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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내 실업급여 고갈된다면… 텅 빈 곳간과 폭탄 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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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구 기자]

고용보험기금이 말라가고 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실업률이 치솟으면서 실업급여 지급액이 늘어난 탓이다. 문제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세금으로 적자를 보전하는 건 형평성 문제가 있다. 고용보험료를 올리는 것도 쉽지 않다. 사실상 증세라는 반발에 부딪힐 수 있어서다. 고용보험기금의 문제를 다음 정권에 떠넘기는 '폭탄 돌리기가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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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와 사용자가 낸 돈으로 만들어지는 고용보험기금이 고갈될 위기에 처했다.[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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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만명 노동자의 사회안전망인 고용보험에 빨간불이 켜졌다. 코로나19로 노동계가 직격탄을 맞으면서 실업급여 지출이 크게 늘어난 탓이다. 고용보험은 4대 사회보험 중 하나다. 지난 5월 기준 고용보험 가입자는 1426만4000명이다. 5월 취업자 수가 2693만명이라는 걸 감안하면 노동자의 52.9%가 가입한 보험이다.

노동자와 사용자가 낸 고용보험료는 실업급여(구직급여), 각종 고용장려금, 고용유지지원금, 육아휴직급여 등에 쓰인다.[※참고: 실업급여는 고용보험에 가입한 노동자가 실직 후 재취업 기간 겪을 수 있는 생계불안을 줄이기 위해 일정기간 급여를 지급하는 제도로 1995년 도입됐다. 현재 고용보험료율은 1.6%다. 노동자가 월급에서 0.8%를 내고, 사용자가 나머지 0.8%를 부담한다.]

고용보험기금의 주된 사용처는 직장을 잃은 실업자에게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것이다. 문제는 실업급여 지급액이 최근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5년 5조5016억원이었던 실업급여 지급액은 2019년 9조8601억원으로 늘어났다.

지난해 터진 코로나19 사태는 증가세에 기름을 부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경기가 침체하자 실업률이 치솟으면서 실업급여를 신청하는 실직자가 크게 증가한 탓이다. 실제로 지난해 4%대로 상승한 실업률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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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에는 실업률이 5.7%까지 치솟기도 했다. 당연히 실업급여 지급액도 늘어났다. 그 결과, 정부는 지난해 고용보험 지출액 20조4653억원 중 67.8%에 해당하는 13조8937억원을 실업급여를 주는 데 사용했다. 2015년 5조5016억원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이런 추세는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다.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실직자에게 지급한 실업급여는 5조5582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2015년 한해 지급한 금액(5조5016억원)보다 많다. 지난해 4월 사상 처음으로 1조원(1조286억원)을 넘어선 실업급여 지급액은 지난 2월부터는 4개월 연속 1조원대를 웃돌고 있다.

실업급여 지급액이 늘어난 데는 정부의 실업급여 확대정책도 한몫했다. 정부는 2019년 10월 고용보험료율을 기존 1.3%에서 1.6%로 0.3%포인트 인상하면서 실업급여의 보장성을 강화했다. 실업급여 지급 수준을 평균임금의 50%에서 60%로 올렸고, 지급기간은 기존 90~240일에서 120~270일로 늘렸다.

하지만 이 정책은 고용보험기금 고갈이라는 문제를 낳았다. 고용보험 수입액에서 지출액을 뺀 재정수지는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2012년부터 2017년까지 흑자를 기록했던 고용보험 재정수지는 2018년 8082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

2019년엔 적자폭이 2조877억원으로 두배 이상 커졌다. 코로나19로 몸살을 앓은 지난해 적자는 6295억원(수입액 19조8358억원·지출액 20조4653억원)을 기록했다. 숫자만 보고 적자폭이 크게 줄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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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고용보험 수입액 19조8358억원 중 고용보험료로 거둬들인 수입은 13조9859억원이었다. 나머지 5조8499억원은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지원한 돈(1조1502억원)과 정부에서 빌린 돈(4조6997억원)이다. 이를 빼면 적자는 6조4794억원으로 커진다. 지난해 고용보험기금의 규모가 7조277억원이라는 걸 감안하면 적립금은 이미 바닥을 드러낸 셈이다. 이렇게 고용보험기금이 말라가자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정부는 그럴 때마다 "고용보험기금은 다른 사회보험과는 달리 경기변동에 따라 지출구조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며 "고용위기 시엔 지출이 증가하고 경기가 회복되면 재정수지가 개선된다"고 밝혔다. 그 근거는 금융위기 당시 5년간(2007~ 2011년) 적자였던 고용보험 재정지수가 이후 경기가 회복하면서 2012년부터 2017년까지 흑자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바닥 드러낸 고용보험기금

하지만 이는 지나친 낙관론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지만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고용보험료를 책임지는 노동자의 수가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인구는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감소세로 돌아섰다.

여기에 빠른 인구 노령화까지 나타나고 있다. 노동자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통계청의 '2019년 장래인구특별추계를 반영한 내외국인 인구전망 2017~2040'에 따르면 생산가능인구는 지난해 3579만명에서 2030년 3395만명으로 감소하고, 2040년엔 2730만명으로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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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보험기금 적자를 메우기 위해선 보험료를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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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부담하는 고용보험료가 늘어나긴 힘든 상황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2025년까지 플랫폼 종사자·일용직 노종자 등에까지 고용보험을 적용하겠다는 정부의 '전 국민 고용보험' 정책도 고용보험기금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경제학) 교수는 "다른 노동자에 비해 퇴사와 이직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직업군까지 고용보험을 확대하면 고용보험 재정은 더 악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를 메우기 위해서는 다른 노동자의 부담을 늘리거나 재정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고용보험기금의 고갈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의 재정을 투입해 손실을 보전하거나 고용보험료를 인상해 적자를 메우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둘 중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는 점이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나라 곳간도 비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무작정 재정을 늘리는 건 쉽지 않다. 고용보험의 부담을 전 국민에게 지우는 것도 논란거리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고용보험료를 인상하는 거다. 고용노동부도 고용보험료 인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박화진 고용부 차관은 지난 2월 '2021년 업무보고'에서 "고용보험기금의 고갈을 막고 사업의 안정적 수행을 위해 올해 상반기에 기금 재정 건전화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재정 건전화 문제를 올해는 어떤 방식으로든 가닥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재정 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방법은 보험료율 인상으로 귀결될 수밖에는 없다"며 "적절한 시점에 보험료율 인상에 대해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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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를 반길 노동자와 기업은 없다.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보험료를 높이겠다는 것은 '사실상 증세가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일 수 있어서다. 고용보험기금 문제를 다음 정부에 넘기는 '폭탄 돌리기가 시작됐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고용보험료 인상할 수 있나

익명을 요구한 경제학자는 "현 정부가 고용보험기금 고갈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내년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표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고용보험료율 인상에 나서는 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실상 방법은 고용보험료를 인상하는 것밖에 없지만 실질적인 논의는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라며 "결국, 다음 정부에 고용보험기금 폭탄을 넘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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