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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차현진의 돈과 세상] [25] 외국어 공부가 국어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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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단어 네이처(nature)를 보통 자연이라고 번역한다. 그러나 자연은 ‘스스로 그렇게 있는 것’이고, nature는 ‘조물주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nature의 어원은 탄생을 의미하는 라틴어 나투라(natura)이기 때문이다. 창조론 사상이 숨어있는 nature를 정확히 번역한다면, 타연(他然)이라고 해야 한다. 같은 사물을 바라보는 동양과 서양의 관점이 완전히 반대다.

금융과 파이낸스(finance)도 마찬가지다. 자금의 융통을 뜻하는 금융은, 빚을 얻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면, finance는 채무의 종결을 뜻한다. finance는, 벌금을 뜻하는 fine과 마찬가지로 그 뿌리는, 끝을 뜻하는 프랑스어 ‘fin’이다. finance와 금융의 관점은 정반대다.

금융이라는 말이 없을 때 중국인들은 은근(銀根)이라는 말을 썼다. 전통적으로 은을 돈으로 쓴 데서 나온 표현이다. 그런데 20세기 초 은본위 제도가 무너지면서 금융이라는 말로 대체되었다. 일본에서 나와 한국을 거쳐 중국으로 전파되었다고 보인다. 일본 대장성 주세국장 메가타 다네타로(目賀田種太郞)가 대한제국의 재정고문으로 부임해서 만든 ‘지방금융조합규칙(1907년)’에 금융이라는 단어가 쓰였다. 1915년 간행된 중국 책에도 그 말이 등장한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은 물밀듯이 밀려오는 서양 문명과 사상들을 새로운 말에 녹였다. 권리와 의무, 귀납과 연역, 긍정과 부정, 내포와 외연, 철학과 과학, 기술과 예술 등이 그 예다. 그러나 엉뚱하게 굴절시킨 말들도 있다. futures는 일정 기간 뒤에 물건을 넘기는 계약인데, 일본은 자신들의 전통 관습(つめかえし)에 맞추어 그 말을 선물(先物)이라고 번역했다. 한국이라면, 후물(後物)이라고 번역했을 것이다.

왜곡과 굴절을 피하려면, 남이 씌워준 언어의 색안경을 벗어야 한다. 외부 세계를 날것으로 마주해야 생각이 깊어진다. 괴테는 “외국어를 모르는 것은 모국어를 모르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외국어에 관심 갖는 것은 국제화 시대의 자연스럽고 타연스러운 태도다.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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