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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시절 떠올린 박건하 “AC 밀란 전설 바레시처럼 은퇴하고 싶었다” [엠스플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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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삼성 창단 멤버로 1996년부터 2006년까지 선수 생활한 박건하, 감독으로 2021시즌 K리그1·FA컵 우승 도전

-“절친한 친구 (유)상철이, (조)진호가 많이 보고 싶다”

-“AC 밀란 전설 프랑코 바레시처럼 행복한 프로축구 선수로 남고 싶었다”

-“공격수에서 수비수로 뛸 것을 권유받았을 땐 자존심 많이 상했죠”

-“수원의 역사 누구보다 잘 알아···코치, 선수, 프런트, 팬 모두에게 행복한 시간 선물하고 싶다”

엠스플뉴스

수원 삼성 박건하 감독(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엠스플뉴스=화성]

박건하(49)는 수원 삼성 전설이다. 1996년 수원 창단 멤버로 K리그에 데뷔해 2006년까지 선수 생활을 했다. 한국 축구 대표팀 공격수로 숱한 이적 제안이 있었지만 프랜차이즈 선수로 남았다. 박건하는 선수 시절을 돌아보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아시아에서 수원보다 좋은 구단은 없습니다. 프로축구 선수로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수원에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믿었어요. 2000년 샤샤를 대신해 J리그 가시와 레이솔로 3개월 임대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많은 구단에서 이적 제안을 받았어요. 에이전트에게 딱 한마디 했습니다. ‘수원이 나를 내치지 않는 한 떠나지 않는다’고.”

박건하는 2006년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수원 코치를 시작으로 매탄고등학교 감독, 한국 U-23 축구 대표팀과 A대표팀 코치, 서울 이랜드 FC 감독, 중국 슈퍼리그 상하이 선화 코치 등을 경험했다.

2020년 9월 8일. 박건하는 수원 지휘봉을 잡았다. 수원은 2013년 승강제 도입 후 첫 강등 위기에 놓인 상태였다. 지인들의 만류가 심했다. 박건하는 수원의 제안을 받고 고민을 멈췄다.

“수원이니까. 제안을 받기 전엔 고민이 많았어요. 막상 제안을 받으니 ‘해야겠다’ 싶었습니다. 프로축구 선수로 수원에서만 뛰었어요. 인생을 바친 팀이 위기에 처했는데 외면한다? 아닌 거 같았습니다. 수원이란 명문 구단의 지휘봉을 잡을 기회가 또다시 생긴다는 보장도 없고요. 수원과 함께 위기를 극복하면 지도자로 큰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거로 확신했습니다.”

수원이 달라졌다. 2020시즌 K리그1 잔류를 확정한 데 이어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8강에 진출했다. 2021시즌엔 K리그1 우승 후보로 거듭났다. 전반기를 3위로 마쳤다. 단독 선두 울산 현대와의 승점 차는 4점. 엠스플뉴스가 수원의 아버지 ‘건버지’로 불리고 있는 박건하를 만났다.

휴가 말미 찾아든 비보, ‘절친한 친구’ 유상철을 떠나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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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유상철 감독은 박건하 감독의 절친한 친구였다(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2020년 9월 8일 수원 삼성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K리그1 11위로 강등 위기에 놓인 팀을 일찌감치 K리그1에 잔류시켰습니다. 2020년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에선 8강에 올랐습니다. 2021시즌 K리그1에선 3위로 전반기를 마쳤습니다.

‘다행’이란 생각을 자주 합니다(웃음). 수원 감독으로 성과를 낸 건 없어요. 앞으로가 중요합니다. 코치진과 선수들이 잘 따라주고 있어요. 모두가 온 힘을 다하고 있죠. 매일 어떻게 하면 팀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을까 고민해요. 2021시즌 후반기엔 더 좋은 경기력을 보이겠습니다.

