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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언제든 편하게 밥 먹으러 와! 삼촌이 기다리고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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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최근 2400호점 돌파한 ‘선한 영향력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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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서 ‘진짜 파스타’를 운영하는 오인태 사장이 ‘쉬림프 토마토 파스타’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이 가게에서는 아동 급식 카드를 가진 아이에게 전 메뉴를 무상으로 제공한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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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웃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주인 아줌마가 되고 싶다.”

경기도 양주시 옥정동에 있는 ‘석관동 떡볶이’ 주인 정안진(40)씨는 어릴 적 ‘우동 한 그릇’을 읽고 이런 다짐을 했다. 우동집을 찾은 가난한 세 모자(母子)가 송구한 표정으로 우동 한 그릇을 주문하고, 주인은 행여나 그들의 마음이 다칠까 티 나지 않게 반인분의 우동을 더 담아 낸다는 이야기.

시간이 흘러 정씨는 초등학교 1·3·5학년 아이를 둔 엄마이자, 떡볶이집 주인이 됐다. 그가 운영하는 ‘석관동 떡볶이’ 옥정점에선 경기도 아동 급식 카드(G 드림카드)를 가진 아이에게 동행 1인 포함 1인 1메뉴를 무료로 제공한다. 어릴 적 자신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는 “요즘 세상에 ‘밥 못 먹는 아이가 있을까’ 생각했는데, 인근에서 편의점을 하는 친구에게 ‘G 드림카드’를 가진 아이들이 자주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정씨는 “편의점 도시락도 좋지만 따뜻한 우동· 돈가스·떡볶이 등 우리 가게에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이 많으니, 언제든지 와서 편하게 먹고 갔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옆집 아줌마가 밥 한 끼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며 웃었다. 동행 1인까지 무료인 이유는 혼자 와서 먹을 아이가 뻘쭘해할 것을 걱정해서다.

소설 ‘내 친구는 외계인’에는 아동 급식 카드를 이용하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형, 나 이제 김밥왕국 안 갈래.” “왜?” “계산하는데 어떤 아줌마가 어머, 얘는 무슨 애가 벌써 카드를 긁고 다니네! 이랬다. 그랬더니 주인 아줌마가 공짜 밥! 나라에서 주는 거! 이러면서 웃었어.”

‘아동 급식 카드’는 끼니를 거를 우려가 있는 18세 미만 아동·청소년의 식비를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2020년 기준 전국 30만 8440명이 지원 대상이다. 그러나 사용할 수 있는 가맹점이 많지 않은 데다, 지자체별로 이름과 지원금이 달라 혼선을 빚는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경기도 ‘G 드림카드’는 1끼 7000원을 지원한다. 서울 ‘꿈나무 카드’는 대부분의 구(區)가 1끼 6000원이지만, 예산에 따라 강남구(8000원)와 서초·종로구(9000원)는 더 지원한다. 아이 입장에서는 이 식당이 카드를 받아주는 곳인지, 금액에 맞는 메뉴가 있는지를 매번 살펴야 한다. 카드 사용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때때로 찍히는 ‘가난’에 대한 낙인은 배고픔보다 더 큰 상처가 된다.

이를 위해 정씨 같은 사장님들이 모인 곳이 ‘선한 영향력 가게’다. 아동 급식 카드를 소지한 아이들에게 금액 상관없이 따뜻한 밥 한 끼 먹이겠다는 취지다. 식당이 아니더라도 안경점, 미용실 등 물품이나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가게도 있다. 지난 17일 기준 이 선한 영향력 가게가 전국 2420호점을 돌파했다. 2019년 7월 선한 영향력 가게 1호점이 생긴 지 약 2년 만이다.

◇진짜 파스타의 특별한 VIP

‘VIP 고객님들과 VIP 예정이신 고객님들께서는 휴식 시간이거나 마지막 주문 시간이 지났더라도 기다리지 마시고 바로 입장 부탁드리겠습니다.’

지난 17일 방문한 서울 마포구 상수동 ‘진짜 파스타’에는 이런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VIP들이 지켜야 할 5가지 계명도 있다. 1. 가게에 들어올 때 쭈뼛쭈뼛 눈치 보면 혼난다. 2. 뭐든 금액 상관없이 먹고 싶은 거 얘기해 줘. 3. 매주 월요일은 쉬니까 미리 알고 있으면 좋겠구나. 4. 다 먹고 나갈 때 카드 한 번, 미소 한 번 보여주고 갔으면 좋겠다. 5. 매일 봐도 괜찮으니, 부담 갖지 말고 웃으며 자주 보자.

눈치챘겠지만, 이곳의 VIP는 아동 급식 지원 카드 소지자. ‘진짜 파스타’는 ‘선한 영향력 가게’가 만들어진 계기이자, 선한 영향력 가게 1호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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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석관동 떡볶이 옥정점은 아동 급식 카드 소지자에게 동반1인 포함 1인 1메뉴를 무상으로 제공한다. 가게 출입문에 '선한 영향력 가게' 로고가 붙어있다. /정안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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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파스타 오인태(36) 사장은 2019년 초 구청에 갔다가 아동 급식 지원 사업을 알게 됐다. 당시만 해도 서울에서 꿈나무 카드를 받아주는 식당이 드물어, 아이들이 대개 편의점과 빵집을 전전하던 상황. 실제 지난해 서울시의 꿈나무 카드 지원 예산 결제액을 보면, 편의점 사용이 219억여원(약 59.7%)으로 가장 많다. 한식·중식 등 일반 식당은 91억여원(24.8%), 제과점 결제액은 56억여원(15.5%)이다.

