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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인권위 "사관학교 신입생 이성교제 전면금지는 인권 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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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사관학교, 47명 징계…과실점 300점에 반성문 제출도

"순수한 이성교제가 가혹행위·성추행과 같은 Ⅰ급 과실?"

"국가가 사생활 영역 간섭…강압에 의한 교제금지 규정 존재"

노컷뉴스

스마트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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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생도의 이성교제를 전면금지하고, 이를 '1급 과실'로 중징계한 해군사관학교(해사)의 처분은 '인권 침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판단이 나왔다.

24일 인권위는 해사가 지난해 11월부터 올 1월까지 '1학년 생도의 이성교제 금지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생도 47명을 징계한 것은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등을 중대하게 침해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해사 측에 피해자들에 대한 징계처분을 모두 취소하고 '사관생도 생활예규'(예규)에 규정된 1학년 이성교제 금지 및 징계규정을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앞서 피해자들은 "사람 마음은 법으로 막을 수 없는 것인데 성인(成人)이 이성교제를 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아야 한다는 것 자체가 불합리하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해사 측은 "여성 생도가 최초 입학한 1999년부터 1학년 생도의 이성교제 제한규정을 예규에 반영해 운영하고 있다"며 "이는 1학년 생도의 생도생활 조기 적응, 강요에 의한 이성교제로부터 1학년 생도 보호, 상급 생도의 1학년 지도·평가 시 공정성 확보 등을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인권위 조사결과, 피해생도 중 4명은 지난해 11월 주변 생도들이 자신들의 '1학년 이성교제 금지규정 위반' 사실을 인지했다는 사실에 부담을 느껴 학교당국에 자진 신고했다. 타 생도들의 제보도 산발적으로 이어지자 학교 측은 아예 지난해 12월 7~9일을 전체 생도들의 '자진신고 기간'으로 설정해 △교제 상대방 △교제기간 △현재 교제여부 등을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올 3월 졸업한 생도 5명을 포함해 남자생도 23명, 여자생도 24명이 징계처분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성생도는 현재 2~4학년 총원(48명)의 절반이 징계대상이 됐다. 이 중 현재 교제 중인 사례는 10건에 불과했고 이미 헤어진 경우도 18건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감경 없이 Ⅰ급 과실로 분류돼 11주 또는 14주의 장기근신 처분을 받았다. 피해생도들은 이 기간 당직사령의 허가 없이는 생도사 내에만 머물러야 했고, 평일 저녁과 주말·공휴일 등에도 전투복 상태로 집합해 휴대전화를 반납하고 자율학습을 해야 했다. 이밖에 외출·외박 금지는 물론 1년간 각종 특전 박탈 및 제한조치도 이뤄졌다. △매주 1회 반성문 제출 △한 학기 품행점수(125점 만점) '0점' 처리 △졸업포상에서 제외 등의 불이익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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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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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는 1학년 생도 간 이성교제, 1학년 생도와 타 학년 생도 사이 교제를 Ⅰ급 과실로 보고 최대 14주의 장기근신 및 과실점 300점을 부과하는 해사의 예규가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절도 있고 책임감 있는 사관생도를 양성하는 사관학교에서 일정 정도 생도의 품행과 관련한 규율을 정하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징계하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의 사관학교에서도 볼 수 있는 보편적 현상"이라고 전제했다.

하지만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나 애틋한 감정은 어떤 제도나 법이 관여하기 어려운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1학년 생도의 이성교제를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Ⅰ급 과실로 징계토록 하고 있는 피진정학교의 예규상 규정은 기본권 보장의무를 국가의 기본책무로 정하고 있는 헌법원칙에도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생도 간의 건전한 이성교제와 휴가 때 사적 공간에서의 개인적인 만남과 상호작용까지 제재 대상으로 삼아 국가가 간섭하는 것은 행복추구권의 핵심 영역에 속하는 이성교제에 관한 자기결정권(자기운명결정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제재가 불가피하다며 해사가 근거로 든 '선배의 강압에 의한 교제' 역시 이미 관련규정이 따로 있었다. 인권위는 "1학년 이성교제 금지의 근거로 내세우는 '강요에 의한 이성교제 금지'는 이미 예규에 금지하는 규정이 있고 '상급 생도의 1학년 지도·평가 시 공정성 확보'의 문제는 2~4학년 생도 간 이성교제에서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적성평가 시 상급학년 생도에 대한 하급학년 생도의 '공정성 평가' 비중 확대 등 다면평가(상향평가) 활성화 등을 통해 해결해 나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1학년 이성교제를 전면금지하는 것은 합리적 사유라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규정 위반에 따르는 중징계 또한 '신입생도 보호 목적'으로는 도가 지나치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이성교제에는 구체적 행위태양에 따라 비난가능성이 현저하게 다른 수많은 경우가 존재할 것인데 피진정학교의 예규상 규정은 Ⅱ급 과실 또는 경과실 처분을 내릴 여지가 전혀 없다"며 "순수한 사생활 영역에서의 이성교제 행위를 구타·폭언·가혹행위나 성추행·성희롱, 절도행위 등과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취급해 장기근신이 기본인 Ⅰ급 과실로 의율한다는 점에서 책임과 처벌 간 비례원칙에도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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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사관학교 사관생도들. 국방일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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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1학년 생도의 이성교제 시 다른 사관학교들은 훨씬 가벼운 징계를 내리고 있다. 육군사관학교는 '30일 이내' 단기근신과 31~40점 벌점을 기본으로 봉사 및 21~30점 벌점으로 감경도 가능한 것으로 파악됐다. 공군사관학교 역시 '외출제한 4주·벌점 40점'을 최대로 하는 경징계를 단계별로 두고 있지만 실제 징계사례는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육사는 올 2월 학교 교육운영위원회에서 생도 간 이성교제를 전면 허용하기로 결정해 육군본부에 예규 개정을 건의한 상황이다. 공사는 지난해 11월 1학년 생도 간 이성교제는 허용키로 하고 생활규정을 개정했다.

인권위는 "예규상 제한하고 있는 '이성에게 교제를 목적으로 개인적인 감정을 전달하는' 행위가 어떤 행위까지를 의미하는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이성교제 목적이라는 것을 국가기관이 어떤 기준을 갖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인지, 그것이 가능한 것인지도 의문"이라며 "조사과정에서 해당 남녀 생도 2명은 징계의결 이후 항고심에 이르러서도 서로 사귀지 않았다며 억울함을 항변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군인에 준하는 사관생도의 신분을 고려하더라도 현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용인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 보지 않을 수 없다"며 "피해자들에 대한 부당한 징계조치를 취소하고 유사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소속 생도들의 인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관련규정의 전반적 검토 및 개정을 권고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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