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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리기 전에 생각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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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삶의 창] 이명석 ㅣ 문화비평가

공원에 들어서는데 작은 아이가 빽 하고 소리치며 뛰어간다. 화단을 돌보던 할아버지가 말한다. “왜 약한 애를 놀리니?” 아이들끼리 눈치를 보다 하나가 말한다. “센 애를 놀릴 순 없잖아요.” 할아버지는 어이없는 듯 웃고, 아이들은 대단한 재치로 맞받아친 것처럼 깔깔댄다. 담벼락을 돌아가니 작은 아이가 쪼그려 앉아 그 웃음소리를 듣고 있다. 어쩌면 영원히 오늘을 잊지 못할 수도 있겠다.

우리는 평생 놀리거나 놀림당하며 살아간다. 배 아파 수박을 못 먹는 아이 앞에서 깐죽대고, 남의 버릇을 흉내 내며 약 올리고, 함정을 파서 속인 뒤 메롱 하고, 그런 일에 속는 바보라며 우롱하고, 잊을 만하면 그 일을 꺼내 조롱한다. 가족, 친구, 허물없이 가까워진 동료들은 서로 놀리지 못해 안달이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별명들은 그런 놀림의 꼬리표인 경우가 많다.

조롱에는 적대적 조롱과 우호적 조롱이 있다. 철천지원수 같은 적국, 화해할 수 없는 정치적 반대파, 필생의 라이벌이 된 상대 팀 사이의 조롱은 전쟁을 방불케 한다. 인터넷 시대엔 무기도 강력해져, 자칭 논객이라는 직업적 조롱꾼들이 넘쳐나고, 미디어는 조롱을 퍼 나르는 산업이 되어가고 있다. 무리 지어 다니며 좌표를 찍고 조리돌림 하는 일을 스포츠처럼 여기기도 한다. 이렇게 적대적 조롱이 과잉의 상태가 되니, 가까운 사이의 우호적 조롱도 점점 강도를 더해간다.

놀림에도 물론 순기능이 있다. 누군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호되게 야단치거나 딱딱하게 충고하지 않고 가볍게 놀리면서 스스로 깨닫게 할 수도 있다. 누구든 놀림받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간 경험들도 있으리라. 그리고 어리고 약한 누군가를 ‘귀여워하며’ 놀리고, 그렇게 만들어낸 웃음으로 집단의 유대감을 키워가기도 한다. 소위 ‘막내’들의 역할이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들이 단지 구실에 불과한 경우가, 내 생각엔 아주 많다.

“센 애를 놀릴 순 없잖아요.” 공원의 놀림대장은 비정한 현실을 잘 알고 있다. 형은 동생을, 어른은 아이를, 상사는 부하를 쉽게 놀린다. 반대는 어렵다. 어릴 때 옆집 형이 맥락도 없이 나를 놀렸다. 아무리 하지 말라고 해도 막을 수 없었고, 나는 집에 돌아가 부들부들 떨다 문구용 칼을 들고나왔다. 그런데 그 형이 술 취한 아버지에게 트집이 잡혀 야단맞고 있었다. 그렇게 자신이 강자에게 당한 상처를 약자를 놀리며 해소하고자 한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엔 놀림당한 기억만 있지, 누굴 놀린 기억이 없다. 내가 막내이고 힘없는 아이여서 그랬나 했다. 하지만 놀린 사람은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언젠가 회사의 회식 자리에 초대되어 갔다. 손님들의 어색함을 풀고자 상사가 나섰는데, 대뜸 직원들의 땀 찬 겨드랑이, 빈약한 학력, 출산 후 감퇴한 기억력 따위를 놀려댔다. 직원들은 하하하 웃었지만 손님들은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권력자들은 스스로를 유머 감각 넘치는 사람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많은 경우 놀림은 재치보다는 힘을 확인하는 수단이다.

재미있고도 불쾌하지 않은 놀림도 가능할까? 나는 아이돌 팬들이 유튜브에 올리는 ‘서로 놀리지 않으면 죽는 병에 걸린 그룹’ 같은 영상에서 좋은 예들을 본다. 몇가지 원칙은 이렇다. 놀림의 공수는 번갈아 이루어져야 한다. 낮은 서열이 높은 서열을 놀리는 게 편하다. 단짠단짠, 놀림과 애정 표현은 번갈아 이루어져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상대가 진짜 아파하는 일은 놀리지 않는다. “에이, 농담인데”는 필요 없다. 실패한 놀림은 곧바로 사과한다. 상황을 무마하려고 새로운 놀림을 시작하면 재앙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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