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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라이프 트렌드&] 숨 쉬는 ‘맛의 결정체’ 왜 씨간장에 열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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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전문가에게 듣는 맛있는 이야기

기존 장에 매년 새로 담근 장 섞는‘겹장’

숙성과정서 아미노산의 감칠맛 극대화

시간보다 오래 간직하고 싶은 맛에 주목

중앙일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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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리터에 500만원에 낙찰된 적 있습니다.”

“2kg에 1억원 정도 추산됩니다.”

“20여 종 종자장을 블렌딩해 100ml에 5000만원씩 분양 예정입니다.”

모두 씨간장(종자장) 가격에 관한 실제 일화다. 최고급 위스키나 희귀 포도주보다 값이 나간다. 비싼 모든 재화가 그렇듯 희소성이 더해진 가치다. 이 값이 합당할까. 식품업계에 종사하는 이들은 대부분 인정하는 분위기다. 매년 간장을 새로 담가 기존 장에 섞어 대를 이어가는 ‘겹장’ 작업을 통해 정성을 더하면 그 집만의 특수한 종균과 맛, 향이 항아리에 오롯이 남는 셈이라 소장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까닭이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방한, 만찬을 가질 때 전남 담양 장흥 고씨 양진재 문중의 씨간장이 등장해 세계적 화제가 되기도 했다.

도대체 왜 씨간장에 열광하는 것일까. 씨간장이란 과연 무엇일까.

중앙일보


콩 단백질 발효과정서 최상의 감칠맛 발견

육식(잡식) 동물이 대개 그렇듯 아미노산의 강력한 맛 앞에선 꼼짝없이 무너지고 만다. 인간도 마찬가지. 아미노산은 단백질 분해에서 나오니 결국 단백질은 맛을 의미한다. 아미노산이 ‘감칠맛(umami)’의 주인공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L-글루탐산나트륨(Mono-Sodium L-Glutamate)이며, 이중 글루탐산은 자연에 존재하는 아미노산 20여 종 가운데 하나다. 게다가 글루탐산은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다. 결핍 시 죽을 수도 있다.

감칠맛을 내기 위해선 가축과 가금류 고기나 조개, 생선 등 구하기 어렵고 값비싼 식재료를 써야 했다. 머리가 좋았던 인류는 단백질을 발효시키면 맛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엔 주로 고기나 생선을 썼다. 고대 로마의 젓갈 가룸(Garum)을 비롯, 동남아시아 남쁠라나 느억맘(fish sauce) 등 어장(魚醬) 문화권에서도 이미 발효의 효과에 대해 터득했다. 내륙에선 고기로 육장(肉醬)을 담그고 유목민들은 유제품에서 그 맛을 찾았다.

한국인은 콩을 소금과 함께 발효시켜 상당한 맛을 찾아냈는데 그것이 바로 간장과 된장 등 두장(豆醬)이다. 된장 생산 과정에서 간장이 나온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간장을 얻기 위해 메주를 띄웠는데 된장이 부산물로 남는 것이다.

특수한 맛·향 오롯이 남는 ‘겹장의 미학’

재료는 뭐가 됐든 간장이나 어장은 그 원리가 같다. 고순도 아미노산을 얻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아미노산의 맛은 ‘시간의 맛’이다. 단백질 발효과정에서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발효를 거친 간장에는 아미노산이 농축된다. 이후 감칠맛을 내는 ‘조미료’와 ‘단백질 공급원’, 이 두 가지 커다란 기능이 생긴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숙성’이 필요하다. 숙성을 오래 시키면 짠맛은 줄고 단맛이 난다. 풍미도 증가한다. 2~3년 정도를 숙성해야 쓸만한 간장이 된다고 여겼다. 1~2년 미만 숙성일 때는 청장(淸醬), 5년 미만까지는 중장(重醬), 그 이상은 진장(眞醬)이라 불렀다.

위스키나 와인처럼 블렌딩을 하기도 한다. 새로 담근 간장에 씨간장을 넣거나, 씨간장독에 햇간장을 넣어 맛을 유지하기도 한다. 이를 겹장(또는 덧장)이라 한다. 몇몇 종갓집에선 씨간장 잇기를 몇백 년째 해오고 있다. 매년 새로 간장을 담가야 이어갈 수 있으니 불씨 꺼트리지 않는 것처럼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집집마다 내려오는 고유 장맛을 잃지 않기 위함이다. 씨간장이란 그만큼 소중한 주방의 자산이며 정체성이다.

이제는 몇 대씩 물려가며 겹장을 담그는 일이 녹록찮다. 다만 다들 ‘숙성의 미학’에 주목하기에 최근 현대적 개념의 씨간장이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숨 쉬는 발효식품 간장에 좀 더 맛이 들기 위해 겹장을 담가 숙성시킨다.

비단 장기숙성시켜야만 좋은 와인이 나오는 것은 아닌 것처럼, 현대의 씨간장은 기간보다는 그 원리와 정성에 의해 맛이 든다.

바삐 흐르는 시간 속에 한식의 맛이 대물림되고 있다. 그 중심에 씨간장이 있다.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demory@naver.com

이우석 소장은

▶1998년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 입사

▶2003년 11월 ~ 2019년 12월 여행, 레저, 식도락 담당

▶2012 ~ 2017년 한국관광공사 ‘이달의 가볼만한 곳’ 선정위원

▶2014 ~ 2015년 한국중앙일간지 여행기자협회장 역임

▶2016년 ~ 한돈자조금협회 명예홍보대사

▶2019년 ~ 서울관광재단 관광 자문기자단

▶2020년 ~ 한국관광공사 관광일자리 전문 자문위원(멘토)

▶2020년 ~ 한국관광공사 산학연관 혁신 프로그램 사업단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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