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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나눔동행] 수년째 홀몸노인에 무료 싱크대 선물한 인천 이연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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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위기로 해고 뒤 생활고…"남들에게 도움 되고 싶어 봉사 시작"

어려운 동네 이웃 30여곳 찾아 싱크대 설치…"앞으로도 이어갈 것"

연합뉴스

싱크대 합판 제작하는 이연훈(54)씨
촬영 최은지.



(인천=연합뉴스) 최은지 기자 = 아귀가 잘 맞지 않는 문짝, 녹슨 수도꼭지, 빛바랜 벽지…

인천 원도심인 동구 만석동 일대에는 지어진 지 오래돼 낡고 허름한 주택이 즐비하다.

14년째 이곳 만석동에서 작은 싱크대 공장을 운영하는 이연훈(54)씨는 7년 전인 2014년부터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봉사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동네 곳곳을 다니며 홀몸 노인이나 저소득층 가구의 낡은 싱크대를 무료로 교체해주는 일이다.

이씨가 처음 봉사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국에 불어닥친 정리해고와 도산 위기는 이씨 역시 비껴갈 수 없었다. 7년 넘게 다니던 농협에서 해고된 그는 아내와의 이혼으로 이중고를 겪었다.

한번 시작된 경제난이 쉽사리 끝나지 않자 이씨는 아픔을 딛고 새로운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평소 관심 있던 가구 제작 업계로 뛰어들었다.

지방에 내려가 일하며 받은 일당으로 원룸보다 작은 16㎡ 방에 가구 제작 사무실을 차렸다. 1년 넘게 이 사무실에서 먹고 자며 의식주를 해결했다.

어렵사리 배운 기술을 살려 2000년대 초 만석동 싱크대 공장에 취업한 이씨는 2007년께 이 공장의 사장이 됐다.

이씨는 "어렵게 취직해서 한참 일하다 보니 사장님이 혹시 직접 공장을 운영해볼 생각이 없느냐고 하더라"며 "당시 유일한 재산이었던 작은 아파트를 팔아 공장을 매입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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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하는 이연훈(54)씨
촬영 최은지.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데에는 주변의 작은 도움들이 컸다고 한다.

이씨는 "어려웠던 시간을 거쳐 공장을 운영하다 보니 그 옛날 작은 사무실에 집에서 쓰던 가구며 컴퓨터를 가져다주던 동창과 지인들이 떠올랐다"며 "이제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좀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누군가를 위하면 결국 나에게도 복으로 돌아온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다 보니 남에게 더 주고 더 봉사하자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고 덧붙였다.

이후 동네에 걸린 플래카드를 보고 우연히 가입한 새마을협의회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도 만났다.

당시 새마을협의회 회장이자 보일러공이었던 김경호씨와 의기투합해 어려운 이웃들의 싱크대나 보일러를 교체해주기로 한 것.

이씨가 그동안 새 싱크대를 선물한 가정은 30여곳에 달한다. 싱크대 하나를 설치하는 데도 4∼5시간이 꼬박 걸리기에 공장 일정을 조율해가며 봉사하고 있다.

싱크대를 시공하러 갔다가 시멘트벽이 그대로 노출된 반지하 주택을 보고 다른 봉사자들과 도배·장판 작업까지 해주고 온 적도 있다.

연합뉴스

싱크대 제작 중인 이연훈(54)씨
촬영 최은지.



이씨는 "어느 날은 고객 의뢰를 받고 직접 시공하러 갔는데 손님이 '우리 어머니 집에 싱크대 해주셨다면서요?'라며 말을 거셨다"며 "알고 보니 몇 개월 전 무료로 싱크대를 설치해드렸던 할머니의 자녀분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할머님도 휠체어를 타고 문 앞에 오셔서 다시 한번 정말 고맙다고 하시는데 우연히 그런 인사를 받으니 더욱 새로웠다"며 "내가 좋아서 하는 봉사지만 남들이 함께 좋아해 주니 기쁨이 배가 됐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 봉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는 이씨는 친한 지인들과 함께 지속적인 집수리 봉사단을 만드는 게 꿈이다.

이씨는 "12명 정도 있는 친목 모임이 있는데 도배사, 장판사, 페인트공, 벽지 대리점 사장이 다 있어 우리끼리면 집도 지을 수 있다고 농담하곤 한다"며 "이 친구들과 함께 체계적으로 집수리 봉사를 하려고 한다"고 웃음을 지었다.

chams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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