수원은 5월 29일 FC 서울과의 2021시즌 두 번째 슈퍼매치(3-0)를 마친 뒤 6월 9일까지 휴가였습니다. 휴가는 잘 보냈습니까.

시즌 중엔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어려워요. 가족과 2박 3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이후엔 지인들을 만났고요. 혼자 있는 시간엔 후반기 계획을 다시 한 번 점검했습니다. 그러던 중 (유)상철이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했죠.

인천 유나이티드 유상철 명예감독이 6월 7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맨정신으론 상철이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술을 많이 마셨죠. 상철이는 지도자로 이루고자 하는 게 많은 친구였어요. 선수 시절부터 축구 열정이 넘치는 축구인이었죠. 마음이 너무 아파요.

아.

A대표팀에서 상철이와 같은 방을 썼어요. 경쟁이 치열한 A대표팀에서 속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죠. 참 멋진 선수였어요. 공격수, 미드필더, 수비수 다 잘했습니다. 막기 어렵고 뚫기 힘든 선수였죠. 치열하게 대결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근황을 묻곤 했습니다. 선수 때부터 웃음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였는데... 보고 싶습니다.

박건하, 유상철은 1971년생 동갑내기입니다.

선수 때부터 쭉 친했어요. 상철이가 2019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을 맡기 전 자주 봤습니다. 둘 다 쉬는 중이었죠. 집이 가까워요. 전 집이 분당입니다. 상철이는 수지에 살았죠. 차로 몇 분 안 걸려요. 옛날이야기로 시작해서 지도자로 꿈꾸는 삶을 주고받았죠. 속에 숨겨둔 이야기도 많이 털어놨는데... 상철이가 췌장암 진단을 받은 후에도 여러 번 만났어요.

췌장암 진단을 받은 후에도요?

상철이가 항암 치료를 잘 이겨냈습니다. 잠시나마 건강을 회복한 시기가 있었죠. 상철이가 골프를 좋아해요. 장시간 운전이 힘든 상철이를 태우고 골프를 치러 다녔습니다. 올해 들어서 몸이 안 좋아졌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겨낼 거라고 믿었죠. 상철이니까. 지도자로 꽃을 피우기도 전에 세상을 떠난 것 같습니다. 저는 동기를 둘이나 잃었어요.

아.

2017년 10월 10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조)진호가 제 경희대학교 동기입니다. 보통 친구를 떠올리면 설레잖아요. 웃음이 절로 나고. 전 마음이 아파요. 보고 싶은데 만날 방법이 없습니다.

2016년엔 한국 U-23 축구 대표팀 이광종 감독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52세였죠. 지도자의 건강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가슴 아픈 일입니다. 감독은 경기에서 이기든 지든 다음 경기를 준비해요. 고민과 선택을 반복하죠. 결과가 안 좋을 땐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최대한 성적을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하는데 말처럼 쉽지 않아요. 내 선택이 나를 믿고 따르는 코치진, 선수들, 프런트, 팬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까. 건강관리 잘하면서 좋은 성적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죠.

은퇴 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명문 첼시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유럽 리그 지도자들은 스트레스 해소를 어떻게 합니까.

첼시에 오랫동안 몸담은 게 아니어서 말하기 조심스럽습니다. 내 생각을 얘기할게요. 유럽 지도자들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적었어요. 지도자가 꿈꾸는 축구를 구현하고 책임지는 시스템이었죠. 유럽엔 실패 후 일어설 기회가 많아요. 잉글랜드만 봐도 팀이 많습니다. EPL에만 20개 클럽이 있어요. 챔피언십엔 24개 클럽이 있죠. 그렇다고 유럽 감독들이 스트레스를 안 받는 건 아닙니다. 어떤 감독이든 스트레스를 받을 거예요. 건강관리 잘해야죠.

