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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데이터 제국주의 시대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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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읽기] 김종대ㅣ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지금은 데이터 강자들에 의해 세계가 분할되는 격렬한 경쟁이 시작되었다. 첫번째 강자는 중국 정보통신연구원(CAICT) 산하의 IMT-2030 추진단이다. 재작년에 화웨이, 중싱통신(ZTE), 차이나모바일을 비롯한 중국의 37개 기업과 연구소로 출범한 이 연합체의 배후는 중국 인민해방군이다. 이 연합체는 6월에 첨단 컴퓨팅과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및 블록체인을 포괄해서 구축하는 차세대 통신체계인 ‘6G 백서’를 발표한 데 이어 올여름에는 6G 전용의 인공위성도 발사한다. 중국 전역에는 이미 550만개의 4G 기지국과 80만개 이상의 5G 기지국이 구축되어 있다. 지난 4월에 중국 산업기술정보부는 72만개의 5G 기지국을 추가로 짓겠다고 했다. 이미 중동과 아프리카에도 중국은 기지국 건설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 연합체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외치는 시진핑 주석이 작년에 발표한 ‘디지털 실크로드’를 구현하는 기술군대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라오스, 사우디아라비아, 세르비아, 헝가리, 터키, 아랍에미리트(UAE) 등 16개국을 동맹군으로 확보하고 전세계로 진군한다.

두번째 강자는 미국 통신산업협회(ATIS) 산하의 ‘미래 G동맹’(Next G Alliance)이다. 작년에 발족한 이 연합체에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에릭슨, 노키아, 에이티앤티(AT&T) 등 20여개 글로벌 기업이 참여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삼성전자와 엘지(LG)전자는 이 연합체에서 중심적 역할을 담당한다. 미국의 4G 기지국은 40만개, 5G 기지국은 5만개로 중국의 10% 수준밖에 안 된다. 이대로 2030년대를 맞으면 기술 패권의 지위는 중국으로 넘어가는 비상사태라고 본 미국은 한국, 일본, 영국, 오스트레일리아를 동맹군으로 확보하였다. 이 연합체는 차세대 통신에서 중국 기업을 퇴출시키고 북미지역의 6G 기술표준을 세계로 확산시킨다는 목표다. 노키아 연구팀의 연구자 피터 베터는 아예 이 연합체에 “연구자 군대(army of researchers)를 창설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내놓으며 중국과 일전불사를 외치고 있다.

이제껏 세번째 강자는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전략적 자율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유럽연합(EU)의 혁신 연합체, 지평 2020(Horizon 2020)이었다. 이 연합체는 디지털 유럽을 향한 표준과 기술개발을 외치면서 유럽의 기술자립을 달성하고 기술주권을 확립할 계획이다. 프랑스 정부 관계자는 “우리는 중국에 점령당하는 것을 원치 않지만 미국에 점령당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는 말로 미-중 패권 경쟁과 거리를 둔 유럽의 차별성을 강조한다. 이런 유럽의 태도에 실망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G7 정상회의 직후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를 따로 만나 기술협력을 핵심으로 한 ‘신대서양 헌장’을 발표했다.

이 경쟁은 우주의 인터넷 군집위성(Satellite constellation)을 확보하는 로켓 경쟁으로도 확대된다. 자국 위성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상대방 우주무기를 무력화하는 우주에서의 군비 경쟁도 격화될 것이다. 상대방의 사회 기반에 대한 사이버 공격과 방어도 더욱 일상화될 것이다. 통신의 속도 경쟁에는 레이저, 광자통신, 양자컴퓨터가 동원된다. 여기서 이겨야만 모든 것이 인공지능으로 연결되는 만물지능인터넷(AIoE) 시대의 지배자가 된다. 이 경쟁은 개인의 정보 욕구를 해소하거나 시장의 요구에 따라 나타난 것이 아니라 오직 상대방을 타도하기 위한 패권 경쟁이다. 새로운 팽창주의이며, 데이터 제국주의다. 미래의 3차 세계대전이라고 불릴 만한 이 경쟁의 흐름 속에서 극단적 효율성을 신봉하는 기술만능주의가 확산되고 미래의 부와 권력을 향한 멈출 수 없는 질주가 이어진다.

지금이야 기술개발 수준에서 경쟁이 진행 중이지만 2025년쯤에는 각자가 기술표준을 선포하면서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절대 강자가 결정되는 2030년대에 근접하면 어떤 식으로든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시나리오가 가상공간에서 진행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렇지가 않다. 시작은 가상공간이지만 사회의 모든 시스템에 파고드는 전쟁, 매슈 매더의 소설 제목대로 사이버 스톰이 될 것이다. 갈등을 조정하고 중재해야 할 국제통신협회(ITU)는 무력화된 지 오래다. 전쟁은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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