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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기자·작가·장서가…日대표 지식인 다치바나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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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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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知)의 거인'으로 불리는 일본의 대표 저널리스트·작가 다치바나 다카시(사진)가 세상을 떠난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 향년 80세. 그가 지난 4월 30일 급성관상동맥증후군으로 별세한 것을 가족들이 최근에서야 고인의 제자가 운영하던 사이트를 통해 알렸고 마이니치·아사히신문 등은 23일 일본 지성의 영면을 크게 보도했다.

한국에서 '도쿄대생은 왜 바보가 되었는가' '나는 이런 책을 읽어봤다' 등의 책으로 유명한 그는 탐사보도를 통해 일본 총리를 낙마시킨 계기를 만든 언론인이면서 인문·과학·사회 등 다방면에서 베스트셀러를 남긴 작가다.

그는 생전에 "미지의 경계를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어려운 문제들을 푸는 것이 좋다"고 말했고 넘치는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조사해서 집필한다'는 원칙을 지켰다. 지(知)의 거인으로 불리는 그에 대해 '뭐든지 알고 있는 사람'이라기보다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그의 호기심과 분야를 넘나드는 취재·연구·집필에서 비롯됐다. 과학 분야 취재를 할 때는 "최첨단에서 일어나는 것을 자신의 언어로 전달하는 것이 저널리즘"이라는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다치바나는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탐사기사로 세상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40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난 다치바나는 도쿄대 불문과를 졸업한 뒤 문예춘추의 주간지 기자로 들어갔다가 2년여 만에 퇴사했다. 1967년 도쿄대 철학과에 다시 들어가 공부를 하며 르포 기사나 평론 등을 쓰는 자유기고가로 활동했다.

다치바나는 1974년 문예춘추에 당시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의 퇴진 계기가 된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 그 금맥과 인맥'을 실었다. 다나카 총리의 인맥을 샅샅이 조사하고 회사 등기부등본 등 갖가지 자료를 분석해 그의 정치수법과 금권정치 의혹을 드러냈다. 당시 이 기사는 '조사(탐사) 보도의 선구' '잡지 저널리즘의 금자탑'이라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후에도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철저한 취재·연구를 기반으로 '중핵파 vs 혁마르파'(1975), '일본공산당 연구'(1978), '저널리즘을 생각하는 여행'(1978), '농협 거대한 도전'(1980), '우주로부터의 귀환'(1983), '뇌사'(1986), '뇌사 재론'(1988), '21세기 지의 도전'(2000), '시베리아진혼가-가즈키 야스오의 세계'(2004), '천황과 도쿄대-대일본제국의 생과사'(2005), '망해가는 국가, 일본은 어디로 향하는가'(2006), '죽음은 두렵지 않다'(2015) 등 많은 분야를 넘나들며 베스트셀러를 내놔 지(知)의 거인으로 불렸다. 특히 '우주로부터의 귀환'에서는 '우주 체험이 인간의 내면에 어떤 영향을 줄까'라는 의문을 풀기 위해 미국 아폴로계획에 참여해 달 탐사를 했던 우주비행사 등을 취재하고 내면의 변화를 탐구했다.

다치바나는 방대한 독서량을 자랑했고 10만여 권의 장서를 소장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늘어난 책을 감당하지 못해서 도쿄 분쿄구 고이시카와에 지하 1층~지상 3층 규모의 서재용 빌딩인 '고양이빌딩'을 지었을 정도다. '관심이 있는 분야는 최소 10권은 읽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1995년부터 도쿄대 강사·객원교수 등으로 강단에 섰는데 '조사해서 쓸 줄 아는 것이 현대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이라는 생각에 따라 학생들에게 만나고 싶은 사람을 인터뷰하는 과제를 내기도 했다. 2007년 방광암 선고를 받았을 때는 수술 후 자신의 체험기를 잡지에 발표하는 등 암·죽음을 테마로 한 작품을 집필하거나 다큐멘터리 제작에도 관여했다.

고인의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자신의 저서 '지식의 여행은 끝나지 않는다'에 "장례식에도, 묘에도 전혀 관심이 없다"는 말을 남긴 데 따라서 수목장으로 치러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말년에 당뇨병·고혈압·심장병 등으로 자주 병원 신세를 진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 = 김규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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