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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中 17조 쓸때 韓 435억…인류 난제풀 양자컴 투자 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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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바꿀 양자기술 (上) ◆

매일경제

대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지하에는 국내에 두 대뿐인 초전도 양자컴퓨터가 있다. 칩, 센서를 비롯해 작은 부품 하나까지 모두 국내 연구진이 만든 작품으로 365일 쉬지 않고 가동 중이다. 비록 큐비트(qubit·양자컴퓨터 계산 단위) 다섯 개를 연결한 칩이지만 우리 기술로 양자컴퓨터를 만들고 최적화해 알고리즘까지 적용해보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박희수 표준연 양자기술연구소장은 "현재 우리가 개발 중인 양자컴퓨터는 관련 분야 연구 노하우를 지난 10여 년간 집약시킨 결과물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양자컴퓨터는 인류의 온갖 난제를 해결해줄 '꿈의 컴퓨터'로 불린다. 현재 최고 성능의 슈퍼컴퓨터가 10억년 걸려야 풀 수 있는 문제를 양자컴퓨터는 단 100초 만에 풀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인터뷰에서 "양자컴퓨팅으로 코로나19 같은 전염병을 예측해 '표적치료제'를 개발하고, 탄소배출량이 많은 비료를 대체할 친환경 비료를 만들 수 있다"며 "양자 암호 기술은 2~3년 안에, 양자 클라우드 기술은 4~5년 안에 금융기관 같은 곳에서 활용되기 시작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근 미·일정상회담에 이어 한미정상회담에서도 양자 기술 협력은 주요 이슈로 논의됐다. 하지만 한국의 관련 예산 규모가 턱없이 부족해 자칫 끌려갈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한국은 2023년까지 양자컴퓨터 요소 기술 개발에 435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밝힌 상태인데, 주요 선도 국가들과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미국은 2018년 이후 4년간 12억달러(약 1조3500억원)를 투자했고, 중국도 같은 기간 1000억위안(약 17조원)을 투자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일본도 매년 수천억 원씩 투입하는 상황이다. 올해 IBM이 개발하는 127큐비트를 감안하면 기술 격차는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연산 용량은 큐비트 1개당 2배가량 차이가 나는데, 큐비트 수가 늘어나고 완벽히 작동할수록 연산 용량 차이는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진다.

"코로나·기후변화 해법 찾는다"…한국 '양자컴 전쟁' 이제 첫발

글로벌 양자컴퓨터 전쟁
한국기술은 어디쯤 왔나


2년여 개발끝 K양자컴 윤곽
모든부품 자체기술로 조달
"걸음마 뗐지만 의미있는 성과"

삼성전자, IBM 파트너로 참여
SKT 등 이통사도 적극 투자

바이든 '양자동맹' 구축하고
시진핑은 17조원 투자 지시
IBM·구글 등 IT공룡들 사활
"10년내 초격차 달성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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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은 글로벌 기업 100여 곳에 65큐비트 양자컴퓨터 활용 서비스를 제공한다. IBM 연구원이 `순금 샹들리에`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퀀텀컴퓨터 부품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제공 = IBM]


한국형 양자컴퓨터를 개발 중인 대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양자기술연구소. 20평 남짓 되는 연구실에는 양자컴퓨터 구동에 필수인 두 대의 냉동기와 전자파 신호 처리 제어장치, 결과값을 볼 수 있는 모니터 등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1초에 한 번씩, 철근을 좌우로 긁는 것 같은 시끄러운 '쇳소리'가 들렸다. 절대 0도에 가까운 온도를 유지하기 위한 펌핑 소리라고 했다. 집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냉장고 소리'인 셈이다.

올해 말 1차 종료를 앞두고 실험에 한창인 이 연구과제에는 국책연구소와 대학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컨소시엄에 참여한 연구자들은 지난 2년여간 센서와 소자 등 부품 하나하나를 직접 만들고 적용하면서 한국 최초 양자컴퓨터의 틀을 만들었다.

