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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수술실CCTV 주역 이나금 "국민 90% 찬성, 당론채택해야" [김기자의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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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이나금 의료정의실천연대 대표 인터뷰
국민적 관심된 수술실CCTV법 공론화 주역
의료범죄多·기울어진 운동장··· CCTV가 답


파이낸셜뉴스

지난해 고 권대희씨 어머니 이나금씨가 권씨를 사망케 한 병원 의료진과의 소송과 관련해 시민 1002명의 탄원서를 받아 법원에 제출하는 모습. 이씨는 시민들의 관심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던 사건이 반전되자 이에 보답으로 시민사회단체를 설립해 활동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정의실천연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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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아들이 죽었다. 25살의 젊은 나이였다. 자신은 물론 다른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고 찾은 성형외과에서 변을 당했다. 콤플렉스였던 턱라인을 매만지는 안면윤곽수술을 받기 위해서였다. 제 딴엔 이곳저곳을 꼼꼼히 비교해 찾은 병원이었다. 병원장은 수술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진다고 약속했었다. 거짓이었다. 이른바 고 권대희 사건이다.

권씨 사망 후 5년이 지났다. 수술실CCTV를 통해 수술 중 권씨 집도의가 동시에 여러 건의 수술을 진행했고, 사전에 합의되지 않은 초짜의사가 수술을 이어받았으며, 간호조무사 홀로 권씨를 대상으로 의료행위를 하는 등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러나 권씨 사건은 5년째 1심이 진행 중이다.

그동안 이나금씨는 시민사회단체 대표가 되었다. 서울시장 후보들에게 공공의료원에 수술실CCTV 설치를 요구한 걸 시작으로, 유령수술 사건을 부적절하게 자문한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을 경찰에 고발했다. 유령수술을 과실이 아닌 고의범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제언했고, 서울아산병원에서 환자를 대상으로 엽기적인 성범죄를 벌인 인턴 의사를 고발했다. <본지 6월 17일. ‘[단독] 선배 제지에도 마취된 女환자 성기 만진 의사··· 시민단체가 고발’ 참조>

아들이 죽고 나서 5년이 흐르는 동안 이씨가 바라보는 세상은 전에 비할 바 없이 넓어졌다. 넓혀진 땅마다 아들 잃은 어머니의 피와 땀이 맺혀 있다. 벌써 80여일 동안 이씨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국회를 찾아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해엔 검찰청과 법원, 대학가 앞이었다. 그 전년도엔 역시 국회였다. 그 고생스런 시간들이 자식 잃은 어머니를 투사로 만들었다.

요즘 이씨는 하루에도 여러 통씩 정치권과 언론사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대부분 면담이나 인터뷰를 요청하는 것들로, 이씨는 이런 관심이 여적 낯설다고 했다. 지난 수년 간 이씨의 처절한 외침을 귀기울여 듣는 이들이 얼마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김기자의 토요일'에선 국민적 관심으로 떠오른 수술실CCTV 입법활동을 이어온 이나금 의료정의실천연대 대표를 인터뷰했다.

파이낸셜뉴스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8일 이나금 의료정의실천연대 대표를 찾아 수술실CCTV법의 조속한 통과를 약속했다. 현재 여권 다수 인사가 수술실CCTV법안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정의실천연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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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의료정의실천연대를 설립해 활발히 활동하고 계십니다. 유족으로 본인 사건만도 고생스러우실텐데, 다른 문제들까지 폭넓게 다루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의료범죄 발생 뒤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은 어느 한 명의 환자에게 이례적으로 생기는 일이 아닙니다. 처음 한 명의 의료사고 유족으로서 다른 피해자들을 만나며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깨달았습니다.

의료소송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초등학생이 격투가를 상대로 싸우는 꼴입니다. 의료소송에서 입증책임은 환자에게 있습니다. 모든 자료를 줘도 비전문가인 환자가 병원을 상대로 대항하기 어려운데, 구할 수 있는 자료조차 제한적이죠. 증거확보가 어렵고 의료진 증언도 번복되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보통은 의료범죄가 의심돼도 환자나 유족들이 병원과 합의를 봅니다. 소송과정과 그 결과가 두렵기 때문이죠. 그렇게 되면 어떤 선례도 남지 않아 다음 피해를 보는 사람은 대항할 길이 막힙니다. 자기 사건을 알리고 비슷한 피해를 입은 다른 사람들과 연대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것만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라는 생각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들이 있다고 보시나요?

