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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기후위기 시대, 미술관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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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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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 전시에선 백두대간에서 말라 죽은 고사목을 미술관 앞마당에 들여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환기한다. 사진 남기용·서울시립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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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 앞마당에 사람보다 큰 나무 동아리가 누워있다. 지난해 11월 말라 죽은 고사목이다. 설명이 붙어 있다. “아고산대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침엽수 고사 현상이 2020년에는 저지대인 1000m와 그 이하의 숲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암사 전나무 숲에서 한 때 생생했던 이 전나무가 기후스트레스로 고사한 것이다. 기후위기가 현실이 된 한반도의 단면이다.” 날것이지만 시각적 충격이라는 측면에서 어떤 예술 작품 못지않게 강렬하다. 기후위기 시대, 미술관의 대응이다.

기후위기가 미술관의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심각한 동시대적 문제라는 점에서 새삼스러울 일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잇따라 개막한 전시들은 소재와 내용만이 아니라 방식에 있어서도 기후위기를 온몸으로 직면하게 한다.

서울시립미술관의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는 지구 생태계라는 ‘큰 집’과 사람이 거주하는 ‘작은 집’의 관계를 통해 기후위기를 성찰하는 전시다. 미술관 마당에는 환경단체 녹색연합이 옮겨온 고사목이, 로비에도 경북 울진의 금강소나무 고사목이 놓여있다. 울진 산악지역에서 숨진 산양의 박제, 플라스틱과 독극물로 오염되는 물, 녹아내리는 빙하 등 환경 파괴 현장을 미술관으로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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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 전시 모습. 사진 남기용·서울시립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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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것은 전시의 운영 방식이다. 우선 전시 리플릿이 없다. 대부분의 설명은 웹사이트에 올렸다. 이전 전시 가벽, 전시대, 페인트를 재사용하고, 버려진 책상과 액자도 재활용했다. 시트지 대신 이면지에다 잉크 절약형 서체로 글을 썼다. 전시장의 노트북과 태블릿PC도 전시에 참여한 기획자와 연구자들이 집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하지만 전시라는 행위 자체가 한계를 상정할 수 밖에 없다. 작든 크든 탄소 배출을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전시의 이유를 찾는 지점은 인식 전환을 통한 기후행동의 촉구다. 김혜진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지난 17일 통화에서 “뉴스나 논문이 할 수 없는 인지적 접근으로 기후위기의 현실을 강하게 전달하려 했다”며 “그로부터 인식의 전환과 일상의 실천을 이끌어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면지에 흐리게 인쇄된 텍스트들은 전시 경험에 방해되는 느낌도 있다. 김 학예사는 “의지만 있으면 읽을 때 보이지 않을 정도는 아니다”라며 “오히려 집중해서 들여다보도록 하는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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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현대미술관 <지속가능한 미술관: 미술과 환경> 전시장 한켠에는 전시 후 나오는 폐기물을 그대로 쌓아놨다. 전시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파괴적’ 활동을 성찰하는 시도다.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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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현대미술관의 <지속 가능한 미술관: 미술과 환경>은 작품의 제작, 포장, 운송, 설치, 철거 등 전시 전반에서 ‘제로 웨이스트’를 시도하는 전시다. 전시에선 1990년대 초반부터 2021년까지 다양한 작품을 넘나들며 생태환경에 대한 인식 변화를 추적한다. 궁극적 탐구 대상은 ‘미술관의 지속가능성’이다.

전시장 한켠에 엄청난 쓰레기 더미가 쌓여있다. 전시 후 나오는 폐기물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국공립 미술관 전시를 하고 나면 5t 트럭 네 대 분량의 폐기물이 나온다고 한다. 기획의 계기가 된 미술관의 불편한 현실이다. 최상호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관객들은 깨끗한 흰 벽에 멋진 작품만 보게 되는데 미술관 활동의 이면에서 파괴적인 행위도 동시에 발생한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전시에서도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총체적 노력을 기울인다. 기본 원칙은 재사용과 재활용이다. 석고벽 대신 나무판을 사용해 나사, 못, 철사 등 부속들을 제외하면 폐기물이 전혀 남지 않는다. 인쇄물을 제작하지 않고, 홍보는 온라인을 기반으로 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전시 설명을 모두 캘리그래퍼의 손글씨로 처리한 것이다. 인쇄를 했다면 하루 만에 끝났을 일이 일주일 넘게 걸렸다. 최 학예사는 “전시에 일부러 한계를 두고, 부족한 환경에서 전시가 진행되도록 하고 싶었다”며 “불편함을 통해 환경을 한 번 생각해봤으면 하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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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미술관 <기묘한 통의 만물상>은 자연분해 속도가 느린 순으로 소재를 분류해 전시를 기획했다. 대림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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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미술관의 <기묘한 통의 만물상>은 전시장을 자연분해 속도가 느린 순으로 유리-플라스틱-철-천-나무-종이-친환경소재로 분류해 전시를 기획했다. 대중적인 전시를 통해 기후위기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하려는 시도다.

<기후미술관> 초청큐레이터인 이혜원 대진대 교수는 “예술은 순수하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개념에 대한 반성적 차원도 있었다”고 말했다. 전시는 공공예술 프로젝트 ‘기후시민 3.5’ 연구를 토대로 했다. ‘한 나라의 시민 3.5%가 행동하면 사회적인 변화가 가능하다’는 사회학자 에리카 체노워스의 연구에서 영감을 얻어 예술 매체를 통한 전방위적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과 연대의 확산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예술가도 시민이기에 그들의 상상력과 능력으로 ‘해야 할 일을 한다’는 취지”라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작은 것이라도 시도해가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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