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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비폭력 신념’ 입영 거부, 대법원서 첫 무죄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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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로 보여”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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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아니면서 자신의 비폭력, 기독교적 신념에 따라 입영을 거부한 남성에게 처음으로 무죄가 확정됐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24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비(非) 여호와의 증인 신도 중 예비군 훈련을 거부했다가 무죄가 확정된 사례는 있었지만, 현역 입영을 거부한 피고인에게 무죄가 확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신념과 신앙이 내면 깊이 자리 잡혀 분명한 실체를 이루고 있어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검찰에 따르면 A씨는 2017년 현역 입영 통지서를 받고도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아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재판에서 종교적·정치적 신념을 기초로 한 양심에 따라 입영을 거부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성 소수자인 A씨는 자신이 고등학생 때부터 획일적인 입시교육과 남성성을 강요하는 또래 집단문화에 반감을 느꼈고, 대학 입학 후에는 평화와 사랑을 강조하는 기독교 정신에 따라 전쟁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A씨는 이스라엘의 무력 침공을 반대하는 기독교단체 긴급 기도회나 한국전쟁 60주년 평화기도회 반대 시위,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운동, 수요시위 등에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사회적 약자에게 고통을 안기는 전쟁과 타인에 대한 폭력을 전제로 존재하는 군대가 기독교 교리와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A씨는 자신을 ‘퀴어 페미니스트’라고 규정하며 다양성을 파괴하고 차별과 위계로 구축되는 군대 체제와 생물학적 성으로 자신을 규정짓는 국가권력을 용인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A씨의 주장에도 1심은 A씨가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 처벌의 예외 사유인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징역 1년 6월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은 “피고인은 형사 처벌을 감수하면서 입영을 거부했고, 항소심에서는 36개월간 교도소 또는 구치소에서 대체복무 하겠다는 의지도 나타냈다”며 “신앙과 신념이 내면 깊이 자리 잡혀 분명한 실체를 이루고 있고 이를 타협적이거나 전략적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심은 이와 관련해 “병역 거부 사유의 ‘정당한 이유’는 양심 내용의 타당성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양심, 즉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마음의 소리가 얼만큼 진실한가에 따라 이뤄진다”면서 “A씨는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를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므로 병역법이 규정한 ‘정당한 사유’가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대법원 관계자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아닌 사람이 비폭력주의·반전주의 신념과 신앙을 이유로 현역 입영을 거부해 무죄를 확정 받은 최초의 판결”이라며 “단순히 기독교 신앙만을 근거로 병역을 거부하는 것도 아니어서 기존의 종교적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 사안과 구별된다”고 설명했다.

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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