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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소비를 놀이처럼"…'가상'에 열광하는 소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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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김갑생할머니김 /사진제공=11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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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유통] 요즘 가장 인기 있는 광고모델을 뽑는다면 개그맨 이창호를 꼽을 수 있다. 사람들은 그를 월클돌 '매드몬스터'의 '제이호', 한사랑산악회 '이택조', 시가총액 500조에 달하는 코스피 시가총액 1위 초대형 기업 김갑생할머니김 미래전략실 전략본부장 '이호창'으로 부른다. 모두 코미디언 이창호의 부캐(부캐릭터·또 다른 자아를 뜻하는 신조어)로 유튜브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창호의 수많은 부캐는 유통업계에서 서로 찾는 블루칩으로 떠오르고 있다. 롯데제과는 지난 1일 매드몬스터를 꼬깔콘의 새 광고 모델로 기용했다고 밝히며 매드몬스터의 팬클럽인 '포켓몬스터'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택조가 회원으로 있는 한사랑산악회는 롯데렌터카의 온라인 광고를 찍었고 각종 라이브커머스 방송에도 출연했다. 특히 이호창 미래전략본부장의 활약은 재벌답게 돋보인다. 매일유업의 바리스타룰스, 원진성형외과, 더블유 바이 윈저 등의 홍보영상을 찍었다. 유명 김 제조업체인 성경식품은 '김갑생할머니김'을 실제로 출시했고 매진 열풍을 거두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이창호의 부캐 외에도 다른 부캐들도 인기다. 유재석의 부캐 유산슬은 지난해 4월 빙그레 아이스크림 '슈퍼콘'의 모델로 발탁돼 트로트 노래를 부르며 광고를 찍었고 3월에는 '비빔면 장인 배홍동 유씨'라는 새로운 부캐로 농심 신제품 '배홍동 비빔면' 광고 모델로 발탁됐다. 개그맨 김해준도 카페 사장 부캐인 '최준'으로 CU, 서브웨이, 롯데하이마트 등의 광고에 등장했다.

부캐 모델의 인기는 기존 광고 모델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듯해 보인다. 많은 광고들은 지금까지 진짜를 보여주기 위해서 노력해왔다. 치약, 기능성 식품 등의 광고에는 의사를 출연시키고, 화장품 광고에는 피부가 좋은 연예인을 등장시켰다. 마치 치과의사도 신뢰하고 쓰는 치약, 피부 좋은 배우도 쓰고 있는 화장품의 느낌을 주기 위해서 노력했다. 하지만 부캐는 다르다. 진실성은 배제한 채 모델이 연기하고 있다는 점을 전면에 내세운다. 광고에 등장하는 부캐가 실제하지 않은 인물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는 광고가 가상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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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페토에 구현된 `구찌 빌라(Gucci Villa)`내 정원에서 아바타들이 구찌 제품을 입고 있다 /사진출처=네이버제트 제공


가상에 집중하는 유통업계의 모습은 '메타버스(Metaverse)'라는 새로운 세상에서도 찾을 수 있다. 유통업계는 앞다투어 메타버스 세상에 진출하고 있다. 메타버스는 가공, 추상이라는 뜻의 '메타(Meta)'와 현실 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현실과 3차원 가상세계를 혼합한 공간을 말한다.

지난 16일에 롯데하이마트는 닌텐도의 인기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에 자체브랜드(PB) 이름을 딴 '하이메이드(HIMADE) 섬'을 개설했다. 하이메이드 섬에는 '브랜드 포토존'과 가상으로 전시된 하이메이드 상품을 둘러볼 수 있는 'PR존', 게임 이용자들과 소통하고 싶은 내용을 공유할 수 있는 '마을회관' 등이 마련됐다. 편의점 CU도 오는 8월 현실과 3차원 가상세계를 혼합한 메타버스 콘텐츠 '제페토'에 가상현실 편의점을 열기로 했다. 구찌, 나이키, MLB 등 주요 글로벌 브랜드들도 제페토에 입점하며 마케팅 활동을 선보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세계 메타버스시장 규모는 지난해 460억달러에서 2025년엔 2800억달러로 6배 넘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메타버스가 엄청난 규모로 성장하는 이유는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명품기업 구찌는 지난달 말 메타버스 플랫폼인 '로블록스'에서 디오니서스 디지털 전용 가방을 4115달러(약 465만원)에 판매했다. 국내에서는 이와 같은 고가는 아니지만 제페토 안에서 구찌, 나이키, 퓨마 등의 제품이 500~4000원대의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소비자들은 가상현실이라는 것을 알지만 기꺼이 상품을 사는 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소비는 실체에 기반을 두고 존재했다. 하지만 현대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소비는 프랑스의 미디어 비평가 장 보드리야르가 말한 것처럼 기호화됐다. 상품의 실질적인 기능성과 효용성과 무관한 광고 이미지가 범람하게 되고 소비자는 상품이 아닌 상품이 지닌 기호의 가치를 소비하게 됐다. 보드리야르는 "현대 사회에서 소비가 물질적인 가치보다는 문화적·기호적 만족을 추구하는 경향성이 강해진다"고 말했다.

물질적인 가치에 기반을 둔 전통적인 소비와 부캐 광고 모델 기용, 메타버스에서의 상품 구매는 서로 맞지 않는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하루 종일 광고 이미지와 접촉해온 MZ세대는 다르다. 진실성과 멀어보이는 부캐 광고 모델이 등장하는 제품을 사고, 실제로는 쓸 수 없는 메타버스에서의 상품을 구매하는 것은 그들에게 자연스러운 행위다. 현대자본주의 속에서 자라온 MZ세대에게 소비는 꼭 상품의 실질적인 가치나 제품과 관련된 사실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MZ세대에게 제품의 실질적인 가치가 아닌 기호를 소비하는 것은 이상한 현상이 아니다.

MZ세대가 소비를 놀이로 보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주용완 전 한국인터넷진흥원 본부장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주역 MZ세대 분석 및 제언' 리포트에서 "소비 자체를 일종의 게임처럼 열광하면서 즐기는 것을 MZ세대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부캐 모델이 광고하는 제품을 사거나 메타버스에서 상품을 구매하는 행위 자체를 오락으로 소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강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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