“AC 밀란 전설 프랑코 바레시처럼 행복한 프로축구 선수로 남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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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세리에 A AC 밀란 전설 프랑코 바레시(사진 왼쪽)(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다시 수원 삼성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박건하는 수원 전설입니다. 1996년 수원 창단 멤버로 입단해 14골 6도움을 기록했습니다. 생애 한 번뿐인 신인상을 거머쥐었죠. 2006시즌까지 수원 유니폼을 입고 뛴 뒤 은퇴했습니다. 선수 시절 수원은 어떤 팀이었습니까.

좋은 선수가 많았습니다. 고교, 대학, 실업팀에서 기량이 우수한 선수를 우선 지명으로 선발했어요. 파벨 바데아(루마니아), 데니스(러시아), 샤샤(세르비아), 산드로(브라질) 등 외국인 선수도 기량이 뛰어났습니다. 당시 수원은 10년 안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클럽으로 성장하겠다는 목표가 확고했어요.

수원 선수로 리그 우승 3회(1998, 1999, 2004), FA컵 우승 1회(2002), 리그컵(폐지) 우승 5회(1999, 2000, 2001, 2005), ACL 우승 2회(2000-2001, 2001-2002), 아시안 슈퍼컵 우승 2회(2001, 2002), A3 챔피언스컵 우승 1회(2005) 등을 경험했습니다. 수원 황금기 중심엔 박건하가 있었습니다.

창단 첫 시즌(1996) 챔피언 결정전에 올라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FA컵에서도 준우승을 차지했고요. 출발이 좋았습니다. 자신감을 얻으면서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떤 팀과 대결하든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0-2로 지고 있어도 뒤집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죠.

수원 황금기 중심에 섰습니다. 그러나 아시아 최고 팀인 수원의 주전 경쟁은 쉽지 않았습니다.

첫해 신인왕을 차지하고 자신감이 붙었어요. 그런데 매 시즌 아시아 최고 수준의 외국인 선수가 함께했어요. 치열한 경쟁을 피할 수 없었죠. 땀을 아끼지 않았지만, 후보로 밀려난 적이 많았습니다. 외국인 선수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코칭스태프가 밉기도 했죠. 당시엔 지도자 마음을 몰랐으니깐(웃음).

박건하는 국가대표 공격수였습니다. K리그와 J리그에서 여러 차례 이적 제안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주전 경쟁에서 밀려난 시즌에도 이적은 생각한 적 없어요. 아시아에서 수원보다 좋은 팀은 없었습니다. 프로축구 선수로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수원에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믿었어요. 수원에서 프로축구 선수 생활을 시작해 마무리까지 하고 싶었습니다(웃음). 그게 멋진 축구 인생이라고 확신했죠.

프로축구 선수로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습니다. 소속팀에 대한 애정만으로 더 큰 연봉을 마다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선수 시절 이탈리아 세리에 A 명문 AC 밀란 전설 프랑코 바레시의 은퇴식 영상을 봤습니다. AC 밀란에서 주장 완장을 무려 16년간 찬 전설 중의 전설이죠. 바레시는 1996-1997시즌을 마치고 은퇴했습니다. AC 밀란 홈구장 스타디오 주세페 메이차를 가득 메운 8만 관중이 힘찬 박수를 보냈어요. 눈물을 감추지 못한 팬도 수두룩했죠.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어떻게 하면 8만 관중의 박수를 받으며 떠날 수 있을까. 은퇴하는 날 나 대신 울어주는 팬이 몇이나 될까’ 하는 등의 생각을 했죠. 바레시처럼 행복한 선수로 남고 싶었습니다(웃음). 낭만적이지 않나요.

수원을 떠난 적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2000시즌 샤샤를 대신해 J리그 가시와 레이솔로 3개월 임대를 다녀왔습니다.

샤샤의 대체 선수로 J리그를 경험했죠. 다시 돌아올 것이란 확신이 있었어요. 당시 이적 제안을 가장 많이 받았을 겁니다(웃음). 에이전트에게 딱 한마디 했어요. ‘수원이 나를 내치지 않는 한 떠나지 않는다’고 했죠.

