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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현대인을 포획한 팬덤…정치·문화·경제까지 천사와 악마로 편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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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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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이고 능동적인 대중 현상인가 아니면 욕망이 투영된 집단최면인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가장 적절하게 설명해주는 단어 중 하나가 팬덤(fandom)이다. BTS(방탄소년단)와 같은 인기 아이돌그룹에서부터 정치인, 스포츠 스타는 물론 특정 상품에 이르기까지 한 사회를 주도하는 모든 주체에게는 팬덤이 따라다닌다. 팬덤은 단순한 열광적 팬 집단을 넘어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소비를 조장하고, 대의 민주주의 결과를 바꾸고, 대중의 의식에 간섭한다. 집합과 확산을 먹고사는 팬덤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달로 더욱 강력한 무기를 장착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팬덤의 운동장이자 먹이터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팬덤은 선인가 악인가?

◆ 봉사와 광신. 두 얼굴을 지닌 팬덤의 기원


팬덤은 사전적으로는 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또는 그러한 문화 현상을 의미하는 단어다. '광신자'를 뜻하는 '퍼내틱(fanatic)'에서 따온 단어인 팬(fan)과 영토·영지(領地)·국가 등을 뜻하는 '덤(-dom)'이라는 단어의 합성어다. 팬의 어원이 된 '퍼내틱'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파나티쿠스(fanaticus)'에서 유래했다. 파나티쿠스는 애초에는 교회에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러던 것이 중독자의 의미를 포함하면서 광신자를 뜻하는 퍼내틱이라는 단어가 됐다.

결국 팬덤이라는 말의 역사 속에는 봉사와 광신이라는 두 얼굴이 존재하는 셈이다.

따지고 보면 예수나 부처도 팬덤을 통해 자신의 뜻을 세상에 알렸다. 지금으로 치자면 예수의 열두 제자와 부처님의 십대 제자는 팬클럽 회장인 셈이다. 그 '찐팬'들에 의해 인류사가 바뀐 것이다.

◆ 자격은 없다. 추종하기만 하면 된다


매일경제

어쨌든 팬덤은 어떤 특정 인물이나 집단, 상품에 지나치게 편향된 사람들의 집단을 의미한다. 그 집단은 형태적으로는 자발적이다. 강제성 없이 좋아하고 추종한다는 공통점 하나로 뭉친 집단이다. 집단 구성원이 되기 위한 자격 제한도 없다. 대상을 절대적으로 좋아하면 된다.

팬덤이라는 말이 처음 적용되기 시작한 분야는 대중문화다. 텔레비전의 보급과 함께 대중문화가 확산되면서 특정인을 환호하는 팬의 숫자가 늘어났고 이들이 모여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팬덤이라는 말이 탄생했다.

팬덤은 주로 팬클럽이라는 형태로 유지됐는데 한국에서는 1980년대 초 가수 조용필의 '오빠부대'가 한국 팬덤의 시초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이어 가수 서태지가 청소년의 우상으로 떠오르면서 1990년대 팬덤문화를 주도했고 이후 아이돌그룹이 생겨나면서 팬덤은 청소년 문화의 중심에 섰다. 대중문화에 국한된다는 특성 때문에 초기에는 팬덤문화를 하위문화로 취급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던 것이 인터넷의 발달로 청소년뿐 아니라 전 연령층으로 확산되고 대중문화를 넘어 정치로까지 분야가 확대되면서 현대사회를 움직이는 중요한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2013년 무렵부터 트위터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덕후'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 말은 일본어 오타쿠(おたく)에서 유래한 용어로 무언가에 열성적인 팬을 의미한다. 덕후들이 집단화하면 그것이 팬덤인 것이다. 최근에는 '빠'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이 역시 팬덤과 동일한 의미다. '사생팬'이라 불리며 순진하고 반사회적인 중독자의 이미지에 머물러 있던 '팬'이라는 존재가 이제 바야흐로 세상을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 팬덤을 이끄는 원동력 SNS


SNS 없이는 팬덤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으로 대표되는 SNS는 팬덤을 강화·확산시킨다. 추종자들은 SNS를 통해 추종 대상자의 정보를 확인하고 나눈다. 또 자신들의 결속력을 확인하고 행동 방침을 공지하기도 한다. 심지어 추종 대상자를 해한다고 믿어지는 집단이나 개인을 공격하기도 한다. SNS가 일반화되기 이전 팬덤활동은 주로 정기적인 회합이나 잡지 등을 통해 이뤄졌다. 이 시기 팬덤문화는 시간이나 공간에 크게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팬덤현상이 시공간의 제약을 벗어나게 만든 것이 바로 인터넷이고 SNS다.

학자들은 SNS의 역할을 '민주적 결속'이라고 보는 쪽과 '비이성적 집단 최면'으로 보는 쪽으로 나뉜다.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SNS의 속성상 비논리적 비약이 종종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것은 팩트에서 벗어난 유언비어를 조장하기도 한다.

◆ 팬덤을 거느리는 자가 승리한다


BTS의 결정적인 성공 요인의 밑바탕에는 팬덤이 있었다. BTS가 연일 조회 수 신기록을 세우고 빌보드 1위에 오른 현상의 핵심에는 팬클럽 '아미(Army)'가 있었다. 'BTS=Army'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BTS는 기존 방송사나 기획사 주도가 아닌 온라인 공유 채널을 활용해 팬들과 직접 소통했다. 이를 통해 팬들의 참여를 끌어내고, 팬들이 직접 이를 주도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형성된 팬덤이 자발적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고 이를 공유하기 시작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팬이 늘어났던 것이다. 팬이 늘어나고 결집하는 만큼 그들이 만들어내는 콘텐츠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 공유됐다.

