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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모두 부인한다' 양승태 등 뻔한 답변서…판사 "이러면 재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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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전·현직 법관들이 민사소송에서 형식적인 내용의 답변서만 제출해 재판부에게 "이렇게 형식적 답변만으로 일관된다면 '피고는 할 말이 없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엄포'를 들었다. 사진은 지난 4월 관련 형사재판에 변호인단과 함께 출석 중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모습. /이선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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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피해 판사 손배소 재판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전·현직 법관들이 민사소송에서 형식적인 내용의 답변서만 제출해 재판부에게 "이렇게 형식적 답변만으로 일관된다면 '피고는 할 말이 없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받았다. 재판부는 형식적 답변만 되풀이된다면 2차 변론에서 바로 재판을 종결하겠다는 '엄포'도 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5부(이관용 부장판사)는 23일 송승용 부장판사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전·현직 법관 8명과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첫 변론기일을 열었다.

재판부는 원고 측 문서 송부 촉탁(법원이 재판에 필요한 문서를 보관한 공공기관에 송부를 요구하는 것) 현황을 확인한 뒤 2차 변론기일을 9월 1일로 잡고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재판을 종결하겠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원고가 송부 촉탁한 문건이 와야 청구 원인의 구체적 틀이 만들어지겠지만, 공소장과 관련 보고서 등이 다 제출된 상태라 재판을 속행할 단계"라며 "원고가 (받지 못한 문서를) 문건을 받는 대로 청구 원인을 보완하고 피고도 답변을 내면 판단해보겠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9월 1일 결심하겠다"라고 밝혔다.

재판부가 결심을 예고하자 양 전 대법원장 측 대리인 이상원 변호사는 반발했다. 원고 측이 일부 문서를 받지 않아 청구 원인이 완전히 정리된 것도 아닌데 재판을 마무리하는 건 부당하다는 이유다. 이 변호사는 "원고에게 청구 원인 정리를 명하셨는데 청구 원인이 변경될 수 있는 상황에서 결심 가능성을 말씀하시는 게 이해가 안 간다"라고 항변했다.

이에 재판부는 피고 가운데 한 명인 김연학 전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의 답변서를 스크린에 띄워 "이렇게 형식적인 답변으로 일관된다면 재판부로서는 '피고는 (주장)할게 없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공전 가능성이 있어 적극적 답변을 촉구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이 낸 답변서를 놓고도 "이 소송이 제기된 지 꽤 됐는데 답변으로 낸 건 1월 27일 자 서면밖에 없지 않으냐"고 되물었다.

스크린에 띄워진 김 전 심의관의 답변서에는 '원고의 청구 원인을 모두 부인한다', '소송대리인이 최근 이 사건을 수임해 시간이 다소 필요하다', '빠른 시간 내 사실관계를 파악하겠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재판부는 김 전 심의관을 비롯한 대부분 피고의 답변서가 '형식적'으로 쓰였다고 꼬집었다.

재판부는 또 "청구 원인의 핵심은 물의야기 법관 보고서가 작성되고 인사 불이익을 가했다는 것인데 지금까지 이뤄진 문서송부 촉탁만으로도 인사기록 카드와 관련 보고서가 다 제출돼 있다. 피고들의 각 역할도 공소장에 나와 있다"며 "피고에게 증거자료를 제출할 충분한 기회를 줘야 한다면 (결심하지 않고) 속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핵심 쟁점인 인사 불이익에 대해서는 "물의야기 법관 보고서가 작성되고 실제 인사 결과가 발생해 법원장에게 보고되는 등 민사적으로는 사실관계가 기본적으로 드러난 사건"이라는 판단도 내비쳤다.

재판부의 적극적인 답변서 제출 촉구에 이 변호사는 "정리하는 대로 바로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송 부장판사는 지난해 11월 △재판권 행사 방해 △인사 불이익 △명예훼손을 이유로 양 전 대법원장 등을 상대로 3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양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판사들에 대한 인사 불이익 조처를 검토했고, 실제로 2015·2017년 정기 인사에서 본인에게 인사 불이익을 줘 헌법상 법관의 독립을 침해했다는 것이 송 부장판사의 입장이다.

이 사건 피고 명단에는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을 비롯해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 강형주 전 법원행정처 차장, 김연학·남성민 전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 나상훈 전 법원행정처 기획심의관이 이름을 올렸다. 이 가운데 임 전 차장·강 전 차장 측은 이날 변론에 출석하지 않았다. 민사재판은 형사재판과 달리 당사자 출석이 강제되지 않는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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