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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생색내기·불통 경영…무늬만 ESG 경영 걸러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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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용자산 내 투자 기업은 이사회 구성에 1명의 여성이 없으면 이사회 안건에 대해서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다.’ ‘고객 기업의 이사회에 1명 이상의 여성이 없는 경우 IPO(상장)를 주관하지 않는다.’ ‘특정 사업의 환경·사회적 리스크가 높으면 해당 사업은 특별 안건으로 산정돼 추가 검토를 거친다.’

골드만삭스의 ESG 경영 원칙이다.

골드만삭스는 애플(Apple)과 손잡고 탄소저감 펀드도 조성했다. 애플이 2030년까지 탄소중립(carbon neutral) 목표를 두고 있는데 애플 자체 노력으로는 탄소배출의 75%만 저감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나머지 25%에 해당하는 목표치를 채우기 위해 애플은 골드만삭스, 국제보존협회(Conservation International)와 손잡고 숲을 만들어 연간 100만t의 대기 중 탄소를 제거하는 2억달러 규모 펀드를 조성했다.

ESG 경영은 이처럼 구체적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지배구조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상장 혹은 투자 유치를 도모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이를 단순히 트렌드로만 읽고 단편적으로 접근한다든지, ‘무늬만 ESG’ 혹은 위원회 설치 식 ‘생색내기용’으로 접근하는 사례도 많다. 업계에서는 이를 ‘ESG 워싱’ 혹은 ‘ESG 위장’이라는 표현을 쓰며 경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매경이코노미

남양유업은 ESG 관련 활동을 하겠다고 대내외 천명했지만 ‘불통 경영’으로 결국 대주주가 바뀌었다. <매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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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워싱을 아시나요

▷ESG 트렌드 편승…생색내기 만연

‘ESG 워싱’ 위험 주의보.

이시연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의 최근 보고서에서 찾아볼 수 있는 표현이다. 이 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최근 ESG라는 이름 붙이기(네이밍)와 홍보만으로 친환경 기업이나 상품으로 포장해 투자자를 속일 수 있는 ‘ESG 워싱’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인 지배구조 개선이라든지 환경 보호 철학 없이 흉내만 내는 식을 뜻한다.

이럴 경우 많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당장 소비자 기만 문제가 떠오른다. ‘착한 기업’ ‘친환경’ 기업인 줄 알고 관련 제품을 사서 썼는데 알고 보니 ‘갑질 기업’ ‘환경 파괴 기업’이었다면 소비자 신뢰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남양유업 사례가 대표적이다. 남양유업은 2018년 사회 공헌을 전담하는 CSR 위원회를 발족시킨 데 이어 올해 3월에는 ESG 추진위원회도 만들었다. ‘탈플라스틱 정책’에 적극 동참하겠다며 비전 역시 ‘친환경 Green 경영’으로 잡았다.

하지만 실제 지배구조 개선이나 ‘불통’ 경영은 개선하지 못했다. 결국 시장 신뢰를 잃은 남양유업은 대주주가 변경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ESG를 표방한 일부 펀드 역시 설왕설래다.

분명 친환경, 지배구조 개선 등을 앞세웠지만 여타 펀드와 종목 구성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삼성전자, 마이크로소프트 등 국내외 우량 대기업 비중이 절대적인 가운데 일부 중소 친환경 업체만 구색 맞추기용으로 끼워 넣은 펀드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ESG 펀드’인 줄 알고 투자한 사람 입장에서는 내막을 알아보니 별다른 차별점도 느낄 수 없고 사회 변화에 동참한다는 취지에도 안 맞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진정성을 갖춘 ‘ESG 펀드’마저 ‘도매급’으로 넘어갈 여지도 있다. 관련 금융 시장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는 말이다.

매경이코노미

▶ESG 혼란 원인은

▷‘S’와 ‘G’ 사이 이해 상충 여지도

현장에서 이처럼 혼란이 가중되는 이유 중 하나는 ‘ESG’라는 대의명분, 즉 큰 키워드는 동일하게 사용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각자 달리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S(사회)’ 부문에서는 드센 시민단체의 주장을 들어줘야 하고, ‘G(지배구조)’ 부문에서는 더 거센 동학개미 등 소액 주주의 이해관계를 맞춰줘야 하는데 서로 상충될 가능성도 크다.”

조환익 전남대 석좌교수(전 한전 사장)의 지적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 기업 환경은 특유의 노동 경직성, 대주주 위주의 의사 결정 구조에서 최근에서야 소액 투자자 권리 존중, 노조 참여 경영 시도 등으로 옮아가는 과도기에 놓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기업이 ESG 중 어느 하나의 가치만 강조하는 쪽으로 방점을 찍으면 오히려 그 기업 경영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

김석집 네모파트너즈POC 대표는 “한국 기업 환경이나 특수 상황이 고려되지 않은 채 ‘글로벌 스탠더드(기준)’만 강조하는 것도 현장에서는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기업은 ‘종합 점수의 오류’ 현상을 적극 악용할 여지도 있다.

예를 들면 화석연료 기업이 환경 개선 쪽에는 투자하지 않고 이사회에 대주주와 친분이 많은 외부 여성 사외이사를 등용한다든지, 내부에 경영진 의견을 잘 따르는 여성 임원을 적극 선임하는 식의 지배구조 개선에만 초점을 맞춘다고 치자. 이럴 경우 ESG 종합 점수는 올라가니 ‘ESG 경영을 한다’고 대내외에 천명할 수 있다.

이시연 연구위원이 보고서에서 “기업의 환경, 사회, 지배구조 영역 평가 사이에 상관성이 없어 통합 등급만 보고 투자할 경우 낭패를 볼 가능성이 있다”고 꼬집은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ESG 평가기관인 서스틴베스트의 류영재 대표는 “ESG를 하나의 범주로 놓고 각 기업을 평가하면 모순이 발생한다. 에너지 관련 기업에는 ‘환경(E)’ 개선 쪽으로 가중치를, 금융 회사는 ‘지배구조(G)’ 분야에 더 가중치를 주는 식으로 맞춤형 평가 기준을 두지 않고 평가하면 결과치가 왜곡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안은

▷평가 기준 정립해야

대안은 뭘까.

우선 평가기관이 평가 기준을 투명하게, 또 현장 분위기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순영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특히 ESG 관련 데이터, 공시의 양적, 질적 수준을 높이고 표준화도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나 유럽증권시장감독청(ESMA)이 ESG 펀드 구성 종목이 실제 주창하는 펀드 철학, 전략과 일치하는지 점검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이해된다.

기업 공시 의무를 강화하는 방법도 있다. EU는 올해 3월부터 역내 모든 금융사는 ESG 공시를 의무화했다. 한국은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은 2030년까지ESG 공시를 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보다 빨리 대부분의 기업이 공시 의무화를 할 수 있도록 기간을 앞당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류영재 대표는 “감독당국의 상시 모니터링도 중요하지만 자본 시장 생태계의 최상위층에 위치한 공적 연기금, 정부 출연기금 등에서 ESG 평가 기준을 업종별로 명확하게 제시하고 여기에 맞게 운영하고 있는지 분기마다 챙기는 방식으로 나서준다면 의외로 빠른 시일 내에 ESG 경영 환경이 자리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수호 기자 suhoz@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14호 (2021.06.16~2021.06.2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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