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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 떠나 스타트업 간 ‘반도체의 마법사'...그가 예견한 미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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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전문기자의 Special Report] 소프트웨어 2.0 시대

‘반도체의 마법사(Silicon Wizard)’ 짐 켈러(Jim Keller·62)가 작년 인텔을 떠났을 때 업계에선 그의 다음 행로에 주목했다. 그가 회사를 옮길 때마다 업계의 기술 트렌드를 바꿀 반도체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애플·테슬라에 있으면서 첫 독자칩을 개발해 준 것은 전설로 통한다. 그런 켈러가 세계 최고 CPU 회사를 버리고 간 곳은 놀랍게도 캐나다 반도체 스타트업 ‘텐스토런트(Tenstorrent)’였다. “컴퓨터의 미래인 ‘소프트웨어 2.0’에 맞는 하드웨어(반도체) 설루션을 개발하기 위해서”라고 그는 짤막하게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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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 2.0 시대가 오고 있다. 컴퓨터 업계 전설이 ‘미래’라 단언한 소프트웨어 2.0 시대에는 소프트웨어 정의가 통째로 바뀐다. 기존 소프트웨어(1.0)는 연역법 기반. 사람이 컴퓨터에 논리 구조(알고리즘)를 짜 넣은 뒤 조건을 주고 결과를 산출시킨다. 인간의 요구를 컴퓨터에 전달하는 수고(코딩)가 필요했다. 일이 복잡해질수록 인력·시간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이 때문에 컴퓨터 능력도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소프트웨어 2.0 시대엔 인간이 직접 알고리즘을 짜지 않는다. 대신 컴퓨터에 시키려는 일에 맞는 데이터를 인공신경망(뉴럴넷)에 투입해 신경망이 스스로 뛰어난 알고리즘을 짠다. 소프트웨어 2.0은 테슬라 AI 총괄인 안드레이 카파시(Andrej Karpathy·35)가 2017년 처음 용어를 들고 나왔다. 그는 스탠퍼드, 인간처럼 말하는 AI ‘GPT-3’를 개발해 유명해진 연구소 오픈AI의 스타 연구자 출신이다.

◇소프트웨어 2.0 시대의 첨병 테슬라

소프트웨어 2.0에서 최고의 논리 구조를 만들려면 3가지가 필수인데, 목적에 맞는 대량·양질의 데이터, 예외적 상황의 다양한 사례, 빅데이터를 학습시킬 초고성능 컴퓨터다. AI 전문가들은 이 3가지만 충족되면, 컴퓨터가 지금까지 인간이 풀 수 없었던 난제를 해결하는 데 더 빨리 다가설 수 있다고 주장한다.

김대식 네이버웹툰 AI 개발총괄은 “소프트웨어 2.0 상업화의 최전선에 테슬라가 있다”고 했다. 도로 주행의 모든 조건에 대응하는 자율주행 논리 구조를 인간이 짜는 건 어렵기 때문에, 데이터를 학습시켜 AI가 스스로 논리 구조를 짜고 개선하도록 하는 소프트웨어 2.0을 테슬라가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네이버가 개발한 AI 언어 모델 ‘하이퍼클로바’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네이버는 50년치 뉴스와 9년치 네이버 블로그 데이터를 국내 최대·최고 성능의 수퍼컴으로 학습시켰다. 개발자들이 놀란 것은 문제 해결과 발전 속도다. 네이버 AI개발조직 클로바의 성낙호 개발총괄은 “기존의 AI 방법론에서는 수개월 걸릴 일을 (소프트웨어 2.0 방식을 통해) 불과 몇 분 만에 확인하는 등 예상을 뛰어넘는 능력을 보였다”고 했다.

이 방식이 무서운 건 더 많은 데이터를 더 높은 성능의 컴퓨터로 학습시킬수록, 컴퓨터가 계속 영리해진다는 것이다. 테슬라는 세계에 깔린 100만대 이상의 자사 차량에서 데이터를 끊임없이 수집한다. 대당 8개의 카메라에서 수집된 영상이 자율주행 시스템을 끊임없이 발전시킨다. 지금까지 수집된 데이터는 48억㎞, 즉 지구를 12만 바퀴 달린 분량. 카파시는 지난 22일 한 자율주행 워크숍 발표에서 “세계에서 다섯째로 강력한 수퍼컴을 갖췄다”고 밝혔다.

