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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어딜 가건, 뭘 하건 4시간씩…구청 공무원들의 ‘수상한 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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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청서도 출장여비 부정수령 의혹

종로구 내근인데도 잦은 출장, 점심 앞뒤로 한결같이 4시간씩

청원경찰은 113번 순찰 출장…한달 상한액 26만~28만원 챙겨

마포구 7급은 11분 거리 우체국도 4시간, 작성 필체 모두 같아

올해부터 징계 수위 높아졌다지만 “자체감사로는 어렵다” 지적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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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장 비서실장이 거의 매일 4시간씩 관내 출장, 청원경찰은 하루 두번씩 노점상 순찰 출장….’

최근 사회복무요원(공익)의 폭로로 전주시에서 초과근무수당 부정수령으로 인한 일부 공무원들 징계가 결정된 가운데, 서울시 구청들에서도 광범위한 출장여비 부정수령 의혹이 제기됐다. 초과근무수당이나 출장여비 부정수령은 언론 등에 자주 지적되지만, 워낙 구조적이고 고질적인 문제여서 근절을 위해서는 외부 기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서실장·총무팀장의 수상쩍은 출장


22일 시민단체 ‘엔피오(NPO) 주민참여’가 종로구청 행정지원과 직원들의 출장기록을 정보공개 청구해 받은 자료를 보면, 최아무개 구청장 비서실장(5급)은 지난 1월1일~2월24일 사이 근무일 36일 가운데 하루 4시간 남짓씩 29일 동안 30차례 관내 출장을 다녀왔다며 여비를 타갔다. ‘지시사항 처리’ 목적 출장지는 관내 곳곳이었고, 출장시간은 대개 점심시간을 포함해 오전 통째 또는 오후 통째였다.

비서실 소속 한 8급 공무원도 36일 가운데 26일은 ‘지시사항 처리’ 등 명목으로 4시간씩 관내 출장을 다녀왔다. 다른 7급 공무원은 36일 동안 1시간씩 49번, 또 다른 7급 공무원은 1시간씩 46번 관내 출장을 다녀왔다며 여비를 타갔다. 내근인 비서실 직원들의 이런 잦은 출장은 이례적이다.

종로구청은 <한겨레>에 “(비서실장의 경우는) 현장·친절을 중시하는 구청장 지시에 따라 구청장을 대신해 직접 민원인을 찾아뵙고 설명해드리기 위한 출장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왜 하필 모든 출장이 4시간 단위로 끊기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종로구청 행정지원과의 관용차량을 이용하지 않은 관내 출장 1320건 가운데, 출장시간이 3~4시간인 경우는 5건에 불과했지만, 4~5시간인 경우는 296건이었다. 구청 공무원들의 관내 출장의 경우 4시간 이상은 2만원, 4시간 미만은 1만원을 받는다.

정아무개 총무팀장도 같은 기간 관내 출장을 28차례 다녀왔는데, 4건을 빼곤 모두 점심시간을 포함해 1시간 남짓이었고 출장 목적지의 대부분은 ‘분수대’, ‘종로변’이었다.

청사 경비 업무를 하는 청원경찰 2명은 36일 동안 하루 두차례씩 113번 ‘노점상 순찰’을 다녀왔다며 여비를 받아갔다. 청사와 차량 관리 등을 담당하는 행정지원과 부속실 공무원 6명도 평균 1시간32분짜리 ‘노점상 순찰’ 출장을 304차례 다녀왔다. 노점상 관련 업무는 건설관리과 소관인데다, 구청에서 왕복하는 시간을 고려하면 실제 어떤 순찰이 이뤄졌는지 의문이다. 운전직 5명도 ‘현장확인’ 등 목적으로 181번 출장을 신고했다. ‘차량 관리’가 목적인데 공용차량은 가져가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공용차량을 이용한 출장은 여비가 1만원 깎인다. 부구청장을 수행하는 운전직은 출근 직후와 점심시간 직후 ‘현장확인·순찰’ 출장을 49번 다녀왔다며 여비를 타갔다. 이들은 이런 방식으로 출장여비 한달 상한 수령액 26만~28만원가량을 챙겼다.

