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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못참겠다" 녹음기 켜는 직원…"괴롭힘 누명쓸라" 녹음하는 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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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다 회사원 / 직장인 A to Z ◆

매일경제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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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우월적 지위·관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는,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하는 행위. 이 세 가지 요소를 모두 충족할 경우 '직장 내 괴롭힘'으로 정의해 이를 금지하도록 하는 근로기준법이 시행된 지 2년이 지났다.

괴롭힘이 발생했을 경우 회사는 이를 조사하고 피해 직원에게 근무 장소 변경, 유급휴가 명령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회사가 직원의 피해 주장·신고를 이유로 해고 등 불이익을 주면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하지만 최근 취업준비생은 물론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다니고 싶은 회사'로 꼽혔던 네이버를 비롯한 여러 이름 있는 대기업이 직장 내 괴롭힘 문제로 구설에 오르면서 제도에 대한 무용론마저 불거지고 있다.

직장 상사의 잘못을 회사 인사관리(HR) 부서에 일러바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실행에 옮기더라도 전후 과정에서 감당해야 할 압박의 크기는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특히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사회 초년생일수록, 아니면 괴롭히는 상사가 회사에서는 잘나가는 '에이스'일수록 더욱 그렇다. 극단적인 행동은 아무것도 못하고 당하는 괴롭힘 속에 무력감이 쌓이고 쌓여서 나타난다. "죽을 각오가 돼 있으면 차라리 회사에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그랬냐"며 이해하지 못하는 동료들의 반문에서 한 번 더 상처를 받는다.

도입한 지 2년이 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얼마나 잘 작동하고 있을까.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많다면 없느니만 못한 게 아닐까. 아니면 당장은 수사(修辭)에 그치더라도 잠재적 가해자에 대한 견제수단 역할만이라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맞을까. 매일경제 '어쩌다 회사원'팀이 직장인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봤다.

◆ 직장인 절반 이상 괴롭힘 '참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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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을 실시하는 대형 보험사에 다니는 30대 초반 직원 A씨. 그는 작년 초부터 지금까지 팀장에게 부당한 업무 지시를 받고 폭언을 듣고 있다. 팀장은 종종 본인의 고등학생 자녀 과제를 이공계 학과를 졸업한 그에게 시킨다. 한두 번 그러다 말겠지 하는 생각에 처음에는 몇 번 들어줬지만, 갈수록 양이 늘어나 본업에 차질이 빚어질 지경에 이르렀다. 한두 번 거절하니 업무적으로 꼬투리를 잡혀 "대학 나온 거 맞냐" "회사에서 너만 월급 편하게 버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A씨는 인사팀 동료에게 팀장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할지 말지 상의했다. 하지만 "네가 겪은 피해를 과연 회사에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해줄지 모르겠다"는 답을 들어야 했다. 인정 여부를 떠나 신고라도 해야 분이 풀릴 것 같았지만, 결국 그마저도 포기했다. A씨는 "신고하고 회사를 나간다고 해도 보험업계가 워낙 좁지 않느냐"며 "웬만한 기업 인사팀끼리는 인사 정보를 공유하는 사이라 다른 업종으로 이직할 게 아니면 나가더라도 조용히 나가는 게 낫다"고 말했다.

대기업 사정이 이러면 중소기업은 말할 것도 없다. 수도권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입사 3년 차 직원 B씨는 "회사가 작고 사실상 가족경영을 하다 보니 신고를 해도 대부분 '증거 불충분'으로 결론을 내더라"며 "그나마 대기업은 여론 등의 눈치라도 보지, 중소기업은 어디 하소연할 곳조차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상사를 신고한다는 것은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각오가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상사에 대한 처벌이나 인사 조치 없이 작은 회사 안에서 계속 얼굴을 마주해야 할지 모른다는 점도 신고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외국계 기업은 뭔가 다르지 않을까. 상사가 툭하면 고압적인 태도로 업무 지시를 내리고 사무실에서 고성을 지르는 탓에 오랜 기간 스트레스를 받아왔다는 C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3개월 전 그는 상사를 글로벌 본사에 신고했고, 본사로부터 조사에 착수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처음에는 '역시 외국계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회사에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C씨는 "아직 결론이 나온 게 없기에 더 기다려 봐야겠지만 이러다 누가 제보했는지 밝혀질까 두렵다. 모든 것을 걸고 내린 결정인데, 그냥 참고 회사를 다니는 수밖에 없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답답해했다.

최근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직장인 1277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괴롭힘에 대응했다는 응답자는 45.4%에 불과했고, 54.6%는 속으로 삭이고만 있었다. 대응하지 않은 이유로는 '어차피 바뀌지 않을 것 같아서'(71.7%·복수응답)라는 답이 가장 많았으며 '불이익을 받을 것 같아서'(54.4%)가 뒤를 이었다.

◆ 오용·악용되는 경우도 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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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과정에서 만난 회사원 상당수는 직장 내 괴롭힘 제도의 무작동보다 오작동이 더 큰 문제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말하는 오작동이란 제도를 개인의 불만을 터뜨리거나, 특정인에 대한 음해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의미한다. 직원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면서 나타나는 조직 분위기 저하도 대표적인 부작용이다.

온라인 플랫폼 기업에 다니는 D씨는 한 후배 직원을 생각하면 아직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 직원은 역량과 별개로 동료와 잘 못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았다. 후배 직원은 입사 6개월 후 이뤄진 승진 발표에서 본인이 누락됐다는 이유로 회사에 문제를 제기했고, 그를 타이르는 팀장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를 말리는 상사와 동료 직원 여러 명을 추가로 신고했다. 결국 노무법인이 나서 조사를 벌였고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니다'는 결론이 날 때까지 후배는 근무에서 제외됐지만 월급은 꼬박꼬박 타 갔다. D씨는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이런 얼토당토않은 일에 사용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며 "복귀한 후에도 그는 사내 분위기를 흐렸고, 다른 직원들로부터 비위 행위 제보가 이어져 결국 징계위원회를 열고 해고했다"고 말했다.

대기업 중간관리자 직책을 맡고 있는 E씨는 올해 초 회의를 진행하다 한 후배에게 "녹음 중이니 말씀을 똑바로 해달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업무적으로 보완을 요청하는 부분에까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고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면서 "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게 피해를 주장하기만 해도 조사가 진행되기에 압박감을 느끼는 상급자가 많아졌다"고 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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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녹음기를 가지고 다니는 건 후배 직원들뿐만이 아니었다. 혹시 모를 부하 직원 신고에 대비해 본인의 무고함을 증명할 수단으로 녹음기를 가지고 다니는 상사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 내 동료 간 신뢰관계가 무너질 대로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역회사에 다니는 F씨와 그의 동료들은 업무 조언을 해줄 때마다 울어버리는 한 후배 때문에 사원증 모양으로 제작된 녹음기를 구매했다. F씨는 "피드백에 앞서 녹음기나 휴대폰 녹음 애플리케이션을 켜는 게 직원들 사이에서 암묵적인 규칙이 됐다"며 "아니면 증거를 남길 수 있는 메신저로 대화한다"고 귀띔했다.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와 관련해 근로기준법상 처벌 규정은 없다. 회사가 자체적으로 징계위원회를 열어 어떤 처벌을 내릴지 결정해야 한다. 피해자가 별도로 소송을 진행하는 방법도 있다. 이와 관련해 올해 초 국가인권위원회는 고용노동부에 가해자에 대한 적절한 처벌 규정을 도입하도록 권고한 바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피해자와 공간을 분리한다고 가해자를 지하에서 일하게 하는 행위 등은 인권침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정석환 기자 / 고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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