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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김동연의 자산어보…"재정만으론 어업 못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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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지난 21일 충남 서산 중왕어촌계에서 어민들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유쾌한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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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캐주얼한 차림에 도수 높은 뿔테 안경을 끼고 백팩을 멘 중년 남성이 충남 서산 한 어촌 마을회관에 들어섰다. 삼삼오오 모여든 동네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강의를 시작한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농어촌 혁신과 민생이며 계층 이동의 사다리로 사회의 역동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지난 주말에는 홀로 서울 명동성당을 찾았다. 노숙인 무료급식소 봉사활동을 위해서다. 앞치마에 수수한 차림이라 취재진만 없었다면 그가 대권 잠룡 중 한 명이란 사실을 쉽게 알긴 힘들었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야기다.

김 전 부총리는 이날 충남 서산 지곡면 중리어촌체험마을을 방문해 지역 어민들을 만나 어촌 혁신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가두리 양식장 점검, 소라잡이 체험, 동네 청소 등 1박2일 일정을 소화했다. 그는 본인이 만든 사단법인 유쾌한반란을 통해 전국 농어촌을 돌며 민생 혁신을 설파하고 있는데, 벌써 들른 곳이 60여 곳에 이른다.

이날 매일경제는 김 전 부총리의 중리어촌체험마을 방문 일정에 동행했다. 김 전 부총리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검찰개혁·종합부동산세 등 서민 민생과는 동떨어진 정치공학적 논쟁에 몰두하는 여느 대선 후보들과 달리 전국 농어촌을 돌며 민생 밑바닥부터 훑고 있기 때문이다.

오후 4시께 간단한 강연을 마친 김 전 부총리는 가두리 양식장을 들러 소라잡이를 하기 위해 배에 올라탔다. 가두리 양식장에서는 어민들에게 "가두리 위에 그물은 왜 쳐놓은 건가요?" "치어와 성어를 함께 기르는 게 수익이 더 좋지 않나요?" 등 호기심 가득한 질문을 던졌다. 갯벌로 이동해 소라잡이를 하며 어민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김 전 부총리는 내친김에 낙지잡이에도 도전했다. 호미질을 수십 번 한 끝에 낙지 한 마리를 겨우 건지자 김 전 부총리는 "낙지 한 마리에 이런 노고가…"라며 혀를 내둘렀다. 잡은 낙지를 어민이 손으로 죽죽 당겨 바닷물을 빼고 건네주자 즉석에서 받아서 먹고, 막걸리도 나눠 마셨다.

현재 중왕어촌계는 정부의 어촌뉴딜300 사업의 지원을 받아 '기숙형 귀어학교'를 짓고 있다. 귀어인들이 장기간 머물면서 어업을 배우고 귀어 초기 기반을 다질 수 있도록 돕자는 구상이다. 사실 어촌뉴딜300 사업은 김 전 부총리가 부총리 재직 시절 밀어붙인 사업이다. 처음에 어촌 10개 프로젝트 대상으로만 진행하는 사업안을 보고 받고 "이왕 할 거면 300개로 확 늘려서 제대로 하라"면서 전폭적으로 밀어줬다는 후문이다.

조선 후기 문신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은 섬 근해의 해양생물을 연구한 '자산어보'를 집필해 어민들에게는 민생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줬고, 소나무 벌목 금지를 비롯해 잘못된 임업 정책을 비판한 '송정사의'를 집필해 민생에 도움을 줬다.

동생인 정약용이 탐관오리를 척결하고 썩은 정치가들을 쇄신하기 위해 국민을 다스리는 정치와 철학에 대한 거대담론을 담은 '목민심서'의 길을 간 것과는 대조적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 대선 후보들이 기본소득·공정사회 등 담론 싸움에 몰두하는 와중에 김 전 부총리는 현장에서 민생을 체험하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것을 끊임없이 찾는 중이다. 이날 그는 어민들 앞에서 "재정적 지원만 해서는 위기의 농·어업에 미래가 없다"며 "농어민들로 하여금 스스로 혁신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치적 메시지도 남겼다. 그는 "현재 한국 경제가 어려운 것은 과거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국가주의와 관 개입주의 등 과거의 성공 경험이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이 틀을 깨야 답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많은 언론이 이날도 그를 둘러싸고 "언제 출마를 선언하느냐"고 물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이런 질문에 그의 속 시원한 대답이 나올 날은 아마도 민생의 길이 있는 '자산어보'와 지도자의 길이 있는 '목민심서' 그사이에서 자신의 답을 발견하는 날이 되지 않을까.

[충남 서산 = 전경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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