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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안재승 칼럼] 집값 잡으랬더니 종부세 잡은 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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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도 임기 중에 집값을 잡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투기 억제를 위한 보유세 강화, 실소유자 중심의 주택 대출 개편, 공급 확대 등 일관된 정책을 흔들림 없이 펼쳤고, 그 정책 효과가 이명박 정부에서 나타났다. 지금 봐선 문재인 정부 임기 안에 집값을 잡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다음 정부가 집값을 안정시킬 수 있는 토대는 마련해줘야 한다. 이런 점에서 민주당의 ‘종부세 후퇴’를 바로잡아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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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종합부동산세 완화’를 결정한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김진표 부동산특위 위원장(오른쪽)과 박완주 정책위의장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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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승ㅣ논설위원실장

솔직히 지난 18일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부동산특위의 ‘종합부동산세 완화안’이 부결될 걸로 생각했다. 노무현 정부가 도입한 종부세는 진보정부 부동산 정책의 상징과도 같다.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 종부세 강화가 기대에 못 미친 적은 있지만 후퇴한 일은 없었다. 게다가 민주당은 지난해 8월 더 이상의 집값 폭등을 막겠다며 종부세 대폭 강화를 담은 종부세법 개정안을 단독 처리했다. 개정된 법을 한번도 시행하지 않고 뒤집을 정도로 염치없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집값을 잡으랬더니 애먼 종부세를 잡은 것이다.

민주당의 종부세 완화 결정이 비판받아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치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 10가지만 꼽아보겠다.

첫째, 진단부터 잘못됐다. 민주당은 4·7 재보궐선거에서 드러난 ‘부동산 민심’을 들어 종부세를 완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당을 심판한 부동산 민심은 대다수 시민들과 무관한 종부세 인상이 아니다. 민주당의 선거 참패는 집값 폭등에 ‘LH 사태’, 전세값 선제 인상 같은 고위공직자들의 ‘내로남불’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세금 인상은 집값 폭등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둘째, 국민들에게 가장 절실한 민생 과제인 집값 문제를 정략적으로 접근했다. 김진표 부동산특위 위원장은 “내년 3월 대통령 선거는 아무리 큰 차가 나도 50만표를 넘지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측이 많다. 부동산 민심을 확산시키는 중심 지역인 서울에서 큰 표 차로 지면 대선을 이길 수 있겠느냐는 현실적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부동산 정책을 민생의 관점이 아니라 ‘표 계산’으로 접근했다는 고백이다. 나쁜 선례를 남겼다.

셋째, 종부세 ‘상위 2% 과세’를 합리화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김진표 위원장은 “종부세는 처음 도입될 때 전국에서 부동산을 많이 가지고 있는 1%를 목표로 과세하도록 정부 정책으로 발표됐다”고 말했다. 사실이 아니다. 2002~2005년 재정경제부(지금의 기획재정부)를 담당했던 기자였기에 당시 상황을 잘 안다. 노무현 정부가 ‘종부세는 상위 1% 세금’이라고 발표했다는 건 금시초문이다. 조세 형평성 제고와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해 도입된 종부세는 처음부터 집값이 오르면 과세 대상자도 늘어나게 설계됐다. 종부세 도입 논의 때 경제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이었던 김진표 위원장도 기억할 것이다.

넷째, 진단이 잘못됐으니 처방도 당연히 잘못될 수밖에 없다. 보수언론은 앞으로 집값이 떨어져도 상위 2%는 무조건 종부세를 내게 됐다고 비판하지만, 반대로 집값이 아무리 올라도 상위 2%에 포함되지 않으면 종부세를 내지 않게 됐다. 집값 안정을 위해 도입된 종부세가 그 기능을 잃게 된 것이다.

다섯째, 앞뒤가 맞지 않는다. 집값 폭등의 최대 피해자는 서민·중산층인데 집값이 크게 오른 집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는 건 모순이다. 조세정의에 역행한다. 올해 기준으로 전국 주택(공동주택+단독주택) 중 종부세 부과 대상 주택은 3.3%에 불과하다. 96.7%가 종부세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참여연대와 전국세입자협회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21일 민주당 규탄 기자회견에서 “집부자들에게만 관심이 있고 집 때문에 시달리는 서민들 입장에는 관심이 없는 민주당에 표를 줄 이유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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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민달팽이유니온, 전국세입자협회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종합부동세·양도소득세 완화’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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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째, 정부 정책의 신뢰가 땅에 떨어지게 됐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보유세 강화가 부동산 정책의 기본 방향이라고 누누이 밝혀왔다. 앞으로 누가 정부를 믿고 정책을 따르겠는가.

일곱째, 민주당은 부동산 세금 정책과 관련해선 이제 정체성을 잃게 됐다. 민주당에 앞서 국민의힘이 지난달 24일 종부세 부과 기준을 현행 9억원(공시가격)에서 12억원으로 올리는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공시가격 12억원을 비율로 따지면 상위 1.9%에 해당된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차별성이 0.1%포인트인 셈이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민주당이 국민의힘의 2중대가 됐다”고 꼬집었다. 민주당은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여덟째, ‘상위 2%’ 과세 방식은 헌법이 규정한 ‘조세 법률주의’에도 어긋난다. 세금의 종목과 세율뿐 아니라 과세 대상, 과세 표준, 납세 의무자 등을 법률로 정하도록 한 게 조세 법률주의다. 상위 2%에게 과세하려고 매년 법을 고칠 수는 없고 매번 시행령에 반영해야 한다. 민주당은 유사한 사례들이 있다고 하나, 국회에서 종부세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위헌심판이 제기될 게 불을 보듯 훤하다. 만약 위헌 결정이 나온다면 종부세는 회복 불능의 만신창이가 된다.

아홉째, 보수세력에게 좋은 먹잇감을 던져줬다. 국민의힘과 보수언론은 상위 2% 과세를 ‘국민을 98 대 2로 편가르기’라고 맹공을 퍼붓고 있다. 상위 2%와 공시가격 12억원이 별반 다를 게 없고 국민의힘과 보수언론이 그동안 종부세 완화를 줄기차게 주장해왔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이기는 하나, 민주당 스스로 공격의 빌미를 줬다는 점에서 자업자득이다.

열째, 가장 나쁜 점이다. 민주당은 이번 결정으로 시장에 ‘버티면 결국 이긴다’는 잘못된 신호를 전달했다. 우리 사회에서 ‘부동산 불패 신화’는 더욱 강고해질 것이고, 집값은 계속 오르게 될 것이고, 자산 불평등은 더 커질 것이다.

민주당이 종부세 완화 결정을 스스로 바로잡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결국 청와대와 정부가 말리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은 22일 “장시간 토론을 하고 투표로 통해 결정한 사항이어서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노무현 정부도 임기 중에 집값을 잡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투기 억제를 위한 보유세 강화, 실소유자 중심의 주택 대출 개편, 주택 공급 확대 등 일관된 정책을 흔들림 없이 펼쳤고, 그 정책 효과가 이명박 정부에서 나타났다. 지금 봐선 문재인 정부 임기 안에 집값을 잡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다음 정부가 집값을 안정시킬 수 있는 토대는 마련해줘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유산인 부동산 규제 완화 탓에 고생한 일을 잊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 정부에 부담을 넘기는 잘못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 대다수 국민을 피해자로 만드는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을 기대해 본다.

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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