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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직설]공정과 정의의 갈림길에 놓인 산업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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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산업 전환을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전환할 것인가. 이른바 4차 산업혁명과 기후위기를 계기로 인공지능·탈탄소 중심으로 산업구조를 전환해야 한다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데, 여기서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라는 개념이 대두되고 있다. 정부와 산업계, 노동계가 모두 합의할 수 있는 수준에서 얘기하자면 산업 전환으로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경향신문

강남규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산업 전환은 민주주의의 문제다. 이해당사자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정부와 산업계, 노동계는 물론이고 지역사회도 엄청난 영향을 받는다. 기후위기 대책이라는 점에서 환경계와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이고, 새로운 노동시장이라는 점에서 청년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노동조합에 속하지 않은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생존의 문제다. 산업 전환에 관한 한 그들 모두가 당사자다. 이 복잡한 문제를 풀어내라고 민주주의가 있다.

그런데 지금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정부가 기후위기와 산업 전환 문제를 다루겠다며 지난 5월29일 출범시킨 ‘2050 탄소중립위원회’의 위원은 97명으로 지나치게 방대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여기에 산업계 인사들은 상당수 참여하고 있는데 농민, 소상공인 당사자 몫은 없다. 노동계 몫으로 양대노총 위원장 2인이 배정됐을 뿐이다. 이 상황은 정부의 전환정책이 어디에 방점을 찍고 있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노동자·농민·소상공인들을 정책의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태도다. 민주노총은 위원회가 실질적인 논의의 장이 될 수 없다며 불참을 선언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내야 할까. 대안으로 검토할 만한 주장이 노동조합에서 나왔다. 전국금속노동조합의 ‘공동결정법’이다. 취지는 단순하다. 산업 전환이 모두의 문제라면, 모두가 대등한 주체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업장별 노사 공동결정을 통한 산업전환협약 체결 의무화, ‘일하는 사람들’의 참여 보장을 위한 민주적 산업전환위원회 설치 법제화, 그리고 현재 노사 교섭의 의제를 노동조건과 복지 문제로 제한하고 있는 노동조합법의 개정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금속노조는 오늘부터 10만 입법 청원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앞서 언급한 탄소중립위원회에서 노동 문제는 ‘공정전환위원회’라는 별도의 분과위원회를 통해 논의된다고 한다. ‘정의로운 전환’ 대신 ‘공정 전환’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just’(정의로운·공정한)라는 단어의 번역 차이로 이해할까 싶다가도 현재 한국 사회에서 ‘공정’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어떻게 쓰이고 있는가를 떠올리면 징후적이라는 느낌도 든다. 한국형 공정 담론은 ‘반칙 없는 능력주의 경쟁’을 강조할 뿐이고 경쟁에서 탈락한 자들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데, 공정 전환 역시 그런 경로를 밟게 되지는 않을까. 그러니 산업 전환에 직면한 우리가 택해야 할 길은 공정이 아니라 “희생과 파괴가 없는 노동 참여 산업 전환”(금속노조), 즉 정의의 길인 것이다. 그 길의 맨 앞에 노동자·농민·소상공인의 공동결정권이 있다.

강남규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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