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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기억할 오늘]  구상에서 다시 추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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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3 반구대 암각화
한국일보

울산 반구대 암각화.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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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을 가로질러 울산만을 거쳐 동해로 흘러드는 강이 태화강이다. 신라 선덕여왕 재임기(632~647)의 승려 자장율사가 강 언덕에 태화사란 절을 지은 게 이름의 유래라고 한다. 백운산에서 발원한 물이 첫 물길을 이룬 상류 본류가 대곡천이고, 중생대 백악기 퇴적암과 변성암 암벽이 그 물길을 잡아주고 있다. 거기, 반구대라 불리는 너른 암벽에, 강이 이름을 얻기도 전인 약 7,000년 전에, 깃들여 살던 이들이 돌로 그림을 새겼다. 신석기인들이 먼저 높이 4m, 폭 10m 암벽에 석기로 쪼아 온갖 짐승과 사냥 도구, 자신들의 모습까지 밑그림을 새기고, 청동기인들이 더 억센 도구로 더 깊고 선명한 윤곽을 팠다고 짐작되는, 다시 말해 두 문명 시대의 인류가 세월을 두고 합세해 이뤘으리라 짐작되는 암벽화. 1971년 발견돼 1995년 6월 23일 국보(285호)로 지정된 '반구대 암각화'다.

홍적세 빙하기가 끝나고 홀로세가 시작되던 당시 한반도는 기온 상승으로 해수면이 높아져 반구대 언저리까지 바다였다고 한다. 그 바닷마을 사람들에게 신석기 혁명(농경)은 어쨌든 상관없었을지 모른다. 그들에겐 고래가, 바다가 있었다. 혹등고래, 귀신고래, 새싹처럼 물을 뿜는 긴수염고래와 사각형 머리통을 지닌 향고래..., 호랑이와 멧돼지 사슴도 등장하지만 암각화의 주인공은 단연 고래다. 등에 작살이 꽂힌(작살을 얹은) 고래도 있다. 인류가 남긴 포경의 기록으로는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이라고 한다.

긴세월 비바람에 닳고 삭아 그림은 다시 추상의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중이다. 그 사이 바다도 멀어졌고, 때 되면 찾아와 앞바다를 휘젓던 귀신고래도 울산만을 들르지 않은 지 오래됐다. 이제 암벽화 윤곽만으로는 그림의 정체를, 비전문가가 육안으로 식별하기는 힘들다. 1965년 완공된 하류 댐(사연댐) 탓에 연중 절반을 물에 잠겨 있느라 훼손은 더 악화했을 것이다. 뒤늦게 울산시는 댐 수위를 낮추는 등 여러 방안을 두고 머리를 싸매는 중이라고 한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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