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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박용범 특파원의 월스트리트 인사이트] 매파로 변신한 파월 의장…빨라지는 금리인상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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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디 이코노믹 클럽(The Economic Club) 워싱턴DC’ 행사에 참석했을 때 일이다. 파월 의장은 굴지의 사모펀드인 칼라일 공동창업자이자 디 이코노믹 클럽 회장인 데이비드 루벤스타인과 온라인으로 대담을 가졌다. 루벤스타인 회장은 대담 후반부에 파월 의장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는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연준 의장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데 사람이 많은 곳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은 위험하지 않나. 경호원들이 함께 다니느냐”고 물었다. 지루하고 딱딱한 이야기만 하다 보니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던진 질문이다. 기자는 파월 의장의 답변을 듣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파월 의장의 답변이 너무 ‘범생이’ 같았기 때문이다. 파월 의장은 “내가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할 정도로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난 굉장히 조심하는 성격이라 사람들이 몰리는 곳으로 다니지 않는다”고 답했다. 분위기는 더 가라앉았다.

웃자고 한 이야기였는데 더 썰렁해졌다. 연준 의장으로서 언행에 조심해야 하는 탓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파월 의장은 정말로 진지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단어(굉장히 조심하는 성격)를 듣게 됐다. 이런 일화를 소개하는 이유는 전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파월 의장의 화법과 스타일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연말부터 연준의 테이퍼링(유동성 공급 축소) 돌입 시기를 두고 다양한 논란이 계속되어 왔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제로로 낮춘 기준금리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순서상 테이퍼링이라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현재 연준은 매월 800억달러 규모 국채와 400억달러 규모 주택저당증권(MBS)을 사들이며 매월 1200억달러를 투입하고 있다. 파월 의장은 시장의 비판을 잠시 모면하기 위해 얕은 수를 쓰거나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언론플레이를 하는 스타일이 전혀 아니다. 한결같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좀처럼 재미라곤 없다는 평가도 따른다. 각종 콘퍼런스에 숱하게 출연하지만 농담을 하는 경우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딱 하나 개인적인 부탁을 하는 발언은 꽤 있었다. 그것은 본인을 ‘제롬(Jerome)’이 아니라 ‘제이(Jay)’로 불러달라는 것이었다. 연준 의장이라는 권위를 벗어던지고, 다른 사람에게도 가능한 편안하게 소통을 하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으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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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파월 美 FRB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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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 년 만에 찾아온 팬데믹 위기에 맞서 파월 의장은 신속하게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 시장을 조기에 안정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까지는 1라운드다. 문제는 2라운드 경기다. 이제는 경기회복 속도에 맞춰 금리를 언제, 어느 속도로 정상화할 것인지를 놓고 파월 의장의 일거수일투족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계기로 파월의 발언은 달라지고 있다. 파월 의장은 6월 FOMC 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인플레이션은 우리가 예상하던 것보다 좀 더 높고 지속할 수 있다”며 “금리 인상을 위한 조건은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이뤄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금리 인상에 소극적인 비둘기파였던 파월 의장이 매파로 변했다는 평가가 나온 대표적 발언이다.

최근 물가 급등은 일시적이라는 점을 늘 강조해왔던 파월 의장의 입에서 이런 표현이 나왔다는 점에서 매우 놀랐다. 이제는 통화정책을 정상화해 인플레이션과 싸우겠다는 선전포고를 하는 것처럼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다. 또 “테이퍼링 문제를 논의할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매우 애매한 표현으로 들리지만, 평소 파월 의장의 화법을 고려하면, 테이퍼링이 임박했다는 점을 암시하기 위한 발언으로 보인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파월 의장이 테이퍼링으로 한발 더 나아갔으며 9월 FOMC 회의에서 명시적인 신호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날 약 60분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파월 의장은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한 번도 웃지 않았다. 매파로 전향한 파월 의장 입장에서는 더 냉철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일 수 있다.

파월 의장뿐 아니라 미국의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연준 위원들은 6월 FOMC 회의 후에 시장에 강력한 신호를 보냈다.

‘점도표(Dot Plot)’는 파월 의장을 포함, 18명의 연준 위원들이 무기명으로 던진 금리 인상 시점, 인상 폭에 대한 전망치를 점으로 찍은 표다. 3개월 만에 업데이트된 ‘점도표’에는 점점 매파적으로 바뀐 연준 위원들의 생각이 반영됐다. 18명 위원 중 13명이 금리 인상 시점으로 2023년으로 꼽았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전망에는 7명에 그쳤는데 6명이 늘어난 것이다. 특히 13명 중 11명은 2023년까지 두 차례 금리 인상을 예상했다.