그동안 비즈니스 세계에서 팬덤의 가치는 평가절하돼왔던 게 사실이다. 흔히 '팬'이라고 하면 무엇엔가 중독된 사회성 없는 청소년이나 훌리건 같은 과격한 스포츠 팬을 먼저 떠올렸다.

하지만 이제 팬덤은 비즈니스 세상을 움직인다. 삼성과 애플도 팬덤을 앞세워 세계시장에서 싸우고 있다. 데이비드 미어먼 스콧과 레이코 스콧이 쓴 '팬덤 경제학'은 이렇게 말한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팬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정보의 홍수 속에 고객이 너무 쉽게 이 브랜드에서 저 브랜드로 옮겨 다니는 요즘, '고객을 팬으로 만드는 것'은 기업에 선택이 아닌 필수 전략이 되었다. 고객을 팬으로 만들지 않으면 시장에서 더는 살아남기 힘든 시대가 온 것이다."

◆ 팬덤은 브랜드 파워의 핵심이다


얼마 전 영국 BBC는 '슈퍼브랜드의 비밀'이라는 다큐멘터리 시리즈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소개했다. 이른바 극렬 '애플빠'인 실험 대상자들에게 애플의 최신 기기를 보여주고 그들의 두뇌를 자기공명영상(MRI)으로 촬영했다.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이들의 뇌 속에서 보상과 쾌감을 담당하는 쾌감중추가 강력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이 영상은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이나 특정 종교에 완전히 몰입돼 있는 사람들의 뇌에서 관찰되는 것과 동일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특정 브랜드에 열광한다는 것은 종교인이나 마약중독자가 특정 교리나 약물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것과 동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팬덤의 심리적 영향력은 강력하다. 소위 명품이라 불리는 상품들은 모두 팬덤을 기반으로 유지되는 마케팅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할리데이비슨, 롤렉스, 구찌, 루이비통, 람보르기니 같은 브랜드는 모두 팬덤의 힘으로 완성됐다.

"고객은 떠나도 팬은 떠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이제 팬덤은 기업 마케팅의 핵심이다.

◆ 21세기 정치는 '팬덤 정치'


팬덤은 정치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사실 정치인들도 연예인이나 상품처럼 소비자의 인기 없이는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정치인들은 선거라는 경연장에서 승리해야 한다. 선거는 결국 인기 경쟁이다. 선거에서 인기의 힘은 대단하다. 우리는 '인기' 하나만으로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권좌에 오른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그들이다. 이들은 세력이나 무력, 혹은 경제력보다는 대중의 인기로 자리에 오른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노사모'니 '박사모'니 하는 특정 정치인의 팬덤을 뜻하는 단어는 이제 정치문화를 이야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돼버렸다.

팬덤은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무기다. 팬덤은 지지하는 정치인이 어떤 입장이 되든, 어떤 선택을 하든 무조건적으로 지지하고 추종하는 베이스캠프 역할을 한다. 정치에서 팬덤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여론이 중요한 시대일수록 팬덤은 정치의 가장 큰 동력으로 작용한다. 더구나 유권자 모두가 스마트폰이라는 '미디어' 한 개씩을 운영하고 있는 지금, 팬덤은 그 어떤 조직보다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 정치 팬덤의 빛과 그늘


정치인에 대한 열혈 지지는 오래전부터 있어왔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정치인들에 대한 지지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 같은 열혈 지지는 그릇된 형태로 쉽게 변질된다.

정치팬덤은 자기들이 지지하는 정치인을 오류라고는 없는 절대자로 신화화하는 경우가 많다. 그 반대급부로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과 경쟁 구도에 있는 정치인이나 집단을 야만화하거나 악마화한다. 팬덤이 극단적인 진영논리의 전진기지가 되는 것이다. 정치 지도자에 대한 지지가 숭배나 결사옹위의 분위기를 띨 때 우리는 법치와 민주주의의 훼손을 우려해야 한다.

정치인에 대한 팬덤은 반드시 필요하다. 단 이것이 국가와 민주주의에 약이 되느냐 독이 되느냐는 팬덤 구성원들의 의식에 달려 있다.

◆ 인간은 취향의 동물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1930~2002)는 구별짓기 이론으로 유명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취향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모든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미를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의 기준이다. 취향을 통해 사람들은 스스로를 구분하며, 다른 사람들에 의해 구분된다."

그렇다. 인간은 취향의 동물이다. 취향을 드러내면서 자기를 확인하고 자기의 준거집단을 확인한다. 인간의 정체성은 취향에서 나온다. 취향이 없다면 삶 자체가 무의미해질지도 모른다. 취향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래서 팬덤도 인간의 본성이다. 바로 이 본성이 정보기술(IT)이 만들어낸 초연결 사회를 만나면서 더욱 쉽게 확장되고 공유되고 권력화되고 있다.

팬덤이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자양분이자 뼈대가 되느냐, 아니면 우리를 괴롭히고 파괴하는 괴물이 되느냐는 결국 우리 손에 달렸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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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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