이 얘길 안 할 수 없습니다. 박건하는 K리그를 대표하는 공격수였습니다. 그런데 2002시즌 공격수에서 수비수로 포지션을 바꾸었습니다.

김 호 감독님이 처음 수비수로 뛰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했어요. 솔직히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공격수로 굳건한 신뢰를 보내주면 잘할 수 있는데 왜 외국인 선수만 믿는 걸까 싶었죠(웃음). 하지만,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습니다. 팀이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수비수도 괜찮다고 생각했죠.

김주성, 고(故) 유상철, 김현석 등이 공격수와 수비수를 두루 경험한 바 있습니다. 중앙 수비수 박건하는 어떤 선수였습니까.

수비수로 뛴 첫 경기가 기억나요. 전북 현대전이었을 겁니다. 재밌었어요. 상대 공격수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보였습니다. 잘 막았어요. 수비수로 뛰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죠.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착각이란 걸 느꼈습니다. 당대 최고의 팀인 성남 일화 천마(성남 FC의 전신)를 만나 큰 실수를 범했어요.

어떤 일이 있었던 겁니까.

0-0으로 팽팽하게 맞선 후반 추가시간이었습니다. 후방에서 패스를 연결한 게 끊긴 거예요. 실점으로 이어졌죠. 수비수가 매우 힘든 포지션이란 걸 느꼈습니다. 공격수와 수비수를 모두 경험한 건 지도자 생활에 큰 힘이 되고 있어요. 선수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죠. 딱 하나 아쉬운 건 있습니다.

뭡니까.

K리그 통산 292경기에서 뛰며 44골 27도움을 기록했습니다. 공격수로 계속 뛰었다면 40-40클럽에 가입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거죠. 50골도 넘겼을 것 같고요(웃음).

다른 팀으로 이적했으면 공격수로 더 뛸 수 있었던 것 아닙니까.

수원 전설이란 소릴 듣습니다. 영광스러워요. 수원은 예나 지금이나 아시아 최고의 팀입니다. 모기업의 지원이 줄고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횟수가 줄어든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수원은 수원입니다. 우리가 일군 역사는 사라지지 않아요. 선수들은 선배들이 일군 역사에 자부심을 느끼고 한 발 더 뜁니다. 감독으로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또 한 번 증명해야죠.

지도자의 눈으로 선수 박건하를 평가해줄 수 있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자신을 평가하는 것 같아요(웃음). 선수 시절을 돌아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알게 되는 것들이 있어요. 부족한 점을 하나둘 메워서 수원에 더 많은 우승 트로피를 선물했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더 많은 팬에게 행복한 추억을 선물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커요. 그런 선수 박건하를 기억해주는 팬이 있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코치, 선수, 프런트, 팬 모두에게 박건하 감독과 함께했을 때 참 행복했다는 얘길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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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삼성 박건하 감독(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2006시즌을 마치고 은퇴했습니다. 곧바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죠. 수원 삼성 코치를 거쳐 구단 유소년팀인 매탄고등학교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2021시즌 매탄고에서 성장한 정상빈, 강현묵, 김태환 등이 축구계 눈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2009, 2010년 매탄고는 어떤 팀이었습니까.

매탄고는 2008년 3월 3일 창단했습니다. 수원 유소년팀으로 자릴 잡아가는 시기였죠. 당시에도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선수가 많았어요. (권)창훈이가 대표적이었죠. 창훈이는 고교 시절부터 재능이 남달랐어요. 힘과 스피드, 기술 등이 뛰어났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정신력도 대단했습니다.

정신력이요?

