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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軍재입대’ 차범근 “獨팬들이 죽이러 간다고”‥박지성♥김민지 ‘반지’ 고백 (ft.대화3) [어저께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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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

[OSEN=김수형 기자] ‘대화의 희열3’에서 차범근이 재입대부터 독일에서 크게 다쳤던 일화를 언급, 박지성은 김민지와의 프러포즈 비화를 전했다.

17일 방송된 KBS 2TV 예능 ‘대화의 희열 시즌3’에서 박지성, 차범근이 출연했다.

이날 박지성과 함께 차범근이 함께 소환했다. 차범근은 1979년엔 테라사 수녀님과 함께 세계 4대 상승세 인물로 함께 오르는 등 독일에서 특히 많은 ‘차붐’을 일으키며 사랑을 받은 바 있다.

그때 당시 어떻게 독일 축구를 접했는지 묻자 그는 “국가대표시절, 분데스리가 하이라이트를 방송에서 봤다, 내가 국가대표 시절, 월드컵이란 큰 타이틀을 가져야하는데 기회만 되면 월드컵 출전에 대해 고배를 마셨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비난과 야유도 많이 받아, 대표 선수 7년하며 너무 괴로웠다,한국 축구의 문제점이 뭔지 독일가서 배워오고 싶었다”면서 당시 우리나라는 말 그대로 맨땅의 축구하던 시절이다”고 운을 뗐다.

독일에서 러브콜을 받은 일화를 전했다. 심지어 독일이 분단되어있던 시절에 그는 편지로 ‘서독’ 선수 제안 받았다고. 차범근은 “대표팀 전략이 약해져 안 된다고, 차범근이 독일가면 열기가 식는다고 했다, 국부 유출이라고 했다”며 출국이 엄격하게 제한되던 시절이라 했다.

이와 달리 모두 박지성이 맨유갈 땐 국위선양이던 분위기였다면서 “이제 그 다음엔 선수 개인의 성취라고 말해, 그 전례를 만들어주셨다”며 놀라워했다.

차범근은 독일에서 입단테스트 당시 30분 훈련하고 계약했다고도 전했다.이에 모두 “허벅지 둘레 31인치 아니냐, 누구라도 통과했을 것”이라 농담, 차범근은 입단하자마자 실력으로 이를 증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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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모두 “데뷔 전 이후 서독 전체가 난리가 났다, 단 한 경기로 비밀병기가 됐다”면서 아시아의 가장 훌륭한 선수라 극찬을 받은 일화를 전했다.

이와 달리 차범근은 “너무 긴장했던 경기, 자신감을 갖고 뛰었지만 돌파를 하고 가는데 깊은 슬라이딩 태클을 보고 공포감을 느껴, 단 번에 기량 차이를 느꼈다”면서 “ 잘 뛰고 있으면서도 거대한 두려움을 느꼈다”며 심지어 활동한 10년 내내 그 분데스리가에서의 공포감을 느끼며 살았다고 말해 놀라움을 안겼다.

차범근은 “한국 축구와 내 상황이 절박했기에 나를 증명해 살아남아야했다, 경기를 한 기억이 정말 안 난다”면서 그만큼생존과 연결됐던 데뷔전이라 했다. 차범근은 “한국 축구를 위해, 내 자신을 위해서도 살아남아야하는 절박함이 있었다”며 눈부신 활약으로 팀 승리까지 이끌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군 재입대에 대해 빼놓을 수 없었다. 당시 한국에 여권을 갱신하러 왔다는 그는 공항 도착하자마자 군 입대를 하게 된 일화에 대해 입을 열었다.

차범근은 “마음 아픈 얘기”라며 운을 떼면서 “복무 기간이 가장 길었던 공군, 아무래도 선수 유치가 쉽지 않아, 날 첫 케이스로 영입하며 이를 줄여주기로 했다. 35개월에서 27개월이었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공군복무 대령이 옆에 있어,가급적 아무말 하지 말라고 했고, 기자회견 끝나자마자 군대 재입대했다, 이미 일찍 제대해준다고 했던 상황”이라면서 “독일에서 활약이 한국에서 화제가 되면서 군인이 어떻게 독일에서 뛰냐는 질문이 생겨, 국내에서 형평성 논란이 불거졌다, 35개월을 안 채운 특혜논란으로 약속이 없어졌고, 다시 5개월을 더 채워야하는 상황까지 왔다”고 말했다.

당시 라이징 스타가 다시 군인이 된 아이러니한 일화였다. 차범근은 “다시 내부반으로 들어갔다, 떠들썩해서 그 안에서 나오지 못했다”면서 “그래도 독일에서 그 한 경기는 내게 희망이었다,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경기, 5개월이 힘들었지만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과 꿈이 생겼다”며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봤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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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동시 독일에서도 난리났다고. MC들은 “독일 대사관에서 외교부에 공문을 보내, 차범근을 보내지 않으면 한국축구 위상이 떨어질 것이라 서독으로 다시 보내달라고 발칵 뒤집었다”고 하자, 차범근은 “ 5개월동안 상황을 비관했다면 독일 못갓을 것, 독일로 돌아가기 위해 5개월관 열심히 더 노력했다”면서 시련을 희망으로 뒤집어,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고 했다.

제대후 다시 독일행을 택한 차범근. 이 때부터 차붐의 신화가 시작됐다. 우승까지 이끌며 승승장구했지만 선수 생활을 위협받기도 했다고.

차범근은 “참옥하다”고 입을 열면서 “경기 중 뒤에서 슬라이등 공격당해,요추가 뿌러져 바로 병원으로 이송됐다, 의사가 축구를 못할지도 모르겠다고 해 독일 전역을 떠들썩하게 됐다”며 아찔했던 상황을 전했다.

차범근은 “심지어 분노한 팬이 반칙한 선수를 죽이러 간다고해, 구단에서도 고소도 준비했던 상황,나도 처음 감정을 추스리지 못해 만감이 교차됐으나 시간이 지나나 마음이 가라앉았다”면서 “구단에서 소송서류를 가져왔을 때 사인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이후 레버쿠젠가서 그 친구를 찾아갔고 오히려 친구가 됐다”며 용서는 더 큰 사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심지어 인간성까지 독일전역을 홀릭한 차범근은 “병원에 꽃을 놔둘 곳이 없어 못 받았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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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프랑크푸르트에서 코치자리를 준다고 했을 당시 한국행을 택한 그는 “가족들이 다 말렸음에도 다 포기하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독일을 떠나며 한국 팬에게 한 약속이 있기 때문.한국축구를 위해 해야할 숙제가 있었다”며 한국 축구를 향한 사랑 전했고, 모두 “역시 선구자”라며 감동했다.

한편, 이날 박지성은 선수시절 아버지가 든든한 조력자였으나 지금은 아내라면서 프러포즈에 대해선 “크리스마스에 편지썼다축구센터 작은 박물관에 데려가, 밤에 둘이 사진 찍은 것들을 다 붙여놨다”면서 “아내 앞에서 직접 쓴 편지를 낭독하고 반지와 함께 프러포즈했다”고 떠올렸다.

/ssu0818@osen.co.kr

[사진] ‘대화의 희열3’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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