한국법인인 넷플릭스서비시스코리아가 "망 사용료를 낼 의무가 없다"며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 확인 1심 소송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와) 협상할 의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해 달라"고 한 신청 내용은 각하했다.

재판부는 망 사용 대가와 관련 "계약 자유의 원칙상 계약을 체결할지, 어떤 대가를 지불할 것인지는 당사자들의 협상에 따라 정해질 문제"라며 "법원이 나서서 하라거나 하지 말라고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망 사용료 계약 여부와 지급 규모 등은 법원이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 당사자간 협상으로 해결할 문제라는 것이다. 넷플릭스에 망 이용대가 협상을 요구해 온 SK브로드밴드의 입장을 전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SK브로드밴드는 국내 OTT 이용 급증과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비대면 일상화로 최근 몇 년간 넷플릭스 트래픽이 급증해 네트워크 투자 비용이 폭증하자 "망 이용대가를 달라"며 협상을 시도했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이를 거부하자 2019년 11월 방송통신위원회에 재정신청을 냈다. 지난해 4월 방통위는 "넷플릭스의 협상 거부에 설득력이 없다"는 요지의 내부 결론을 내렸으나 재정 신청 결과 공개를 앞두고 넷플릭스는 소송을 제기했다.


SKB "골리앗과의 싸움서 다윗 손 들어줘"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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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업계에선 "방통위 재정 결론이 불리하게 나올 것으로 예상되자 넷플릭스가 국면 전환을 위해 소송을 냈다"는 말이 나왔다. 이후 1년 남짓 이어진 법정 공방을 거쳐 법원이 사실상 SK브로드밴드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SK브로드밴드는 "법원의 합리적 판단을 환영한다"며 "앞으로도 인터넷 망 고도화를 통해 국민과 국내외 CP(콘텐츠사업자)에게 최고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SK브로드밴드를 법률 대리한 법무법인 세종 측도 "골리앗(넷플릭스)과의 싸움에서 법원이 다윗의 손을 들어줬다"며 "상당히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넷플릭스는 재판 과정에서 "인터넷제공사업자(ISP)가 이미 이용자에게서 인터넷 이용료를 받고 있으니 콘텐츠 사업자(CP)는 비용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했다. 넷플릭스에 대한 망 사용료 지급 요구가 '이중과금' 청구라는 것이다. 특정 서비스에 대한 망 사용료 요구는 '망 중립성(net neutrality)' 원칙에 위배된다는 점도 논거로 내세웠다. 망 중립성 원칙은 'ISP가 네트워크 상에서 모든 콘텐츠를 차별 없이 다뤄야 한다'는 개념이다. CP는 콘텐츠를 만들 뿐, 이를 실어나르는 건 오롯이 ISP의 책임이란 게 넷플릭스의 주장이었다.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가 망을 공짜로 이용해 수익 사업을 하므로 트래픽 유발 규모에 합당한 망 이용대가를 지급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맞받았다. 화질에 따른 차등 요금제를 적용하는 넷플릭스가 화질을 높일 경우 통신망의 트래픽 소모가 커지므로 넷플릭스에 트래픽 관리에 대한 공동 관리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적은 트래픽을 유발하는 개인 이용자들도 인터넷 이용 비용을 내는데 수백, 수천 배의 트래픽을 쓰는 넷플릭스가 '무임승차'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글 유튜브, 국내 진출 해외 OTT 협상에도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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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판결이 넷플릭스의 망 사용료 지급 의무를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법원이 망 사용료 지급과 협상을 회피해 온 넷플릭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사실상 망 이용대가 지급 의무가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SK브로드밴드 법률대리인인 강신섭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재판부가 자세히 말은 안 했지만 지급의무가 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인정했다고 본다"고 했다.

넷플릭스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할 가능성도 커 보인다. 넷플릭스는 패소 후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는 공동의 소비자를 위해 각자의 역할과 책임, 그리고 실질적인 투자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공동의 소비자를 위해 ISP에는 '원활한 인터넷 접속 제공', 그리고 CP에는 '양질의 콘텐츠 제작'이라는 각자의 역할과 소임이 있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사실상 불복 의사를 밝힌 셈이다. 넷플릭시서비시스코리아 관계자는 항소 여부에 대해 "판결문을 받아 보고 입장을 정리해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가 항소를 제기할 경우 "망 사용료를 지급하라"는 내용으로 반소를 제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업계에선 1심이긴 하지만 이번 선고 결과가 국내 인터넷망을 사실상 공짜로 이용해 온 해외 CP들의 '무임승차' 관행을 개선할 전기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현재 해외 CP 중에선 페이스북만 망 사용료를 지급하고 있을 뿐 넷플릭스 외에 유튜브 영상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글도 망 이용대가를 내지 않고 있다. 정부는 앞서 구글 유튜브, 넷플릭스 등 글로벌 CP의 '망 무임승차' 논란이 거세지자 망 안정성 유지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의 이른바 '넷플릭스 무임승차 방지법(전기통신법 개정안)'을 지난해 말 마련해 시행 중이다. CP와 ISP의 망 사용료 계약을 강제하진 않지만 과거에 없던 CP의 서비스 안정성 확보 의무 조항을 반영한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앞으로 CP와 ISP가 협의하거나 계약할 때 개정안이 영향을 주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했다. 당장 올 하반기 디즈니플러스를 필두로 아마존프라임, 애플TV플러스, HBO 맥스 등 글로벌 OTT 사업자들이 국내 시장에 본격 진출한다. 업계 관계자는 "LG유플러스, KT 등과 제휴하는 방식으로 국내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인 디즈니플러스도 넷플릭스 망 사용료 소송을 상당히 주의 깊게 주시해 온 것으로 안다"며 "이번 소송 결과가 계약 내용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오상헌 기자 bborirang@mt.co.kr, 김수현 기자 theksh0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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