◇소프트웨어 패러다임 전환이 불러오는 하드웨어 패러다임 전환

앞서 켈러가 ‘소프트웨어 2.0’에 최적화된 하드웨어(반도체) 설루션을 언급한 것은 소프트웨어 패러다임 전환에 맞춰 소프트웨어를 돌리는 하드웨어(반도체) 구조에도 패러다임 전환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반도체는 소프트웨어 1.0에 최적화돼 있기 때문에, 데이터 신경망 학습에 최적인 새로운 설계 구조(아키텍처)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는 반도체 업계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회로 선폭을 더 가늘게 만들어 성능을 높이는 ‘미세 공정 경쟁’에서 한계에 부딪히더라도, 소프트웨어 2.0과의 연계를 통해 퀀텀 점프를 노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 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 규모는 2019년 123억달러(약 13조7000억원)에서 2024년 439억달러(약 48조9000억원)로 급성장할 전망이다. 현재의 AI 반도체는 AI 개발의 일부 도구로써 활용하는 데 머물러 있다. 소프트웨어 2.0과 맞물려 비약적인 성능 향상이 가능해진다면, AI 반도체 성장은 예측을 훨씬 뛰어넘을 수 있다.

◇4~5년 내에 IT 경쟁력의 판도 바꿀 수도

카파시는 “앞으로 모든 하드웨어가 신경망에 특화된다면 AI 발전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빨라질 것”이라고 했다. 소프트웨어 2.0에 최적화된 컴퓨터 하드웨어가 곧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고, 여기에 엄청난 기회가 있다는 게 카파시·켈러의 예언이다. 국내 한 IT 대기업의 AI 전문가는 “시야를 4~5년, 혹은 10년 뒤로 넓혀보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얘기”라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소프트웨어·하드웨어의 인재상도 바뀐다. 기계적 코딩이 덜 중요해지는 대신, 문제를 파악하고 빅데이터를 어떻게 AI에 적용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낼 것인가에 훨씬 많은 인력이 필요해진다.

하드웨어도 마찬가지다. 켈러 말처럼 소프트웨어의 변화를 먼저 포착해 하드웨어 변화로 연결할 인재가 요구된다. ‘알파고’를 만든 구글 딥마인드, 미국 자율주행 스타트업 ‘뉴로’ 출신인 박은병 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소프트웨어 2.0에 어떻게 대비하느냐에 따라 ‘기술 한국’의 미래가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데이터 주권 시대, 한국에 위기이자 기회… 글로벌 플랫폼 등 도전해볼 만]

“소프트웨어 2.0 시대가 본격화되면, 데이터 주권, 즉 데이터를 누가 장악하고 있느냐가 기업 간 승부에서 훨씬 더 중요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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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2만대의 데이터 서버를 보관할 수 있는 네이버 데이터센터‘각(閣)’의 외부 모습.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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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의 AI 개발 조직 클로바의 성낙호 개발총괄은 22일 본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매일같이 운전하는 양질의 주행 데이터를 엄청난 양으로 수집하는 것이 테슬라 자율주행 AI의 경쟁력이듯, 한국과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데이터를 어떻게 확보하고 활용하는가가 관건이라는 얘기다.

소프트웨어 2.0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한국에 더 큰 위기 혹은 플랫폼 비즈니스나 반도체 산업 도약의 기회가 올 수도 있다. 좋은 데이터와 활용 능력만 있다면, 지금처럼 단순 코딩 등에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 없이 더 창조적인 일에 집중할 수 있다. 미국·중국에 비해 리소스가 부족한 한국의 살길이다. 2018년 AI 미디어 간담회에서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가 “프로그래밍의 시대는 끝났다. 프로그래밍이 아니라 (AI) 러닝의 시대”라고 발표한 이후, 이 회사가 게임 개발에 소프트웨어 2.0을 도입하기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 기업이 충분한 데이터를 확보 못한다면, GAFA(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나 넷플릭스·스포티파이 같은 기업에 한국 시장마저 빼앗기게 된다. 중국은 더 큰 위협이다. 이미 텐센트 같은 기업이 한국 시장 데이터를 확보해나가는 등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데이터 신경망 학습에 최적화된 반도체 개발이 이뤄진다면, 한국이 차세대 반도체에서 기회를 찾을 수도 있다. 당장은 비교가 되지 않지만 한국에도 짐 켈러 같은 비전을 가진 이가 있다. ‘퓨리오사AI’의 백준호 대표다. 퓨리오사는 지난 1일 네이버 등으로부터 800억원의 추가 투자를 받기도 했다. 백 대표는 “켈러와 마찬가지로 소프트웨어 2.0에 맞는 반도체 개발이 목표”라고 했다. 아직 엔지니어 50명에 불과하지만 AI 전문 소프트·하드웨어 인력이 골고루 포진된 게 강점이다. 2019년 글로벌 AI 반도체 테스트 대회 ‘엠엘퍼프’에서 아시아 스타트업 중 유일하게 성능을 인정받았고 일부 분야에선 엔비디아·인텔을 앞섰기도 했다.

[최원석 국제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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