기술이 뛰어난 학생선수는 수두룩해요. 한 단계 더 성장하려면 정신력이 중요합니다. 창훈이는 어릴 때부터 한 단계 성장하려는 의지가 강했어요. 프로에 입문한 후엔 주전 경쟁에서 살아남으려고 온 힘을 다했죠. 출전 기회를 잡기 힘든 상황에서 좌절하지 않았어요. 선배들의 강점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한 단계 올라서려고 했죠. 그런 자세가 지금의 창훈이를 만들지 않았나 싶어요. 대단한 선수입니다. 정상빈, 강현묵, 김태환 등도 마찬가지예요.

마찬가지다?

1, 2월 동계훈련 강도가 강했습니다. 정상빈, 강현묵, 김태환 등은 힘든 상황에서 주저앉지 않았어요. 어떻게든 이겨내려고 했죠. 그걸 보고 올 시즌 좋은 경기력을 보이겠구나 싶었어요. 지도자로 많은 경험을 쌓았습니다. 유소년팀 감독을 비롯해 U-23 축구 대표팀, A대표팀 코치, 서울 이랜드 FC 감독, 중국 슈퍼리그 상하이 선화 코치 등을 역임했죠. 느낀 게 있습니다.

뭡니까.

지도자가 좋은 선수를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선수 스스로 지금보다 한 계단 올라서려고 발버둥 칠 때 최고의 성과가 나타나요. 선수가 높은 목표를 잡고 나아갈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게 지도자의 역할이구나 싶습니다. 선수들이 2021시즌 전반기보다 훨씬 더 발전할 수 있게끔 도와주고 싶어요. 올 시즌 전반기엔 우로스 제리치가 조금 나아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외국인 스트라이커 제리치요?

올 시즌 개막 후 제리치의 컨디션이 기대만큼 올라오질 않았어요. 제리치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했습니다. 개인 훈련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외국인 선수들은 자기만의 훈련 방식이 있어요. 구단에서 요구하는 걸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제리치도 처음엔 팀 훈련만으로 충분하다고 했어요. 하지만, 대화를 거듭한 끝에 개인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결과로 나타났어요.

제리치가 2021시즌 K리그1 전반기 17경기에 출전해 4골 1도움을 기록했습니다. 경기를 거듭할수록 존재감이 커졌습니다.

내가 제리치에게 다가가니 속마음을 털어놨습니다. 제리치가 “솔직히 생각만큼 경기력이 올라오지 않는다. 나도 고민”이라고 했죠. 제리치에게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뭐든 하겠다. 날 믿고 훈련량을 늘려보자”고 했어요. 제리치의 경기력이 올라오면서 신뢰가 두터워졌습니다(웃음). 후반기엔 더 좋은 경기력을 보일 거예요. 지도자는 선수에게 확실한 목표 의식을 심어줘야 합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줄 수 있습니까.

2021년에 사는 선수들은 지도자의 지시라고 해서 무작정 따르지 않습니다. 지도자는 이 훈련을 왜 해야 하는지 선수들을 이해시키면서 팀을 이끌어 나가야 해요. 선수 개인의 발전을 꾀하려면 명확한 목표를 심어주고 더 땀 흘릴 수 있도록 도와야 하죠. 그런 것들이 하나하나 모이면 팀 발전으로 이어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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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울리 슈틸리케 감독(사진 가운데)을 도와 AFC 아시안컵 준우승에 일조한 박건하(사진 왼쪽)(사진=대한축구협회)



지도자로 2012년 런던 올림픽, 2014년 브라질 월드컵, 2015년 AFC 아시안컵 등을 경험했습니다. 대표팀 지도자로 얻은 가장 큰 자산은 무엇입니까.

말 그대로 대표팀입니다. 한국 최고 선수가 모인 팀이죠. 그런 선수들을 지도했다는 건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보다 한 수 위의 팀을 상대하면서 배우고 느낀 게 많았고요.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선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겼습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은 큰 아픔으로 남아 있고요. 이 얘길 하니 재미난 일화가 떠오릅니다.

