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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뉴스분석]연내 금리 인상 못박은 한은…확장 재정과 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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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4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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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 정책과 재정 정책이 각자의 길을 가게 됐다. 한국은행이 연내 금리 인상을 못 박으면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충격 속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함께 돈 줄을 풀었지만, 급증하는 가계 빚 부담과 자산 시장 과열 등 금융불균형이 심화하며 통화 정책이 정상화로 방향을 튼 것이다.

가계 빚이 1765조원에 이르는 상황에서 ‘빚투(빚내서 투자)’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에 나선 이들의 고민도 깊어지게 됐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24일 물가안정목표 설명회에서 “현재 완화적 통화정책을 연내 적절한 시점부터 질서 있게 정상화해 나가겠다”며 “(경기) 회복세에 맞춰 (금리를) 정상화하는 것은 당연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제대로 깜빡이를 켜고 차선까지 바꾸려는 모양새다. 금융통화위원회 일정상 빠르면 7월이나 8월, 늦어도 10월이나 11월에 금리 인상이 현실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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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기준 금리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한국은행, 미국연방준비제도(Fed)]


이 총재가 기준금리 인상 시점을 ‘연내’로 특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달 28일 금통위 전체 회의 직후 연내 기준 금리 인상의 가능성을 시사한 지 한 달여만이다.

이 총재는 지난 11일 한국은행 71주년 기념사에서는 “경제가 견실한 회복세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면 현재의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향후 적절한 시점부터 질서 있게 정상화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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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투와 영끌 속 1분기 가계빚 1765조원 증가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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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에 따르면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1분기말 민간신용 비율은 216.3%로 역대 최대치다. 1년 전(200.4%)보다 15.9%포인트 높아졌다. 가계 빚 증가 속도도 빨라졌다. 명목 GDP 대비 가계 빚은 104.7%에 이른다.

소비 심리가 풀리고 경기 회복세가 본격화하고 있다. 한은이 내놓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4.0%지만 4%대를 넘어서는 성장이 예상된다.

물가 상승 압력도 커지고 있다.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보다 2.6% 오르며 9년 1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5월 생산자물가지수(PPI)도 전년동기대비 6.4% 상승하며 물가에 빨간 불이 켜졌다. 이 총재는 ”경제 주체의 인플레이션 기대가 높아지며 추가 물가 상승을 유발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완화적 재정 및 통화정책으로 시중에 풀린 돈으로 인한 자산 시장 과열 양상도 걱정스러운 수준이다. 한은의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말부터 지난 5월 말까지 전국 아파트값은 18.3%, 코스피는 47.6%, 비트코인은 531.5%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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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물가, 9년 1개월 만에 최고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통계청]


그 결과 금융 불균형이 실물 경제를 뒤흔들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한은은 향후 3년간 금융 불균형이 이어지고 세계 금융위기 같은 충격이 생기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2.2%로 떨어질 수 있다는 예상을 내놨다.

이 총재가 연내 기준금리 인상을 못 박았지만, 본격적인 긴축 모드라는 해석엔 경계감을 드러냈다. “기준 금리를 현재에서 한두 번 올리더라도 통화정책 기조는 여전히 완화적인 수준이라고 본다”고 강조한 것이다.

이에 대해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긴축이냐 아니냐는 실질금리를 갖고 판단하는 게 맞다”며 “물가 상승으로 이미 마이너스 수준으로 내려간 실질 금리(명목 금리-기대인플레이션율)가 더 떨어지면서 사람들이 돈을 너무 쉽게 빌려 자산 투기에 나서고 돈의 흐름이 통제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 교수는 “나중에 더 큰 위험이 올 수 있는 만큼 완화 정도가 심해지지 않는 수준에서 조절하는 정도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돈의 흐름이 왜곡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정이란 설명이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 인상 예상 시점이 1년여 앞당겨진 상황에서, 미국의 긴축에 따른 자본 유출 등 충격에 대비하는 선제적 조치로 금리 인상에 나선다는 시각도 있다.

그럼에도 1ㆍ2차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통해 50조원가량의 재정을 투입하려는 상황에서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에 속도를 내는 것은 재정과 엇박자를 낸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이 총재는 “엇박자가 아닌 상호보완적으로 운용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리와 같은 통화 정책은 가계와 기업 등 경제 주체 모두에게 무차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탓에 ‘네이팜탄’에 비유된다. 금리 인상의 효과는 경제 전반에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만 정교하지는 않다. 이 총재가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보완관계를 얘기하는 이유다.

금리 정상화 과정에서 충격을 피할 수 없는 계층에 대해서는 이른바 ‘정밀 타격형’ 재정 정책이 필요하다. 이 총재는 “대면서비스업종이나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이 금리 정상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지만 재정 정책을 통해 이를 해소하면 통화정책 정상화에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총재는 또 “통화 정책과 재정 정책이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하면 바람직한 정책 조합인 동시에 저금리 장기화에 따른 부작용을 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통화 당국이 기준금리 인상의 시점을 사실상 특정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델타 변종 바이러스 등으로 인한 경제의 불확실성이 여전한 상황에서 자산 시장 과열과 금융불균형 완화를 위해 금리를 인상한다면 오히려 다른 취약 분야의 유동성을 고갈시키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하현옥ㆍ윤상언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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