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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佛 몽클라르 장군 아들 “70년 지났지만 아버지 기억해 준 한국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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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이 저를 만나면 ‘당신이 몽클라르 장군 아들이냐’며 제 손을 꼭 잡아주죠. 그러면 가슴 속에서 뜨거운 감정이 느껴집니다.”

6·25전쟁에 프랑스군을 이끌고 참전한 랄프 몽클라르 장군(1892~1964)의 아들 롤랑 몽클라르(71)씨는 지난 21일 파리 시내 자택에서 가진 본지 인터뷰에서 “70년이 지났는데도 한국인들이 아버지를 기억해주니 고마울 따름”이라고 했다. 몽클라르 장군은 2차대전 영웅으로서 6·25전쟁이 벌어지기 직전 프랑스 외인부대를 이끌던 중장(中將)이었다. 그는 프랑스 정부가 6·25전쟁에 대대 규모로 파병을 결정하자 참전을 위해 자청해서 네 단계 낮은 중령 계급장을 달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아들 몽클라르씨는 1950년 1월생으로서 6·25 전쟁이 발발했을 때 생후 5개월이었다. 그는 “세계 1·2차 대전에 모두 참전한 아버지는 나치와 맞서 싸운 것을 계기로 공산주의 세력을 악으로 보고 박멸해야 한다는 의지가 누구보다 강했다”고 했다. 그는 “어머니가 갓 태어난 나를 두고 전쟁터에 가지 말라며 반대했지만 아버지 뜻을 꺾지는 못했다”며 “자유를 지키기 위해 계급까지 낮춘 아버지가 자랑스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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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몽클라르씨가 1951년 전쟁 중 아버지 랄프 몽클라르 장군이 휴가를 얻어 잠시 돌아왔을 때 두살이던 자신을 안고 있는 사진이 담긴 당시 언론 기사를 보여주고 있다./손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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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클라르 장군은 1951년 2월 경기도 양평군에서 벌어진 지평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중공군에 맞서 유엔군이 이긴 첫번째 전투로서 38선을 회복하게 된 계기였다. 몽클라르씨는 “올해 지평리 전투 70주년이 됐다는 얘기를 듣고 있어 그럴 때마다 아버지가 그립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는 1차대전부터 6·25전쟁까지 28번 부상을 입었다”며 “죽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죽지 않을 수 있었다는 아버지 말을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제법 걸렸다”고 했다.

“아버지는 한국인들을 좋아했어요. 제가 어릴 적 아버지는 한국의 경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사람들은 얼마나 성실하고 예의바른 지 여러 번 이야기하셨죠. 겨울이 혹독하게 추워서 총을 쏘기 쉽지 않을 정도로 손가락이 얼어붙었다고 회상하시던 장면도 제 기억 속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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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몽클라르씨가 아버지 랄프 몽클라르 장군이 남긴 다양한 검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손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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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몽클라르 장군이 한국에서 전쟁중이던 1950년 12월 23일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자신에게 보낸 편지를 읽어줬다. 생후 11개월짜리 아들이 후일 글을 깨우친 후 읽어보라며 쓴 일종의 기록물이다. “사랑하는 아들아. 언젠가 너는 내가 (한국으로) 떠나야 했던 이유를 물을 것이다. (중략) 너와 같은 어린 한국의 아이들이 길에서, 물 속에서, 진흙 속에서, 눈 속에서 헤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아버지는 여기 왔단다.”

그가 중학생이던 때 몽클라르 장군은 별세했다. 대를 이어 군인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는 군인 월급이 적어 어머니와 여동생을 부양하기 여의치 않아 포기했고, 은행에서 쭉 일하고 임원으로 은퇴했다. 그의 파리 16구 자택 거실에는 몽클라르 장군이 남긴 군복, 훈장, 장검 등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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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몽클라르씨가 아버지 랄프 몽클라르 장군이 남긴 프랑스 장군 모자를 보여주고 있다./손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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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클라르씨는 위로 딸을 넷 낳고 올해 21살인 늦둥이 대학생 아들을 뒀는데, 아들이 장교가 되기로 진로를 정했다고 했다. 그는 “할아버지의 뒤를 잇고 내가 못다한 꿈을 이루겠다며 군인이 되겠다고 결심한 아들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몽클라르씨의 아들은 최근 프랑스의 6·25전쟁참전용사협회에 가입했다. 몽클라르씨는 “내가 저 세상으로 가더라도 할아버지의 발자취를 잊지 말라는 뜻에서 참전용사협회에 가입하라고 권유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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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몽클라르씨가 아버지 랄프 몽클라르 장군이 젊은 장교이던 시절 초상화 앞에 섰다./손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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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군은 연인원으로 약 3500명이 참전했으며, 현재 60명 가량의 노병이 생존해 있다. 대부분 90대에 접어들었다. 몽클라르씨는 “노병들이 계속 하나 둘 세상을 떠나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몽클라르씨는 삼성전자, 현대·기아차, 신한은행 등 한국 기업들의 이름을 열거한 뒤 “6·25전쟁 때 가난하던 한국이 지금은 손꼽히는 부자 나라가 됐다”며 “몽클라르 장군의 아들로서 기쁘고 자랑스럽다”고 했다. 몽클라르 장군은 전쟁기념관으로 쓰이는 파리 시내 앵발리드에 묻혀 있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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