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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성씨가 다르면 정이 없다” 일본 이번에도 부부동성 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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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일본 최고재판소가 23일 혼인 신고시 부부 중 어느 한 쪽의 성씨를 따르도록 규정한 민법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2015년 동일 사안에 대한 최고재판소의 합헌 판단 이후 부부별성 제도 도입 요구가 확산됐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라지지 않았다. 일본은 혼인 시 부부 중 한 쪽의 성씨를 따르도록 법률로 의무화한 세계 유일의 국가로 남게 됐다. 동시에 부부의 96%가 남편 성씨를 다르면서 법률이 성격차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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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고재판소 대법정은 이날 부부의 성씨를 일치시킬 것을 요구하는 민법과 호적법 규정에 대해 재판관 15명 중 11명의 다수 의견으로 헌법에 합치된다고 판단했다고 아사히신문 등이 보도했다.

일본의 민법 750조는 부부동성을 규정하고 있고, 호적법 74조는 부부 중 한 쪽의 성씨 변경을 혼인신고의 필수적인 요건으로 정하고 있다. 지난해 가미카와 요코 법무상은 “부부동성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 이외에는 알고 있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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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에도 혼인신고가 수리되지 않아 법적 혼인관계를 인정받지 못한 남녀 3쌍이 2018년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혼인신고서의 ‘결혼 후 성씨’를 기입하는 칸에 남편과 아내의 성씨를 모두 기재했다가 혼인신고를 반려당했다.

이들은 재판 과정에서 “성씨를 포함한 이름은 사람이 모든 활동에 사용하는 정체성”이라며 “부부 중 어느 한 쪽이 결혼 전 성씨를 쓰지 못하는 불이익이 크고, ‘결혼 및 가족에 관한 법률은 개인의 존엄과 남녀의 평등에 의해 정해야 한다’는 헌법 24조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이들은 여성의 사회 진출 증가와 시민 의식의 변화 등을 근거로 “부부동성 규정은 합리성을 잃고 있다”고 강조했다.

2015년 최고재판소의 부부동성제에 대한 합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일본 사회에서는 부부가 각자의 성씨를 유지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됐다. 내각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2017년 들어 ‘부부별성제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42.5%로 반대 여론(29.3%)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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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포럼(WEF)이 발간한 ‘2021 성 격차 보고서’에서 일본의 성 격차 지수는 0.656으로, 156개국 중 120위를 차지했다. 정치 분야 성 격차는 147위였고, 경제분야 성 격차는 117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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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소송에서는 위헌 판단을 끌어내기 위해 현행법이 ‘남녀를 차별하고 있다’는 주장 대신 ‘신념에 따른 차별이 존재한다’는 주장이 추가됐다. 2015년 소송에서 원고들은 일본 부부의 96%가 남편의 성씨를 따르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남녀 차별’이라는 주장을 폈지만 재판부는 “남편의 성씨만 선택하는 것은 부부간 협의의 결과”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에도 부부동성제의 벽은 넘지 못했다. 오타니 나오토 재판장은 이날 “6년 전의 판결 후 사회나 국민의식의 변화라고 하는 사정을 감안해도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하는 판단을 변경할 수 없다”며 “어떤 제도를 채택하는 것이 타당한 지 묻는 것과 위헌 여부를 재판에서 심사하는 문제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도 지난해 12월 “부부의 성과 관련된 구체적인 제도 방식에 관해서는 사법부의 판단에 따라 추가 검토를 진행한다”며 사법부로 공을 넘겼다. 사법부와 정부가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는 것이다. 여당도 마찬가지다. 집권 자민당이 법 개정 검토에 나섰지만 소속 의원들이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각자의 모임을 발족하면서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이다 나호 선택적부부별성 전국진정액션 사무국장은 아사히신문 기고에서 “자민당 내의 폐쇄적인 심의 속에서 흐지부지 됐다”며 “입법부에 민의에 입각한 입법을 바랄 수 없는 비정상적인 나라”라고 지적했다.

일본에서 결혼한 부부가 남편의 성을 따르는 관행은 메이지 시대부터 정착됐다. 이전 까지만해도 일부 귀족만이 성씨를 사용했고, 귀족 부부도 별성을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예컨대 가마쿠라막부를 세운 초대 쇼군인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부인 마사코는 남편의 성인 미나모토노를 쓰지 않고, 혼인 전의 성인 호조를 썼다.

메이지 시대에 들어 근대적인 조세·징병 체계 구축을 위해 평민의 성씨 사용이 허용됐고, 가족제도가 만들어졌다. 1898년 일본은 서구의 법률을 모방해 자체적인 민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가족은 가장의 명령에 복종한다’, ‘혼인으로 아내는 시댁에 들어간다’ 등을 규정하고 성씨에 있어서는 원칙적으로 아내가 남편의 성씨를 따르도록 했다. 당시만해도 서구 국가들 대다수가 부부동성제를 채택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47년 일본 정부는 민법을 개정해 ‘부부 중 어느 한 쪽의 성을 선택할 수 있다’는 현행 제도의 틀을 마련했다.

1980년대를 전후해 일본은 세계적인 흐름과 멀어지기 시작했다. 당시 유엔이 1979년 여성차별철폐조약을 채택하자 서구 국가들의 상당수가 부부동성제를 폐기하고 부부별성제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일본내에서도 정부가 여성차별철폐조약에 비준한 1985년 이후 부부별성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요구가 본격화됐지만, 좀처럼 제도 변화로 이어지지 않았다.

유엔의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2003년부터 수차례에 걸쳐 일본 정부에 부부동성제 등 차별적인 법규정의 개정을 권고했다. 당시 일본 민법에는 이혼 후 여성의 재혼을 6개월간 금지하거나, 결혼할 수 있는 연령을 남성은 18세, 여성은 16세로 차등 규정하는 등 성차별적인 규정이 다수 존재했다. 이들 규정이 유엔 권고의 대상이 됐다. 2015년 이혼 여성의 재혼 금지 기간을 남성보다 길게 규정한 법률은 위헌 판단을 받았고, 내년부터는 결혼 가능 연령도 남녀 공히 18세로 통일될 예정이다.

부부동성제 역시 법 개정 노력이 있었지만 ‘전통’을 앞세우는 보수적인 사회에 번번이 발목이 잡혔다. 1996년 법무성 주도로 부부별성제가 포함된 민법 개정안을 마련됐지만 국회 반대로 불발됐다. 집권 자민당 중심의 보수적인 의원들은 당시 “(부부가 다른 성을 쓰면) 가족의 정이 깨진다”며 반대했다. 당시 법무성에서 근무하며 부부별성제 도입 논의에 관여했던 고이케 노부유키 변호사는 아사히신문에 “(반대 진영에서는) 부부동성이 일본 고유의 전통이라는 분위기가 강했다. ‘일본 사회의 등뼈, 이 나라의 형태다. 헌법은 바꿀지언정 부부동성을 바꿀 수 없다’는 말까지 있었다”며 “앞으로 1세기는 무리가 아닌가” 생각했다고 말했다.

2009년 민주당 연정의 첫 정권 교체후, 부부별성제 도입이 추진됐지만 안팎의 반대에 부딪혀 재차 불발됐다. 2019년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도 6개 야당이 부부별성제 도입을 찬성했지만, 아베 신조 총리는 “가족간 일체감을 손상한다”며 일축했다.

나라여자대학교의 미츠나리 미호 교수는 아사히신문에 “(부부별성이)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데 가장 합리적”이라며 “일본은 뒤쳐졌다. 1996년 민법 개정 무산 사태가 아직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고 말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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