▲증거가 없습니다. 환자나 유족이 구할 수 있는 자료라곤 의무기록지와 의료진 증언 정도가 고작입니다. 그런데 의무기록지는 조작되기 일쑤입니다. 권대희 사건에서도 사고 다음날 의무기록지를 확보했음에도 허위기재 된 흔적이 많았습니다. 어렵게 구한 수술실CCTV 영상과 대조하니 문제는 더욱 선명했죠.

의료진 증언도 마찬가지입니다. 피해자들이 의료진과 나눈 말을 녹취했더라도 의료진들이 법정에서까지 진술을 유지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녹취된 발언의 정당성을 피해자들이 다시 입증해야 하고 결국 실패해 증거능력을 잃는 사례를 많이 보았습니다. 의무기록지는 조작되고 진술은 번복된다면 사실상 증거라고 할 만한 게 없는 꼴입니다. 객관적 증거인 수술실CCTV가 필요한 이유지요.

-의료계 단체들은 수술실CCTV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의료범죄가 일상화돼 있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며칠이 멀다 하고 병원에서 무자격자가 유령수술을 해 환자가 다치고 죽었다는 기사가 나오고 있습니다. 유령수술 외에도 의사가 환자를 대상으로 성범죄를 범한 사례도 잇따릅니다. 수술실 안에서 드러난 범죄만도 이토록 많은데 CCTV를 달아선 안 된다는 주장엔 설득력이 없습니다.

CCTV가 없기에 고의성이 다분한 의료범죄도 정상적인 의료행위 중의 과실로만 처벌을 받고 있습니다. 과실이기에 제대로 처벌도 받지 않으니 사람이 죽어도 무서워하지 않고 야만적인 수술을 하는 의사들이 많습니다.

보건당국조차 실태파악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수술실에 CCTV를 달아 마취된 환자와 선의의 의사들을 악의적인 범죄의사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때입니다.

-의사협회와 면담을 신청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전하실 계획인지요.

▲암수화된 환자 대상 범죄가 만연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환자를 위하며 참 의료를 펼치는 의사분들이 더욱 많다고 생각합니다. 의사협회는 수술실CCTV법에 반대하고 있지만, 여전히 설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면담을 청했습니다.

수술실CCTV는 의사들을 위한 법이기도 합니다. 실추된 의료계의 명예를 끌어올리고 의사에 대한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방안입니다. 이미 적지 않은 의료인 분들께서 수술실에 CCTV를 달아도 업무수행에 전혀 지장이 없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범죄예방의 이익은 크고 피해는 적은데 수술실에 CCTV를 달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정치권에서 수술실CCTV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두관 의원, 김남국 의원 등등 며칠 동안 많은 국회의원분들이 연락을 주시고 1인시위 현장에 방문해주셨습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님도 피해자 간담회를 여신다고 하고 많은 의원님들이 기자회견 등 입장을 밝혀주고 계십니다.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다만 걱정되는 것도 있습니다. 수술실CCTV법은 어제오늘 나온 법이 아닙니다. 이미 국회에서 여러 차례나 나왔다 폐기됐습니다. 제대로 된 논의도 없었습니다. 여당이 180석을 차지한 이번 국회에서도 1년 전 발의됐지만 최근에야 제대로 주목받았습니다. 여당이 의지가 있다면 진작 통과될 수 있었고, 지금이라도 당론으로 채택한다면 무리 없이 통과될 수 있을 겁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님들께서 저에게 보여주신 관심만큼 법안 채택에 노력을 기울여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께도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수술실CCTV는 이미 경기도와 전라북도 공공의료원과 몇몇 민간병원에서 수년 동안 성공적으로 운영된 법안입니다.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의료범죄에 무고한 환자들이 목숨을 잃고 있는 지금, 법안을 통과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 발의됐고 논의할 시간도 충분했던 법안에 대해 더 논의하자는 주장이 타당한지요. 야당 대표로서 보다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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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와 전라북도는 지난 수년 간 도내 공공의료원에서 수술실CCTV를 설치해 운영해왔다. 이에 대한 의료소비자들의 긍정적 반응에도 수술실CCTV 운영을 의무화하는 법이 없어 민간병원까진 확대되지 못하고 있다. 경기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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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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