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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법안' 교황청 항의에 伊총리 "우린 세속국가" 반박(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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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기 총리 "의회서 어떤 법이든 자유롭게 논의 가능"

교황청 "법안 막을 의도 없어…모호한 규정 지적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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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4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한 민주주의 위기 관련 컨퍼런스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왼쪽)과 마주한 마리오 드라기 총리. [AP=연합뉴스]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가 '성 소수자 혐오 반대 법안'에 대한 교황청의 외교적 항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일간 라 레푸블리카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드라기 총리는 23일 밤(현지시간) 상원 대정부 질의에서 "우리나라는 세속 국가이지 종교 국가가 아니다. 의회는 어떤 법이든 자유롭게 논의하고 통과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법 체제는 법률이 언제나 헌법적 원칙과 국제적 책무를 존중하도록 보장하며, 여기에는 교회와 맺은 조약도 포함된다"고 부연했다.

'교회와 맺은 조약'은 무솔리니 통치 때인 1929년 교황청과 이탈리아 정부 간에 체결된 라테라노 조약(Lateran Pacts)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바티칸시국의 독립국 지위, 교황의 수위권(Papal supremacy), 가톨릭 신자의 신앙 및 표현의 자유 등을 인정한 조약이다.

가톨릭 신자인 드라기 총리는 또 "세속적 원칙은 국가가 종교에 무관심하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종교의 자유를 보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1989년 종교 이슈 관련 헌법재판소 결정문 내용을 인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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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는 이탈리아 정치권에서 입법을 논의 중인 성 소수자 혐오 반대 법안을 두고 교황청이 외교 채널을 통해 항의의 뜻을 표시한 것과 관련한 드라기 총리의 첫 공개 발언이다.

이탈리아의 성소수자 혐오 반대 법안은 게이나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등의 성소수자 및 장애인을 차별하거나 폭력을 선동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것을 뼈대로 한다.

작년 11월 하원 표결을 통과해 현재 상원에 계류돼 있다. 진보-보수 정당 간 입장차가 뚜렷해 입법에 진통을 겪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교황청이 외무장관인 폴 리차드 갤러거 대주교를 통해 지난 17일 외교 공한의 하나인 구술서(Note Verbale)를 주교황청 이탈리아 대사관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돼 주목을 받았다.

교황청은 구술서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으나, 이탈리아 현지 언론은 해당 법안이 신앙 및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교황청의 우려를 담았다고 보도했다.

가톨릭 신자들이 종교적 신념에 따라 동성결혼 불인정 등 성 소수자 권리에 반하는 의견을 내놓을 경우 법적 분쟁에 휘말릴 수 있고, 이는 결과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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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시국의 성베드로 대성당 전경. [ANSA 통신=연합뉴스 자료사진]



교황청은 구술서에서 이 법안이 라테라노 조약에 위배될 수 있다는 점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황청이 라테라노 조약까지 꺼내들며 이탈리아 국내 입법 과정에 목소리를 낸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외교적 항의로 비쳐진 이번 행보를 두고 이탈리아 정치권에서 내정 간섭 논란이 일자 교황청은 그 취지를 명확히 설명하려 애쓰면서도 현재의 법안에 문제가 있다는 기존 입장은 굽히지는 않았다.

교황청 2인자로 불리는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은 이날 교황청 관영 매체인 바티칸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탈리아가 세속 국가라는 드라기 총리 발언에 완전히 동의한다면서 "어떤 식으로든 법안을 막을 의도는 전혀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교황청도 성적 지향이나 인종, 신념 등을 이유로 누군가를 향해 편협함 또는 증오심을 드러내는 행태에 반대한다고 부연했다.

그는 다만, 법안 내용상 어떤 행위가 범죄인지 그 기준이 애매하고 불확실하다며 표현의 자유 침해 우려를 제기하는 배경을 좀 더 분명히 설명했다.

외교 채널을 통한 구술서 전달 방식으로 이탈리아 정부에 의견을 전달한 데 대해선 "국제 관계에서 통용되는 적절한 대화 수단"이기 때문이라며 주권국 사이의 정상적인 의사 소통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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