업계를 주도해온 IBM이 이미 65큐비트 컴퓨터를 서비스하고 있고,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도 '10년 내 1000큐비트 시대'를 선언했다. 한국의 5큐비트 양자컴퓨터에 비하면 크게 앞섰다. 하지만 정연욱 성균관대 교수(양자정보연구지원센터 센터장)는 "자동차를 한 번도 안 만들어본 기업이 소형차를 만든다고 생각해보라.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이 배우겠나. 부품을 만드는 협력사들이 생기고 연구원과 엔지니어들이 경험을 쌓고 그게 쌓여 고급 차를 만드는 노하우가 된다"면서 "같은 5큐비트라고 해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성능은 하늘과 땅 차이일 수 있다. 지금 5큐비트 컴퓨터 개발은 결과물보다 '과정'에서 얻는 것이 훨씬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한국 양자컴퓨터 기술 수준은 선진국보다 5~10년 정도 늦은 것이지만, 작은 규모라도 '완성품'을 만들어본 경험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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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디지털 기술 다음은 양자 기술의 시대가 될 것으로 본다. 양자컴퓨터의 능력이 어디까지일지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이론상으로는 1000큐비트 양자컴퓨터가 개발되면 산업 전반에 '파괴적 혁신'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되지만, 오류 등을 감안해 제대로 된 양자컴퓨터가 완성되려면 100만큐비트는 돼야 할 것이라는 학자들도 있다. 다만 지금까지 풀 수 없었던 사회 문제들이 풀리고 인류의 진화를 이끌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아직 초기지만 주요국 정부가 양자 기술에 천문학적 금액을 투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 지시로 2018년부터 1000억위안(약 17조5000억원)을 투자해 양자컴퓨터를 개발하고 세계 최대 양자정보과학국가연구소를 설립하기로 했다. 미국도 같은 해 백악관 주도로 국가 양자이니셔티브 법안을 통과시키고 수조 원의 투자를 쏟아붓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양자컴퓨팅을 비롯한 양자 기술이 미·중 간 첨단기술 패권 갈등의 핵심으로 떠오르는 모양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이후 잇단 정상회담에서 '양자 동맹'을 강조했다. 지난 4월 미·일정상회담에서 주요 의제로 논의된 후 양국 정부와 양자연구센터가 긴밀히 협의하고 있고, 한미정상회담에서도 양자정보통신을 비롯한 양자 분야 협력이 깊이 있게 논의됐다.

한국도 뒤늦게나마 글로벌 양자 전쟁에 뛰어들었다. 5큐비트 양자컴퓨터 개발 프로젝트가 순항하고 있고, 민·관·학 협력 구도가 만들어지면서 기본적인 씨앗은 뿌려졌다. 삼성전자는 2017년부터 IBM 퀀텀(Q) 네트워크 파트너로 양자컴퓨터 활용 사례를 만들고 있고, 김정상 듀크대 교수가 창업한 아이온큐에 현대자동차와 함께 투자하기도 했다. 이동통신 3사는 양자 보안 기술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세계 1위 양자암호통신 기업 IDQ를 인수한 SK텔레콤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관련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국책연구기관 중에서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과 한국과학기술원(KIST), 국가보안기술연구소,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이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대학 중에서는 서울대와 카이스트, 성균관대가 돋보인다. 서울대는 양자 기술 관련 전공 교수 30명이 모여 양자과학기술포럼을 만들고 양자 연구와 생태계 저변 확대에 나섰다. 카이스트는 2018년부터 국내 최초 양자컴퓨팅 특화 연구센터 '인공지능양자컴퓨팅 ITRC'를 설립했고, 국내 대학 중 가장 많은 양자컴퓨팅 전공 교수(10명)를 확보했다. 성균관대는 향후 10년 발전 전략 주력 분야로 바이오와 인공지능(AI), 양자 기술을 내걸고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이 대학 양자정보연구지원센터는 국내 최초로 IBM Q 네트워크에 가입해 양자정보과학 생태계를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곳에서는 IBM 프리미엄 65큐비트 양자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다.

정부는 지난 4월 열린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에서 '2030년 양자 기술 4대 강국 진입'을 목표로 50큐비트급 한국형 양자컴퓨팅 시스템을 2024년까지 조기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인사이드 퀀텀 테크놀로지에 따르면 글로벌 양자컴퓨팅 시장은 2025년 7억8000만달러에서 2029년에는 26억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 <용어 설명>

▷ 양자컴퓨터 : 기존 컴퓨터는 0 아니면 1의 정보값으로 계산하지만, 양자컴퓨터는 두 상태가 서로 분리되지 않는 특성을 이용해 정보를 동시에 다량으로 처리한다.

[신찬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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