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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낙태 표결 앞두고 갈등 폭발한 EU… 의회로 쏟아진 혐오 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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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생산 건강 및 권리는 인권"
낙태는 회원국 소관이란 반론도
한국일보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유럽연합 의회 내부. 브뤼셀=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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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임신중절(낙태) 관련 결의안 표결을 앞두고 유럽연합(EU) 내 갈등이 커지고 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강조하는 이 결의안을 발의한 의원은 혐오 이메일을 받는 등 거센 반대 여론에 직면했다. 현지 매체들은 낙태 의제가 EU 내 극명한 분열을 보여줬다고 진단했다.

23일(현지시간)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유럽에 따르면, EU 의회에선 24일 'EU 내 여성 건강 측면에서의 성·재생산 건강 및 권리 상황'이라는 결의안 표결이 진행될 예정이다. 지난달 여성인권·평등위원회가 압도적 지지를 보내며 전체 표결에 넘겼으나, 이번에는 격론이 오갈 것으로 보인다. 500건 이상의 수정안이 추가 제출되는 등 논의 과정이 순탄치 않았기 때문이다. 결의안을 주도한 크로아티아 의원 프레드라그 마티치(사회민주진보동맹)는 "나에 대한 혐오 이메일을 받았고, 사무실로는 작은 태아 인형까지 배달됐다"며 외부로부터 전례 없이 큰 압박이 가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결의안의 핵심은 EU 회원국이 낙태에 대한 합법적이고 안전한 접근, 현대적 피임, 가임치료, 출산의료 등을 포함, 모든 성·재생산 건강 및 권리를 '침해할 수 없는 인권'으로 인식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의사가 자신의 신념에 따라 낙태 수술을 거절할 수 있는 이른바 '양심 조항'에 대한 비판적 의견도 담겼다.

이는 주로 폴란드나 몰타 등처럼 낙태 수술 접근이 사실상 금지된 국가들에 대한 압박 조치로 해석된다. 폴란드의 경우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낙태는 헌법에 보장된 생명권과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기형아 낙태를 위헌이라고 결정한 후, 대규모 시위가 장기간에 걸쳐 벌어지기도 했다. 다운증후군 같은 선천적 결함, 강간·근친상간에 의한 임신 등일 때만 낙태가 가능할 정도로 애당초 허용 범위가 워낙 좁았던 터라, 헌재 판단을 둘러싸고 "사실상 낙태 전면금지 선언"이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던 것이다.

보수 진영은 연일 공세를 펴고 있다. 이날 EU 의회의 폴란드 의원 리샤르트 레구트코는 결의안을 본회의 안건에서 빼야 한다고 요청했고, 스페인 의원 마가리타 데 라 피사 카리온 등도 "결의안 내용이 여성들에게 출산과 모성으로부터 등을 돌리라고 독려하고 있다"며 반대 의견을 표했다. 일각에선 "낙태를 포함한 보건 정책은 각 회원국 소관"이라고까지 주장했다. 폴리티코유럽은 EU 의원들이 "결의안 조항들은 EU 권한을 크게 뛰어넘는다" "낙태는 국제법상 인권의 지위를 인정받지 않는다" 등의 반론을 펴고 있다고 전했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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