연준 위원들 중에 2023년 중 금리 인상뿐 아니라 2022년 중 금리 인상이 있을 것으로 전망한 위원이 늘어났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시간이 갈수록 연준의 시계는 빨라질 것이다. 이에 따라 팬데믹 이후 유지해온 제로금리 정책은 이르면 2022년 말에 끝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국 금리 인상은 전 세계 경제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메가톤급 방향 전환이다. 항공모함이 항로를 바꾸는 셈이기 때문에 아무 준비 없이 진행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이 항공모함을 이끄는 조타실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달라지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 경제에 대한 평가가 미묘하지만 매우 의미 있게 바뀐 것이 대표적이다.

FOMC는 성명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은 미국과 전 세계에 걸쳐 엄청난 인적 및 경제적 어려움을 야기하고 있다”는 기존 표현을 삭제했다. 새롭게 들어간 표현은 “백신 보급 진전으로 미국의 코로나19 사태 확산이 감소했다”는 문장이다. 이런 변화는 연준이 유동성 공급 축소(테이퍼링)를 거쳐 금리 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음을 보여준 대목이다. 시장에서는 이르면 8월 말 잭슨홀 회의에서 테이퍼링 계획이 본격 논의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금리 인상을 향한 연준의 시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UBS증권은 “파월 의장이 테이퍼링 시행 전 공표와 관련한 표현이 4월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 회의에서는 ‘well in advance (상당히 미리)’였지만 6월에는 ‘in advance(미리)’로 수정됐다”며 “8월 잭슨홀 회의 또는 9월 회의에서 보다 강력한 시그널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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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티증권은 “연준이 9월 FOMC 회의 후에 테이퍼링을 발표하고 12월부터 매월 150억달러씩 매입 규모를 축소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MBS(주택저당증권)부터 매입량이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전망이 나오자 당장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금리가 다시 뛰어올랐다. 뉴욕 증시는 6월 16일(현지시간) 오후 2시 FOMC 발표 직후 하락했지만, 예상보다 폭이 작았다. 시장에 알려지지 않은 리스크가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잠시 하락했던 뉴욕 증시 3대 지수는 파월 의장의 기자회견이 끝나감에 따라 회복세를 보였다. 이런 시장의 흐름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회복기에 나타났던 ‘긴축 발작’이 이번에는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대목으로 평가받고 있다. 투자자들 사이에는 ‘버냉키 보고 놀란 가슴 파월 보고도 놀란다’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테이퍼링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예고된 악재는 악재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듯이 실제 테이퍼링이 발표되어도 주식시장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파월 의장도 갑작스러운 테이퍼링 발표로 시장에 큰 충격을 줬던 ‘버냉키 트라우마’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파월 의장은 ‘파월식 화법’으로 시장에 대비할 시간을 주고 있다. 파월 의장은 이날도 “(테이퍼링에 들어가기 전에) 질서 있고 체계적으로, 투명하게 시장에 알려나가겠다”고 말했다.

이 발언을 거꾸로 뒤집어 보면, 곧 테이퍼링이 시작될 터이니 대비를 하라는 뜻이다. 파월 의장은 “시장과 충분히 소통하고 힌트를 주겠다”고 말해왔다.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이 초래한 시장 충격(긴축 발작)을 다시는 재연하지 않고 충격을 최소화시키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 확산이 변수

예정대로라면 8~9월에 테이퍼링 계획이 공개되겠지만 한 가지 변수가 남아 있다. 변이 바이러스에 따른 상황 변화 가능성이다. 특히 인도발 델타 바이러스가 영국에서 확산되며 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우려가 남아 있다. 영국은 다시 확진자가 급등하자 방역규제의 전면 해제시점을 7월 19일로 약 한 달 연기한 상태다.

미국의 백신 접종 속도가 크게 떨어진 상태에서 강력한 변이 바이러스가 침투할 경우 연준의 계획에 수정이 생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월가에서는 대체적으로, 화이자·모더나 백신 비중이 절대적으로 큰 미국의 경우 영국처럼 변이 바이러스 타격이 높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미국 백신 접종률은 50%(1차 접종 기준), 40%(접종 완료 기준)를 넘어선 이후 크게 늘어나지 않으며 거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높지 않은 시나리오지만 배제할 수도 없는 시나리오다.

[박용범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0호 (2021년 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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