오씨가 꿈나무 카드 가맹점으로 등록하려고 하니, 일반 결제 단말기(포스)가 아닌 별도의 단말기가 필요했다. 써야 하는 서류도 많고, 추후 정산받는 일도 복잡했다. 오씨는 결국 가맹점 등록을 포기했다. 대신 꿈나무 카드를 소지한 아이에게 아예 돈을 안 받기로 했다.

“당시 서울시 지원금이 5000원인데, 이 돈으로는 아이들이 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거의 없겠더군요. 금액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이 눈치 보지 않고 갈 수 있는 분위기도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처음엔 아이들이 왜 눈치를 보는지 몰랐습니다. 일부 가게에서 바쁜 시간대에는 오지 말라고 하거나 어떤 품목은 안 된다고 하는 등 거절의 경험이 아이들을 쭈뼛거리고 주눅이 들게 만들더군요.”

오 사장은 ‘하루에 몇 명의 아이들이 가게를 찾느냐’는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고 했다. “한번은 방송에서 아이들이 하루에 몇 명 온다고 얘기했더니, 1~2주간 아이들 발길이 뚝 끊겼어요. 아이들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많이 가서 이 가게에 폐를 끼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제는 아이들이 얼마나 찾아오는지 세보지도 않습니다.”

대신 가끔 온라인 게시판을 통해 아이들의 반응을 마주한다. 얼마 전에도 오씨가 출연한 유튜브 방송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작년 1년 동안 진짜 파스타에서 신세 졌던 학생입니다. 학교 점심 먹고 저녁에는 먹을 것이 별로 없어서 매일같이 갔었는데, 정말 친절하셨고 눈치 하나 주는 것 없이 다정하셨습니다. 정말 작년 한 해 동안 너무 감사했습니다.”

◇일부 어른이 악용하고, 악플도

오씨 가게 소식이 온라인 커뮤니티상에 전해지면서, “나도 하고 싶다”는 문의가 줄을 이었다. ‘선한 영향력 가게’의 시작이다. 약 2년 만에 2400개가 넘는 가게가 동참했다. 온라인상에 ‘선한 영향력 가게(선한영향력가게.com)’ 홈페이지도 만들어, 아이들이 누구나 쉽게 주변 선한 영향력 가게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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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서구에 있는 홈세이브 마트 정육점은 아동 급식 카드를 소지한 아이들에게 1주일에 4만원 내외의 고기를 무료 제공한다. /유병학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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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서구 신갈마로에 있는 홈세이브 마트 정육점도 급식 카드 소지 아동을 VVIP로 모신다. 정육점을 하기 전, 자신도 사업이 망해 아이들 밥 굶길 뻔한 적 있었다는 유병학(34) 사장이 운영하는 곳. 아이들이 처음에만 급식 카드를 보여주면, 이후 자체 제작한 VVIP 쿠폰을 나눠준다. 이 쿠폰이 있는 아이에게는 1주일에 4만원 내외의 고기를 무상으로 제공한다.

유씨는 “아이들이 ‘아이 누리 카드(대전 아동 급식 카드)’라고 적힌 카드 보여주는 것을 불편해하는 경우가 많다”며 “아이들의 불편을 최소화하려 쿠폰을 만들었다. 아이 얼굴을 익혀서 몇 번 지나면 아예 이 쿠폰조차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대전 지역의 경우 특히 가맹점이 부족해 아이들이 쓴 금액의 70% 가까이가 편의점에 집중된다고 한다. 한참 커 나가야 할 성장기 아이들을 언제까지 편의점으로 내몰아야 하나. 아이들이 편하게 우리 가게 와서 ‘고기 파티’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선한 영향력 가게는 오는 7월 중순 출범을 목표로 사단 법인을 준비 중이다. 저소득층 아동을 위한 기부·후원을 더욱 체계적이고 투명하게 하면서, 일부 악용하는 사례 등을 막으려는 목적이다. 오인태 사장은 “일부 식당에서는 어른들이 아동 급식 카드를 가지고 와서 음식을 마구 시키고 밥값을 내지 않겠다는 일도 있었다”며 “애들 팔아 장사하려는 것 아니냐는 악플에도 시달린다”고 했다.

선한 영향력 가게와 함께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돈쭐’이란 신조어도 생겼다. 돈과 혼쭐을 합친 말. ‘혼쭐이 나다’라는 원래의 부정적 의미와 달리, 정의로운 일을 하는 가게의 물건을 팔아주자는 의미로 사용된다. ‘진짜 파스타'도 한때 돈쭐이 났다.

혹 ‘선한 영향력 가게’의 인기에 편승하려는 사장님들은 없을까. 오 사장은 “나 역시도 혹시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직은 한 분도 안 계셨다”고 했다. “사장님들이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가 ‘아이들이 안 와요’ ‘아이들 기다리고 있어요’ 입니다. 아이들이 찾아와서 맛있게 밥 한 끼 먹고 나면, 다들 너무 기쁘다고 전화 와요. 그래도 혹시 홈페이지 정보와 다른 가게가 있다면 언제든지 말해주세요!”

[남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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