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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도시에선 ‘아플 자유’도 부족한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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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면 약 먹고 잘 쉬어야 하는 거죠? 그렇지만 도시에 사는 사람 중에 몇이나 아프면 쉴 수 있나요. 아내도 월요일이면 배가 아프다 합니다. 아내는 일요일 저녁부터 수험생처럼 식단관리를 해요. 출근할 때면 배가 아프고, 퇴근할 때야 배가 나아진답니다. 혹 이렇게 병을 키우는 건 아닐까요.

엄마아들 귀농서신

한겨레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한 학생이 한 손에는 컵라면, 다른 손에는 탄산음료를 들고 학원으로 향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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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무영 | 시골로 가려는 아들·로스쿨 졸업

‘멋진 아들’이란 칭찬에도 기뻐하시지 못하는 어머니 마음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느긋하고 호쾌하시죠. 고로 어머니는 바쁨, 꼼꼼함을 맡으셨습니다. 호랑이 엄마였어요. 그럼에도 등짝 한 번 후린 적 없죠. 아들이 큰 잘못을 할 때면 엄마는 하루종일 아무 말이 없으셨습니다. 그러다 자기 전 엄마 방에 가 울며 “다신 그러지 않겠다”고 할 때 안아주시면서 왜 그랬는지 물으셨죠. 천둥벌거숭이 같은 아들놈이 도대체 들어 먹지 않는구나 싶으셨겠지만 아들은 어머니 말씀, 한마디 한마디 모두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어머니와 학원에 관한 이야기 하나 더 꺼내고자 합니다. 저는 대체로 학원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였습니다. 보습학원에 가기 전에는 늘 머리가 아팠습니다. 머리가 아파 학원을 쉬겠다고 하는 날이 군말 없이 간 날보다 많았죠. 그런데 안 가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지면 머리는 씻은 듯 나았습니다. 한두번이 아니라 어머니는 꾀병을 의심하셨죠. 꾀병이 아닙니다. 이런 두통은 대학교 다닐 때도, 로스쿨에서도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오랫동안 학교에서 공부를 하다 보면 머리가 아파졌죠. 8시간 넘게 공부를 하는 날은 아픈 날이 되었죠. 공부시간을 더 늘려보겠다고 아파도 참고 매달린 날도 많습니다. 그런 날이면 밤늦게까지 헛구역질이 났어요. 어떻게 하면 두통이 가시는지 아픈 사람은 압니다. 학원에 가지 않거나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아프지 않아요. 그런데 로스쿨 학생이 머리가 아프니 공부를 하지 않겠다는 게 가당키나 합니까. 두통약을 먹고도 도저히 두통 때문에 집중하지 못할 때까지 하기 마련이죠. 두통약과 등산용 머플러는 생활필수품이었습니다. 호랑이 기름을 어디에 바르면 두통이 견딜 만해지는지, 어디 지압점이 좋은지, 어디에 뜸을 뜰지 만성두통과 함께 공부하다 보면 익히게 되는 생존법입니다. 로스쿨에서 저와 비슷한 사람을 많이 만났어요. (공부를 하다 보면) 늘 아픈 사람들. 이런 사람들과 모여 있을 때면 어디 병원이 친절하고, 무슨 두통약 성분이 어떤 때 좋고, ‘링게루’는 언제쯤이면 맞아야 하는지 따위 정보들을 주고받았습니다.

어머니께서 시골 사람들이 적절히 치료받을 권리가 지켜지고 있지 않다 말씀하셨죠. 도시 사람들은 적절히 앓을 자유가 없다 여겨집니다. 아프면 약 먹고 잘 쉬어야 하는 거죠? 그렇지만 도시에 사는 사람 중에 몇이나 아프면 쉴 수 있나요. 병원을 찾더라도 빨리 업무에 복귀할 마음으로 주사 맞고, 강한 약 처방을 바라게 되지는 않을까요. 병을 키우는 건 이 도시라는 곳의 분위기입니다. 아이들에게 ‘아프면 약 먹고 푹 쉬어라, 우리는 느리게 걷자’ 하는 어른들이 몇이나 있습니까. 마음은 그렇지 않을 텐데, 출근길이면 사나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언제까지 ‘더 빨리, 더 많이’를 위한 삶이어야 할까요.

온 나라의 먹거리를 만드는 시골에서 생산량과 상품성에 초점을 맞추면 화학비료에 바탕을 둔 채소가 밥상에 오릅니다. 어머니께서 그러셨죠, 옛날 시금치 한단의 영양분을 먹으려면 요새 시금치 열일곱단을 먹어야 한다고요. 그래서 저는 지금 각종 영양제를 챙겨 먹어요. 그런데 친구 하나는 영양제를 믿지 않습니다. 워낙 튼튼하고 몸집이 좋은데, 취직하기 전까지는 운동도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들소 같은 친구였어요. 그런데 일을 구하고 나서는 집에 와 저녁을 먹은 뒤에는 운동하기 어렵다 합니다. 피곤하니, 회사에 가지 않게 되면 그때부터 하겠대요. 철저히 식습관을 지키던 친구는 이제 술과 고기를 즐깁니다. 빡빡한 회사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이해가 갑니다. 약육강식으로 줄여 말할 만한 도시에서 살다 보면, 결핍과 과잉의 반복을 피하기 어려워 보여요.

아내도 월요일이면 배가 아프다 합니다. 밖에서 화장실 가는 걸 부끄러워하는 아내는 일요일 저녁부터 수험생처럼 식단관리를 해요. 출근할 때면 배가 아프고, 퇴근할 때야 배가 나아진답니다. 귀여운 꾀병 정도면 토닥토닥 넘길 수 있어요. 그렇지만 건강염려증이 있는 이 사람은 늘 전과 다른 고통을 이야기합니다. 구체적이에요. “오른쪽 윗옆구리가 아프다.” 이곳에 무엇이 있는지 찾아보고는 “췌장염 아니냐” 사람 걱정시키고는 “퇴근하니 다 나았다” 합니다. 혹 이렇게 병을 키우는 건 아닐까요. 언제까지 회사에 다녀야 할까. ‘당연히’ 가야 하는 회사에 가지 않을 방법은 없을까. 진정 건물주가 되지 않고서는 안 될 일일까. 그렇게 찾은 ‘우리’의 답이 시골입니다. 농사 정말 어렵습니다. 이름 없는 풀들이 목숨을 걸고 싸움을 거는데 시원히 이길 수는 없겠죠. 시골에서 도시와는 다른 수준의 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도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병의 뿌리라는 스트레스의 수준도 다르단 사실 역시 분명하지요. ‘헬조선’이라는 말이 나오는 도시의 실험적 대안으로서 귀농은 충분히 도전할 만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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