종로구청 쪽은 “비서실장과 총무팀장의 출장은 실제로 이뤄졌다”면서도 나머지 공무원들에 대해선 “상시적으로 과도하게 이뤄진 출장에 대해선 자체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11분 거리 우체국에 4시간 출장?


마포구에서는 구 인재육성장학재단에 파견된 공무원(7급)이 지난해 123번 관내 출장을 다녀왔다며 여비를 챙겼다. 올해 1월 직원이 바뀌었는데, 이들은 3월까지 26번 출장을 다녀왔다며 여비를 수령해갔다. 근무일 기준 하루걸러 한번씩 출장을 다녀온 셈이다. 용무는 ‘우편·은행 업무’, ‘물품 구입’ 등이었는데, 재단에서 우체국은 걸어서 11분 거리였지만 출장시간은 늘 4시간을 넘겼다. 한쪽에 17일치를 적을 수 있는 수기 작성 출장명령부는 필기구와 필체가 똑같아 한꺼번에 작성됐다는 의혹을 낳았다.

마포구는 “출장 목적에 ‘은행·우편 업무’라고 작성하긴 했지만, 한번 출장을 나가면 다른 업무도 다양하게 했다”며 “허위 출장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구청 공무원들의 광범위한 출장여비 부정수령 의혹은, 최근 이런 관행에 동참하길 거부했다가 따돌림당했다는 방호직 9급 공무원 시보가 공익제보한 서울 노원구청 사례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노원구청 종합상황실에서 근무하는 한 방호직은 지난해 7~12월에는 매달 평균 26번 관내 출장을 다녀왔다며 여비를 챙겼는데, 올해 들어서는 4월19일까지 여섯번으로 급감했다. 노원구공무원노조 간부이기도 한 그는 하루에 한두차례씩 출장을 다녀왔다며 여비를 받아갔는데, 시보의 공익제보 뒤엔 신고한 출장 횟수가 한달에 두번으로 줄어들었다. 종합상황실에서 근무하는 또 다른 방호직도 지난해 하반기 한달 평균 22차례 출장을 신고하고 여비를 받아갔는데, 올해 들어서는 4월19일까지 단 한차례로 줄었다.

스스로는 못 고치는 병…대책은?


이런 지방공무원들의 출장여비 부정수령 관행은 한두해 된 문제가 아니다. 특히 종로구와 노원구는 2019년 민원여권과 공무원들이 외교부로 출장을 다녀왔다며 허위로 출장여비를 받은 사실이 언론에 보도돼 출장여비 환수가 이뤄졌지만, 이번 사안에서 보듯 관행은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

송파구에서도 2017년 시민단체의 문제제기로 이뤄진 국민권익위원회 조사에서 2016년 1월~2017년 3월 전체 소속 공무원의 85%인 1263명이 출장시간을 부풀려 출장여비 2억6천여만원을 부당하게 수령한 사실이 드러났다. 송파구는 최근 2017년 4월~2020년 12월 사이 출장여비 지급내역을 다시 전수조사했는데 이번에도, 714명이 3500만원을 부정수령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의 한 구청 공무원은 “감사를 해도 그때뿐이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부정수령이 계속된다”고 말했다.

올해부터 공무원 징계령이 개정돼 고의로 초과근무수당·출장여비를 100만원 이상 부정수령하면 파면·해임까지 하도록 징계 수위가 높아졌지만 자체 감사를 통해서는 근절이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감사 주체와 대상이 같은 처지인지라 팔이 안으로 굽고, 징계 양형 강화가 되레 소극적인 감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동길 ‘엔피오 주민참여’ 대표는 “출장여비 부정수령은 허위로 출장계획을 보고한 공무원과 부서장에게 결재를 올린 상급자, 결재한 부서장까지 최소 3명이 가담한 범죄”라며 “자체 감사로는 부정수령을 근절하기 어려워 각 자치구를 권익위에 신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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