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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하루 2만마리…‘눈 깜짝할 새’ 사라지는 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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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스티커로 충돌 막자”…새 보호 앞장 ‘새친구 소풍’


한겨레

12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 역북동의 한 유리 방음벽에 ‘새친구들’이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가로 10㎝, 세로 5㎝ 간격으로 스티커를 붙이면 조류 충돌이 90% 이상 줄어든다고 한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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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 역북동의 한 아파트단지 진입로 앞에 박새 한마리가 몸이 굳은 채 떨어져 있었습니다. 몸길이 10㎝가 채 안 되는 개체로, 어른이 되기도 전에 죽었습니다. 이 도로변에서 사체로 발견된 야생 조류는 이날만 네마리. 박새, 참새, 까치와 함께 비교적 드물게 관찰되는 쇠딱따구리도 보였습니다. 아파트 단지와 뒷산 사이에 서 있는 7m 이상 높이의 유리 방음벽이 떼죽음의 원인이라고 합니다. 새들이 투명한 유리를 장애물로 알아차리지 못해 부딪쳐 죽는 ‘버드 스트라이크’(bird strike·새 충돌)가 일어난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사회부 사건팀에서 각종 문제를 가리지 않고 취재하는 천호성입니다. 지난 주말 용인에 다녀온 건 조류 충돌을 막는 시민들의 행사인 ‘새친구 소풍’에 참여하기 위해서였어요. 원래는 취재하겠다는 계획 없이 주말 나들이를 겸해 신청한 행사였습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본 조류 충돌의 심각성이 짐작보다 훨씬 컸습니다. 또 새들을 지키기 위해 나선 시민들의 정성에 마음이 뭉클해져서 지난 14일 날마다 새 2만마리 죽이는 유리벽과 스티커로 생명 살리는 ‘새친구들’의 이야기를 <한겨레> 지면에 소개했습니다. 오늘은 ‘새친구들’에 대해 못다 한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환경부는 전국에서 하루 600마리 이상의 새들이 방음벽에 부딪쳐 목숨을 잃는다고 추산합니다. 건물 유리벽 때문에 죽는 새들까지 합하면 2만마리에 달합니다. 4초마다 버드 스트라이크가 일어나는 셈이니 ‘눈 깜짝할 새’ 한마리가 목숨을 잃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새친구 소풍은 녹색연합이 2019년부터 전국 각지에서 이어온 행사입니다. 새친구들은 새 충돌이 잦은 것으로 관찰된 방음벽을 찾아가 손톱만한 하얀 스티커를 붙입니다. 관할 구청의 허가를 얻어 진행된 이날 행사에는 30명 정도의 시민이 함께했는데요. 근처 아파트에서 어린 딸들 손을 잡고 온 어머니와 데이트를 겸해 나온 젊은 커플, 멀리 대전에서 온 고등학생까지 다양한 참가자들이 보였어요. 이미 여러차례 참여한 듯 팔토시에 밀짚모자까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온 베테랑 새친구들도 여럿 눈에 띄었습니다. 행사 공고가 난 뒤 사흘이면 인원이 꽉 차는 녹색연합 ‘인기 행사’라는 말이 실감이 가더군요.

새친구들의 작업은 크게 세 과정으로 나뉘어 이뤄집니다. 우선 한 조가 손걸레로 유리창 표면을 깨끗이 닦아요. 유리 표면에 먼지나 이물질이 있으면 스티커를 붙여도 쉽게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다음 조는 길이 1m 정도 되는 막대자와 사인펜을 들고 일정 간격으로 유리 위에 점을 찍습니다. 마지막 조가 사인펜 칠해진 자리마다 스티커를 붙이면 작업이 끝납니다. 방음벽 높이가 상당해서 시민들은 밑에서 둘째 단의 유리까지만 사다리를 딛고 올라가 작업하고, 나머지 단은 전문업체가 사다리차를 가져와 마무리했어요.

여기에는 ‘5×10 원칙’이라는, 단순하지만 철저한 규칙이 있습니다. 가로 10㎝, 세로 5㎝ 간격으로 스티커를 붙여야 한다는 것인데요. 이 넓이보다 좁은 공간으로는 통과하지 않는 새들의 습성에서 만들어진 규칙입니다. 새끼손톱 정도 크기인 스티커는 사람 눈에는 쉽게 띄지 않아요. 하지만 이 점들 덕에 새들은 투명 유리를 허공이 아닌 장애물로 인식합니다. 앞서 행사가 열린 충남 서산시의 한 지방도변에서는 스티커가 붙은 뒤 방음벽에 부딪치는 새들의 수가 10분의 1 이하로 줄었을 정도로 효과가 크다고 합니다.

잠시 의문이 드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시민들이 무더위에 고생하는 것보다는 방음벽 만들 때부터 격자무늬를 넣으면 편하지 않나?’ 맞습니다. 이날 녹색연합이 준비한 스티커 가격이 유리 두장 덮는 분량에 2만5천원이라고 하니, ‘두번 고생’하며 드는 사회적 비용이 상당합니다. 지금도 몇몇 지방자치단체가 통유리 빌딩 등에 맹금류 모양 스티커를 부착하도록 하고 있기는 하지만, 새들이 이걸 ‘진짜 독수리’로 인식하지 않아 효과가 크지 않다고 합니다. 새친구들의 활동도 물론 중요하지만, 새 충돌을 막는 방식의 시설물 설계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전국 건물 5채 중 1채꼴인 공공기관에 격자무늬 유리창을 의무화하기만 해도 상당한 수의 새들을 살릴 수 있을 겁니다.

이날 2시간에 걸친 작업으로 80m 길이 방음벽에 스티커가 채워졌어요. ‘작은 생명들을 위해 주말 한때를 기꺼이 내놓는 이웃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하는 생각에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새로운 습관도 하나 생겼습니다. 출근길 새소리에 귀 기울여보는 것입니다. 저와 같은 시간에 둥지를 나서 도로 양쪽을 분주히 오갈 새들을 떠올리며, 이들을 위해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새친구들의 활동은 앞으로 서울 등에서도 계속된다고 합니다. 녹색연합 누리집(greenkorea.org) 등을 통해 신청할 수 있어요. 새친구로 현장에서 뵈면 반갑게 인사드리겠습니다.
한겨레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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