재미난 일화요?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를 1무 2패로 마쳤습니다. 국민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죠. 한국에 도착한 날 엿이 날아들었어요. 6개월 뒤 호주에서 열린 아시안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한국에 도착한 날 꽃을 받았어요. 똑같은 자리였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이었죠. 대표팀 코치 생활을 안 했다면 경험할 수 없었을 겁니다.

2016시즌엔 대표팀 코치 생활을 마치고 이랜드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프로 첫 감독 도전이었습니다.

1994년부터 1995년까지 이랜드 푸마에서 뛰었습니다. 당시 이랜드는 실업팀이었죠. 이랜드에서 프로 감독 생활을 시작하는 게 의미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어요. 하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초보 감독이다 보니 부족한 게 많았죠. 무엇보다 이랜드 전임 감독이 외국인 지도자였습니다.

이랜드 초대 감독인 마틴 레니에 이어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을 보좌하면서도 느꼈지만, 국내 지도자와 외국인 지도자 사이엔 큰 차이가 있어요. 외국인 지도자는 자율성을 중요시합니다. 이랜드도 마찬가지였죠. 경기 당일 선수들이 알아서 경기장에 올 정도였습니다. 선수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게끔 합숙을 하는 등 변화를 꾀했지만 부족한 게 많았던 거 같아요. 많이 배웠습니다.

이랜드와 이별한 후엔 중국 슈퍼리그 상하이 선화 코치로 합류했습니다. 프로 감독 생활을 시작한 지도자가 코치직을 맡는다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닙니다.

크게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최강희 감독을 보좌하면서 배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어요. 마다할 이유가 없었죠. 막대한 투자로 세계적인 지도자, 선수가 모여드는 슈퍼리그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국외에서 지도자 생활을 한다는 게 흔히 있는 기회도 아니고요.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2020년 9월 8일 마침내 수원 지휘봉을 잡습니다. 당시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수원이 강등권에서 허덕이다 보니 또 한 명의 전설을 잃는 게 아닌가 싶은 우려가 있었어요. 수원의 제안을 받고 고민은 없었습니까.

지인들의 만류가 있었죠. 비슷한 얘길 했어요. 많은 분이 “네가 선수로 뛰던 시절의 수원이 아니다. 팀 상황이 너무 안 좋다. 다음을 기약하라”고 했죠. 고민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겁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싶었던 게 사실이에요.

수원의 제안을 수락한 이유가 있습니까.

수원이니까. 제안을 받기 전엔 고민이 많았어요. 막상 제안을 받으니 ‘해야겠다’ 싶었습니다. 프로축구 선수로 수원에서만 뛰었어요. 인생을 바친 팀이 위기에 처했는데 외면한다? 아닌 거 같았습니다. 수원이란 명문 구단의 지휘봉을 잡을 기회가 또다시 생긴다는 보장도 없고요(웃음). 수원과 함께 위기를 극복하면 지도자로 큰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거로 확신했습니다.

2021시즌 수원은 K리그1 우승 후보입니다. FA컵에서도 8강에 오른 상태입니다.

2021시즌 절반이 지났습니다. 이룬 건 아무것도 없어요. 수원은 성장에 만족해선 안 되는 팀입니다.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빅버드(수원월드컵경기장)를 찾는 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에요. 수원의 역사를 이어갈 수 있도록 모든 걸 쏟아붓겠습니다.

선수 박건하는 수원 전설입니다. 감독 박건하는 어떻게 기억되고 싶습니까.

함께 땀 흘린 코치, 선수, 프런트, 팬 모두에게 박건하 감독과 함께했을 때 참 행복했다는 얘길 듣고 싶어요. 매 경기가 기다려지는 웃음 가득한 시간을 남기고 싶습니다. 수원이란 팀에 걸맞은 지도자일 수 있도록 초심 잃지 않겠습니다. 2021시즌 K리그1 후반기에도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잘 준비하겠습니다.

이근승 기자 thisissports@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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