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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호 사장 높으신 분인 거 알지만”…공정위, 삼성에 격분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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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정현호 삼성전자 사장. 삼성 제공


“정현호 사장님 높으신 분인 거 압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남들은 다 낸 집주소를 그분 것만 구글에서 찾아보라고 하면 되겠습니까?”

지난 2일 공정거래위원회 심판정. 삼성웰스토리 일감 몰아주기 사건을 심의하기 위해 열린 2차 전원회의에서 심사관이 한층 높아진 어조로 물었다. “지난 전원회의에서 품격 있는 심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의사진행발언 시간을 요청한 직후다. 일주일 전 열린 첫 전원회의에서는 삼성 쪽의 기세가 상대적으로 나았다는 평가가 일부 나온 터였다. 이에 심사관 쪽이 반격에 나선 셈이다.

심사관이 언급한 정현호 삼성전자 사장은 이재용 부회장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이번 사건에 관여한 혐의로 조사 대상에 올랐지만 단 한 번도 서면·대면조사에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변호사가 대신 의견서 써줄 테니 고발 대상에서 빼라”는 답만 받았다는 게 심사관 쪽 설명이다. 심사관이 직접 방문하기 위해 집주소를 요청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심사관은 “(변호사 말대로)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모 아파트라고 나와 그곳에 가봤지만, 아파트가 너무 커서 정 사장 집을 특정할 수 없었다”고 호소했다.

심사관의 반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첫 전원회의에서 삼성 쪽 대리인이 보인 언행도 도마에 올랐다. 당시 삼성 쪽은 “심사관은 이번 사건을 모두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라는 관점에서 봤는데 이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라고 평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심사관은 “대리인은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황당하다’는 류의 말을 쓰면서 전원회의를 조롱했다”며 “이런 조롱하는 발언을 삼가주실 것을 요청한다”고 했다.

위원회는 심사관 쪽 손을 들어줬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삼성이) 동의의결을 신청했기 때문에 전원회의가 합리적으로 진행될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며 “(삼성 쪽 대리인은) 주관적 판단이 아닌 증거와 판례를 근거로 얘기해달라”고 주문했다. 조 위원장은 삼성 쪽의 이런 태도가 부적절하다는 데 다수의 위원들이 공감했다고도 강조했다.

조 위원장의 발언 이후에도 기싸움은 계속됐다. 이날 오전 열린 전원회의는 본안이 아닌 삼성이 신청한 동의의결 개시 여부를 다루기 위한 자리였으나 분위기는 달랐다. 삼성 쪽 대리인은 시정방안을 설명하는 데 5분가량을, 부당지원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데는 30분가량을 할애했다. 시정방안을 논할 때도 “이 사건은 쟁점이 굉장히 많아서 강한 제재를 받으면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며 “장기간 분쟁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동의의결과 본안의 쟁점이 일정부분 겹치긴 하지만, 전후에 본안을 다루는 전원회의가 별도로 열린 점을 감안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삼성은 심사보고서를 받은 지 4개월여 만인 지난달 12일 동의의결 절차를 신청했다. 한 공정위 관계자는 “본안 전원회의를 2주 앞두고 동의의결을 신청한 것”이라며 “실제로 동의의결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을 노렸다기보다는 일종의 ‘플레이’를 한 거라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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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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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계열사끼리 칼을 겨누는 웃지 못할 풍경도 연출됐다. 삼성전자 쪽 대리인은 전원회의 내내 “삼성웰스토리가 태스크포스(TF) 합의를 위반하고 속임수를 써서 (삼성전자 등) 몰래 높은 이익을 가져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삼성전자 등 4개사는 오히려 삼성웰스토리에 불리한 조건으로 계약했는데, 이런 합의를 삼성웰스토리가 일방적으로 깼다는 것이다. “웰스토리는 처음부터 합의를 지킬 생각이 없었습니다. 저희에게 잘못이 있다면 삼성웰스토리를 의심하지 못한 것뿐입니다.” 삼성전자 쪽 대리인은 이렇게 강조했다.

삼성웰스토리의 꼼수에 미래전략실이 이용됐다는 주장마저 제기됐다. 삼성전자 쪽 대리인은 “(삼성웰스토리 사례를 보면) 삼성그룹 내에서 힘없는 작은 회사들이 미전실을 이용해 호가호위해서 더 큰 계열사와 협상하는 전략을 알 수 있다”며 “무슨 꿍꿍이로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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