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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ETF 인기 오를수록 은행들 속이 타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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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vs증권 ETF 줄다리기]② ETF 인기로 퇴직연금 머니무브 거세지자 은행들, ETF 실시간거래 허용해 달라 요구 [비즈니스워치] 김미리내 기자 pannil@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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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들이 미래 먹거리인 퇴직연금 시장 사수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주식시장 활황과 함께 상장지수펀드(ETF)가 큰 인기를 끌면서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이나 개인형퇴직연금(IRP) 가입자들이 증권사로 이동하는 머니무브 현상이 거세지고 있어서다.

그러자 은행들이 증권사에서만 가능한 ETF 실시간 거래를 허용해달라고 금융위원회에 요청하면서 업권간 분쟁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금융위, 은행 ETF 실시간 거래 허용 고민만

은행권은 올해 초 금융위에 퇴직연금 내 ETF의 실시간 거래서비스 제공이 가능한지를 묻는 비조치의견서를 제출했다. 퇴직연금 시장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가운데 직접투자 경험이 많은 MZ세대를 중심으로 ETF 거래를 위해 증권사로 계좌를 갈아타는 경우가 늘자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지금도 고객의 운용지시에 따라 신탁이나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에 ETF를 편입할 수는 있지만 실시간 거래는 불가능하다. ETF를 당일 종가 기준으로 매수해 다음날 신탁재산에 편입하는 구조여서 고객이 거래 가격을 쉽게 알 수 없고 매매 타이밍도 한 템포 늦어질 수밖에 없다. 주식처럼 거래가 가능한 ETF 장점을 거의 누릴 수 없다는 얘기다.

은행권 관계자는 "MZ세대의 퇴직연금 시장 유입으로 시장 구조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라며 "안정성보다 수익률을 추구하는 경향이 커지고 직접투자 경험이 많은 세대가 유입되면서 앞으로 점점 더 증권사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보니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고민만 하고 있다. 비조치의견서를 제출한지 반년이 다 돼가는데 여전히 검토 단계에 있다. 업권 침해라며 증권업계의 반발이 거센 데다 단순 법령해석에 그치지 않고 업권 간 이슈로 불거지면서 결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비조치의견서 요청 관련해) 검토해야 하는 부분도 있고 당장 답이 나가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은행과 증권의 업권 간 이슈가 있다 보니 단순히 (은행권) 법령해석으로 해결 가능한 부분인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은행들 "뚜껑 열면 실익 없을 수도"

설령 은행권에 ETF 실시간 거래를 허용하더라도 증권사 대비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ETF 실시간 거래시스템을 새롭게 만들려면 비용과 시간을 투입해야 하고, 증권사 시스템을 이용할 경우 아무래도 수수료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어서다. 특히 증권사들이 최근 'IRP계좌 보관수수료 무료' 등을 내걸고 고객 유치에 나서고 있어 차이가 더 벌어질 수도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실시간 거래 시스템을 직접 만들면 비용이 많이 들고, 증권사 제휴를 통하면 수수료가 더 비쌀 수밖에 없다"면서 "증권사들이 보관수수료에 이어 거래수수료까지 추가로 인하하면 은행은 자칫 비용만 쓴 채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물론 반대 의견도 있다. 은행과 증권사의 고객 성향이 다른 만큼 ETF 실시간 거래가 가능해지면 수수료만으로 이동하지는 않을 것이란 시각에서다.

또 투자 판단을 전적으로 고객에게 맡기는 증권사와 달리 퇴직연금 전문센터나 전문인력을 통해 실시간으로 ETF 리밸런싱 관리 등 차별화된 혜택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단순히 수수료 차이만으로 고객이 이탈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라며 "은행 고객은 안전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한 만큼 증권사와 비교해 다른 효용을 제공할 수 있다"라고 전했다. 뺏길 수 없는 미래 먹거리

은행들이 ETF 실시간 거래에 목을 매는 이유는 퇴직연금이 빼앗길 수 없는 '미래 먹거리'이기 때문이다.

퇴직연금 시장은 여전히 은행이 전체의 51%를 차지하며 압도적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영광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증권사 비중은 20.2%로 아직 은행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빠른 속도로 변화가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퇴직연금 적립금은 255조5000억원으로 1년 새 34조3000억원, 15.5%가 증가했다. 특히 개인이 직접 운용하는 DC형과 IRP 적립금이 처음 100조원을 넘어서며 증가세를 견인했다.

DC형과 IRP 적립금의 전년대비 증가액은 18조4000억원으로 확정급여형(DB)의 15조9000억원을 추월했다. 증가율 기준으론 증권업계가 18.5%를 기록해 15.9%에 그친 은행을 따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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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vs 증권사 IRP적립금 증가율 추이/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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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를 위주로 자금이 몰리고 있는 IRP 적립금 증가율을 보면 이런 흐름은 더 뚜렷하다.

5대 시중은행과 주요 증권사의 IRP 적립금 증가율 추이를 보면 은행은 작년과 올해 1분기 각각 24.9%, 28.8%에 그친 반면 증권사는 58%와 37.6%에 달했다. 2019년 대비 2021년 증가율을 봐도 은행은 46.5%, 증권은 73.8%로 격차가 컸다.

단적으로 지난 1분기 말 기준 미래에셋증권의 IRP 적립금은 NH농협은행을 뛰어넘어 우리은행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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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시중은행 /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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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증권사 IRP 적립금 추이/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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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퇴직연금은 계속 커지는 시장으로 결코 빼앗길 수 없는 미래먹거리"라며 "고액의 장기고객인데다 한번 들어오면 잘 이동하지 않아 1년 예·적금 고객과는 차이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절대 놓칠 수 없는 시장이라서 가능한 모든 대응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라며 "앞으로 퇴직연금을 둘러싼 업권 간 경쟁을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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