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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1 (일)

[단독] 시험 성적으로 월급준다고? 뿔난 포스코ICT 직원들 노조 설립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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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설립 위한 찬반 투표 진행... 민노총도 지원 의사 밝혀

시험 성적으로 달라지는 급여가 직접적 이유, 구조조정 두려움도 한몫 거들어

업계에선 판교발 IT 노조 설립 움직임이 포스코에도 영향 미쳤다 평가

아주경제

정덕균 포스코ICT 대표.




포스코ICT 직원들이 새 인사제도에 반발하며 노동조합 설립에 나선다. 이들은 새 인사제도가 연봉감소와 직원퇴출 등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며 새 인사제도 철폐와 노사협의회 해체를 요구했다. 네이버·카카오·넥슨 등에서 시작된 IT 근로자들의 권리 찾기가 SI(시스템 통합) 업계로 확산될지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24일 SI 업계에 따르면 포스코ICT 직원 500여명이 노조 설립을 위한 온라인 찬반 투표를 진행한다. 노조 위원장은 아직 선임되지 않았지만, 새 인사제도에 대한 내부 반발이 크고 민주노총 금속노조 포스코 지회가 노조 설립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의사를 밝힌 만큼 곧 직원들의 동의를 받아 노조 설립 신고를 할 가능성이 크다.

포스코ICT 직원들이 노조 설립에 나선 이유로는 지난 14일 사측이 공지한 새 인사제도가 꼽힌다. 새 인사제도에는 객관식·주관식·서술형으로 구성된 시험 성적으로 기본급을 차등 지급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사측은 직원들의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한 동기 부여가 목적이라고 밝혔지만, 직원들은 실제 받게 되는 돈이 전보다 줄어들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새 인사제도에 따르면 4단계로 나뉜 현행 P직군 체계는 역량레벨로 개편된다. 직원 역량은 산업역량·공통역량·직무역량을 더해 산출하며, 이에 따라 전체 연봉의 60%를 차지하는 기본연봉급도 직무역량급으로 바뀐다.

논란이 되는 부분은 시험 성적으로 결정되는 직무역량급이다. 포스코ICT 직원들은 "객관식 15문항 50점, 주관식 5문항 20점, 서술형 3문항 30점으로 구성될 직무역량 시험으로 인해 기본급이 전보다 낮아질 우려가 있고, 직원들에게 불리하게 변함에도 불구하고 제도 개편 과정에서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인사제도 개편에 많은 포스코ICT 직원이 반대하거나 불만을 품고 있다. 실제로 익명 SNS 블라인드의 포스코ICT 채널에서 진행한 새 인사제도 도입에 대한 찬반투표에서 전체 참여 인원 308명 중 반대는 288명(93.5%)으로 집계됐으며, 찬성은 20명(6.5%)에 불과했다.

한 포스코ICT 직원은 "새 인사제도의 문제점은 직원기본급을 개편하는 것에 있다. 시험 봐서 등급별로 직무역량급을 주는 것은 동료의 연봉을 빼서 주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회사는 이를 개인연봉 상승효과가 있는 것처럼 알리고 있다. 기본급은 그대로 두고 업무 성과에 따라 더 주는 구조가 옳다고 본다. 시험도 난이도, 커트라인, 평가자 등 평가방식에 대한 기준이 없어서 직원퇴출 프로그램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 직원들의 동의를 얻지 않고 시행 날짜를 정한 후 새 인사제도를 공지한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시행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고 지적했다.

이에 포스코ICT 사측은 "새 인사제도는 기존의 연공서열형 인사 급여체제를 기술역량 중심 체제로 변화하는 것에 따른 것으로, 경쟁사도 기술 중심을 표방하며 유사한 제도를 도입·운영하고 있다. 역량레벨 상승이나 하락에 따른 직무역량급이 변동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나, 기존 인사제도도 최하위 평가를 받으면 연봉이 삭감되는 구조이다. 또한 시험 한 번을 잘못 보고 역량레벨이 하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2년 동안 4차례 이상의 시험 기회를 주고 가장 높은 점수를 평가에 반영할 계획이다"고 반박했다.

이어 "역량레벨은 역량시험(40%), 부서장 평가(40%), 동료들의 다면평가(20%)로 구성되어 어느 하나의 평가 점수에 좌우되지 않고, 역량레벨이 1~2단계 떨어져도 연봉이 삭감되지 않도록 급여 체계를 설계했다. 시행 첫해에는 시험 문항을 직원들이 풀 수 있게 출제할 계획이며, 1년 동안은 연봉 하락도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포스코ICT는 "새 인사제도는 구조조정과 무관한 것으로, 회사가 기술중심기업으로 변화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 목적에 맞게 핫스킬이나 기술명장 수당 등 다양한 역량 수당을 신설했다. 직원들이 새 인사제도를 이해할 수 있게 설명자료를 배포하고, 지역별 사업장에서 50차례 이상의 설명회를 진행했다. 지속해서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새 인사제도를 보완하고 직원의 동의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직원과 사측의 의견이 평행선을 달리는데 포스코ICT의 노사협의회인 한우리협의회는 사측에 근로자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일부 포스코ICT 직원들의 지적이다. 한 포스코ICT 직원은 "한우리협의회는 전원 사퇴하고 이를 대신할 노조 설립을 빨리 추진해야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할 경우 전체 근로자 절반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개별 근로자는 사측의 동의 요구에 대응할 힘이 부족한 만큼 노조를 설립해 취업규칙 변경에 대응해야 한다는 게 포스코ICT 근로자들의 주장이다.

최근 판교의 IT 기업에서 하나둘씩 노조가 세워지고 있는 것도 포스코ICT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노조 설립에 나서게 된 한 이유다. 민노총 포스코 지회 관계자는 "IT 업체라는 특성상 포스코ICT는 금속노조보다 화섬노조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 포스코ICT 직원들이 민노총 산하노조를 택할지 개별노조를 택할지 정해진 것은 없지만 (노조 설립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SI 업계에선 장기근속자 위주의 포스코ICT 인력구조와 성과를 내려는 정덕균 포스코ICT 대표의 경영계획이 충돌한 것을 이번 사태의 간접적인 원인으로 보고 있다. 30대 후반~40대 초반 인력이 중심이 되는 다른 IT 기업과 달리 포스코ICT는 전체 직원 2000여명 가운데 45세 이상이 절반(980여명)에 달하는 등 시니어 중심의 조직 구조로 되어 있다. 근속 연수에 따라 기본급을 올리는 구조를 철폐하고 시험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시니어들에 대한 인건비 지출을 줄이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한 포스코ICT 직원은 "IT 시스템만 구축·유지·보수하는 타 SI 업체와 달리 포스코ICT는 포스코의 제철소와 각종 사회간접자본을 구축·유지하기 위해 IT 인력과 함께 현장 엔지니어들도 보유하는 만큼 다른 IT 기업과 조직 구조를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전했다.

강일용 기자 zero@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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