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3 (화)

[칼람_칼럼 읽는 남자] 너도나도 단순한 변사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임인택ㅣ여론팀장

“단순한 변사들입니다.”

어느 해 여름 취재 중 만난 서울시 관내 경찰 책임자의 말이다. 몇몇 변사보고서를 꼭 보고자 했던 기자에게 ‘간단해 볼 것도 없다’는 경찰의 설명. 그랬다. 지적장애 남자의 투신, 노년 삶을 비관한 여자의 투신, 자주 술에 취해 있던 이혼 남자의 마지막 선택…. 흔한 삶들의 뻔한 역정.

하지만 변사보고서로는 담지 못하는 사실들이 있었다. 이들 모두 한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었다는 점. 그게 영구임대아파트라는 점, 스산한 장면들은 10컷 가까이 한 계절 줄지었다는 점. 하기야 그 아파트 단지 내 유명대학이 위탁운영하는 사회복지시설도 코앞 주민들의 연이은 죽음을 “모른다” 했던 터다.

사실, 우린 잘 안다. 지상에 단순한 죽음은 없다. 우울증이란 ‘흔한’ 사유도, 우울증을 붙든 갖가지 사회적 원인까지 한 실로 엉켜 있게 마련이다. 말하자면 2012년 그 아파트에서 듣고 본 대로 가난과 실직이 토양이고 차별과 천대가 켜켜이 내리쬔 상태에서 자란 수목의 가지가 어느 날 툭 꺾이는 일, 은 ‘어느 날’ ‘툭’이란 수사처럼 그럴 만하지도 그리 단순하지도 않다.

문제는 “단순하다”와, 대척하는 “중하다” “복잡하다” 사이 거리요 기준이며, 이 척도는 위력에 복무한다는 점이다. 세계를 불안하게 하는 ‘벡터’를 성찰하는 데 있어, “단순하다”는 그 원인과 책임이 개별 당사자에게 있(게 하겠)다는 선언이다.

경비교도대 배치 나흘 만에 갓 입대한 청년이 교정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교도당국은 “소극적인 성격과 만성 우울증”을 이유로 내놨다. 10년 뒤 진짜 사정이 드러났다. 선임들의 구타, 암기·과식 강요, 그리고 성추행. 은폐 시도와 함께 조직에 의해 사인과 책임이 개인에게 모욕적으로 전가됐음이 최초 공식조사로 확인되었던 1996년 ‘박 이교(이병)’ 사건이다.

25년이 지난 2021년, 공군 이 중사의 죽음을 ‘단순 사망’으로 속인 보고행위만큼이나 놀라운 건 그것을 단순하게 받아들였던 수뇌부나 서욱 장관의 태도다. 반세기 병영국가로 불려온 이 나라 진정한 병영조직의 실체다.

민간사회는 어떤가. 나의 권리가 짓밟혀 ‘예민’해지면 상사는 조직은 권력은 웃으며 눙친다. 에, 단순하게 생각해~. 애면글면 문제를 제기하면 어금니를 문다. 단순한 걸 왜 그리 복잡하게 만들려고 해?

복잡한 것을 단순화하며 책임을 기만하는 권력의 속성은 정작 단순한 건 복잡화하며 책임을 우회하는 태도와 겹친다.

“젊은 세대가 갖는 이념이라면 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하고 개인의 개성이 드러나길 바라고, 무엇보다 인권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이 투영되는 당을 만들겠다. 공존이라는 키워드 속에는 ‘서로가 서로의 다름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 들어 있다고 본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젊은 신규 당원들을 반기며 17일 <한겨레>에 한 말이다. 기대 탓인지 보수당이 마침내 차별금지법을 포용하려는 이유로 들어도 이상하질 않았다. 그가 밝혀온 소신대로 말이다. 하지만 차별금지법 제정 요구에 대한 그의 진정한 답변은 “당 구성원들의 우려와 반발이 있다면 강행할 명분은 없다”였다. 동일한 인터뷰에서의 이 ‘모순’은 “논의를 많이 진행하지 않아 당론이라고 할 만한 것이 형성되지 않았다”는, 더 정확히는 “보수진영 내 기독교적인 관점 등이 있어서 (논의가) 혼재돼 있다”는 여러 인터뷰로 상술된다. 차별금지법이 발의되어 공론화된 지 14년째, 보수당 내 사정은 계속 무관심하므로 복잡한 셈이다.

혐오에 맞서다 마감한 삶이 ‘한채윤 칼럼’에도 기록되어 왔다. “차별”이라 소리치지 않았다면 그 삶도 필시 단순 변사다. 차별금지법이 ‘목사님’을 잡아가는 법이 아니란 점도 조목 설명되어 있다. 입법 취지는 간단하다. 함께 살자는 거다.

어떤 이의 죽음도 단순할 리 없다. 그 이유를 최근 본 영화에선 이렇게 설명한다고 느꼈다. “당신이 홀로 숨을 거두어갈 때 많은 동물을 살육하리, 당신을 사랑하는 우리가. 피로 뒤덮이리 … 소나무 마흔 그루가 베이리, 천개의 촛불이 꺼지리. 당신의 눈이 감기면 모두 함께 태우리 … 우린 온 산을 뒤덮으리, 검은 천으로, 그리하여 모두가 알도록, 우리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해서 이 지구적 장가를 슬피 부르던 주인공이 차츰 가해자로 변하는 모순적 결말(<동정에 중독된 남자>, 그리스)은 마땅하지 못했다.

imit@hani.co.kr

벗 덕분에 쓴 기사입니다. 후원회원 ‘벗’ 되기
한겨레 서포터즈 벗이 궁금하시다면? ‘클릭’‘주식 후원’으로 벗이 되어주세요!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