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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중국은, 왜] 압수수색, 편집국장 체포…폐간 수순 밟는 홍콩 '반중매체' 빈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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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권부 동향 파헤치던 홍콩 매체

홍콩 경찰, '보안법 29조' 적용 급습

中, 민주화운동 탄압 이어 언론 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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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경찰이 빈과일보 사무실을 급습한 다음날인 지난 18일 인쇄소에 쌓여 있는 빈과일보. 〈사진=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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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7월 1일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 반환 이후 대륙의 이주민들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400만명 정도 하던 홍콩의 인구가 10년 만에 600만명을 넘어설 정도로 빠른 속도였습니다.

외부 인구 유입으로 홍콩의 부동산 가격은 점프에 점프를 했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 오르면 생활 물가부터 교육·교통·통신비까지 덩달아 춤을 춥니다. 생활고로 민심이 사나워집니다. 당국은 부동산 안정을 위해 신도시 개발에 나섭니다. 우리 정부와 비슷한 대응 수순입니다.

■ 홍콩의 대규모 신도시 청관오 지구

홍콩에선 카우룽 반도의 동쪽, 홍콩섬의 동부 대규모 주거지역과 마주보는 땅에 신도시를 개발했습니다. 청관오(Tseung Kwan O)지구입니다. 지하철을 연결하고 그 위에 대규모 주상 복합 시설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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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관오 지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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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홍콩 근무 시절 거주지도 청관오에 있었습니다. 출근지가 홍콩섬 한복판인 코즈웨이베이의 상업지구에 있어 지하철을 한번 갈아타야 했지만 가성비가 좋아 젊은 인구 유입이 많았던 곳입니다.

청관오에 사옥이 있던 홍콩의 애플 데일리(빈과일보)도 이런 젊은 분위기 속에서 뉴스를 쏟아내던 신문이었습니다. 주로 1면에 자극적인 사진과 제목을 달아 사건·사고를 보도하곤 해서 '시각적 테러'로 눈살을 찌푸리곤 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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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전 라이언 로 빈과일보 편집장이 경찰에 체포돼 이동하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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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중국 권력 핵심부 뉴스로 높은 위상

그래도 가끔 북한 관련 특종도 하고 중국 권부 깊숙한 곳에서 일어나는 권력 암투를 실감나게 보도하던 신문으로 기억합니다. 홍콩 주재 특파들에겐 계륵 같은 존재였습니다. 매일 아침 그 짧은 보고 시간에 안 볼 수도 없고 보자니 시간 낭비 같은 기분이 들곤 했기 때문입니다. 뭐랄까. 악동 같은 느낌이랄까 그랬습니다. 기억 속의 빈과일보는 그런 신문이었습니다.

이렇게 길게 개인적인 기억부터 짚은 이유가 있습니다. 17일자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보도 때문입니다. 참 만감이 교차합니다. 함께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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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홍콩 빈과일보 페이스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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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전 홍콩 빈과일보에 홍콩 경찰이 들이닥쳐 압수수색과 함께 임원 3명을 체포했다.청관오 빈과일보 본사는 경찰 병력 200명에 의해 봉쇄됐고 직원들은 일일이 인적사항을 확인한 뒤 직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회사 고위 관계자 5명을 체포했는데 편집국장은 자택에서 체포됐다죠. 일종의 기를 꺾는 강제 수사 방식입니다. 자택에서 체포될 경우 사진에 담긴 모습을 생각해보십시오. 부스스한 머리칼과 아무렇게나 편하게 입는 옷차림, 특히 가족이 받을 충격 등 때문에 황망한 표정으로 체포돼 나올 겁니다.

홍콩 경찰은 홍콩 보안법 29조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고 합니다. 보안법 29조는 '국가 안보에 관련된 정보를 외국에 제공하는 행위' 등 외국 세력과의 결탁을 금지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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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빈과일보 사무실에 들이닥친 홍콩 경찰들.〈사진=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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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 거리 메웠던 '보안법' 반대 시위

입법 당시 반대 시위로 홍콩이 들썩였던 논란의 그 조항입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처럼 범죄 규정을 적용하는 폭이 방대하기 때문이죠.

지난해 8월엔 지미라이(黎智英) 빈과일보 사주와 그의 아들 등 관계자 9명이 보안법 29조 위반 혐의로 체포됐습니다. 라이는 이미 불법 집회 가담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지난 4월부터 복역 중입니다.

중국 정부의 눈치를 봐야 하는 홍콩 기업들이 빈과일보에 광고를 게재하지 않아 경영난이 악화하던 차에 이번 경찰의 강제수사로 결정적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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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홍콩 록푸역 인근에서 학생들이 홍콩 자유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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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개혁·개방의 길을 걷기 전 죽의 장막 시절, 홍콩은 중국 뉴스를 보도하는 최전선이었습니다. 최전선 답게 친중·반중·서구적 시각의 언론이 제작각 시각과 관점을 뽐내며 경쟁했습니다.

반중·서구적 관점의 홍콩 신문·방송들은 씨줄과 날줄을 잇는 거미줄 네트워크를 구축해 대륙의 권력 중심에서 일어나는 태풍을 잡아내곤 했습니다. 친중 매체라고 해서 중국공산당의 선전선동만 쏟아내는 게 아니었습니다.

친중 매체도 다 용도가 있었습니다. 중국 현지의 미묘한 권력 지형의 변화를 암호처럼 발신했고 이 암호를 읽을 수 있는 사람들에겐 어느 신문·방송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정보원이었습니다.

하지만 1997년 주권 이양 24년 만에 홍콩 언론의 위용은 한없이 찌그러지고 뭉개졌습니다.

■ 사주 구속 후 폐간 수순 밟는 빈과일보

빈과일보는 그냥 밟아버린 케이스고 대륙의 생각,입장과 다른 관점을 발신하던 언론은 주인을 바꿔버리는 방식으로 장악해왔습니다. 중화권 제1의 위성방송 '펑황(鳳凰·Phoenix) TV'와 홍콩 4대 일간지 중 하나인 싱다오 일보가 친중 기업에 의해 인수되면서 색이 바랬습니다.

홍콩이 중국을 관찰하는 전망대로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자유 언론 때문입니다. 10년 전 홍콩과 중국의 선전을 잊는 로후 체크포인트를 통해 중국 취재를 다녀올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선전도 개혁·개방1번지라는 명성에 걸맞게 초특급으로 성장한 메트로폴리탄급 도시입니다. 편의 시설도 완비됐고 교통도 편했습니다. 도시 환경도 청결하게 잘 관리됐습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심리적으로 편하지 않았습니다. 개방과 투명이 아닌 사회주의 특유의 계획과 감시의 사회 분위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일정을 마치고 홍콩으로 돌아오면 늘 되뇌이던 말이 있었습니다.

"도시의 공기는 자유롭다."

자유의 맛, 그 맛을 결정해주는 요소들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투명한 행정과 예측 가능한 법치주의. 그리고 자유 언론의 존재였습니다. 이제 자유 언론 시대를 상징했던 신문 방송들이 시나브로 대륙의 그늘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제 중국을 보는 창은 대륙과 연결된 홍콩이 아닌 홍콩 외부에서 찾아야 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홍콩의 영화와 번영이 황혼에 접어들고 있다는 걸 이번 언론 사태만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게 있을까요.

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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