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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단독] “페미성향 강해 올바른 예술 의문”…정부 예술지원사업에 돌아온 피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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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지난 11일 신민 작가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다원예술 지원사업 선발 과정의 문제를 지적한 글. SNS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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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만 강조하는 페미니즘 성향이 강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올바른 예술을 할 수 있는 시각을 가지고 있을지 의문이 든다. 잘못된 가치관으로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보다 예술을 무기로 사용하는 것은 없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의 ‘2021 다원예술 활동지원 리부트’ 사업(다원예술 지원사업)에 지원한 작가에게 돌아온 1차 예비심사 동료 평가 피드백 중 일부다. 이 사업은 지원자들이 심사자가 돼 익명으로 동료그룹을 평가했는데, 이 과정에서 혐오 표현이나 모욕적인 발언 등이 담긴 피드백이 작가들에게 그대로 전달돼 논란이 일고 있다.

17일 예술계에 따르면 다원예술 지원사업은 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태로 2015년 폐지됐다가 올해 6년 만에 부활한 사업으로, 여기에 선발된 작가는 500∼3000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기존 예술장르 중심 지원체계에서 벗어나 형식이나 조건에 대한 제약 없이 설계하고 실행하는 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 목적이다.

앞서 진행된 1차 예비심사에서는 지원자가 직접 심사위원이 돼 동료 그룹을 평가했고, 예술위는 지난 11일 예심 결과를 통보하면서 각 위원(지원자)들이 적은 적정배정액과 종합의견 기재 내용을 원문 그대로 전달했다. 문제는 일부 위원들이 익명성에 숨어 혐오와 차별, 모욕적인 발언 등을 심사 의견으로 적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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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업에 여성노동자 관련 프로젝트를 신청한 신민 작가의 작품에 대한 피드백에는 “극단적으로 한쪽 성향이 강한 사업에 지원을 해줄 필요는 없다”, “여성노동자만 소외된 아픔을 겪는 것은 아니다”, “요즘 문제시되는 젠더 이슈를 다룬 듯한데 제발 여자, 남자로 가르지 말고 니 편 내 편을 가르지 말라”는 내용이 있었다. 한 심사위원은 종합의견에 “다원예술의 의미를 전혀 모르는 페미니스트로 보임”이라는 한 줄을 적고 적정배정액을 ‘0원’으로 적었다. 또 신 작가가 활동 장소를 서울로 쓴 것을 두고 “서울팀이라 역차별 점수를 부여했다”고 쓴 사람도 있었다.

신 작가는 지원서에 본인을 “그동안 시각 미술을 통해 강력한 자매애로 힘듦을 버티며 일하는 여성 서비스 노동자에 관해 얘기해왔다”고만 소개했을 뿐 지원서 전체에 ‘남성’이나 ‘남자’라는 단어는 등장하지조차 않는다. 단지 여성 노동에 관한 프로젝트를 제출했다는 이유만으로 ‘편 가르기’라는 등 비합리적인 공격을 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지점이다.

이 내용을 전달받은 작가들은 모욕감과 심의과정에 불공정함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신 작가는 “다양한 지원자들에게 기회를 주고 서로 의견을 공유하면서 민주적 방식을 도모하기 위한 취지의 사업이라고 이해하고 지원했는데 필터 없이 혐오표현이 적혀있는 것을 보고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면서 “주변 동료들도 지원서 내용과 관계없는 성차별적이고 인권침해적인 언어폭력성 피드백을 받고 상처를 입었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사업에서는 동료평가를 하더라도 그사이 쿠션이나 필터링 역할을 할 수 있는 전문가가 있고, 대면 심사를 해서 폭력적인 발언을 면전에 대고 할 수 없다”며 “기본적인 감시장치나 보호장치도 없이 비대면으로 익명 평가를 하다 보니 마치 피드백이 포털사이트 댓글처럼 느껴졌다”고 덧붙였다.

예비심사가 동료평가 100%로 이뤄지기 때문에 차별적인 의견도 심사 불이익으로 연결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국민신문고 등을 통해 7건 이상 접수된 것으로 파악됐다. 예술위 측은 부적절한 발언에 대해 유감을 표하면서도 이를 필터링하기는 어려웠다는 입장이다. 예술위 관계자는 “동료평가가 원문 그대로 공개되는 심사방식에 대해서는 지원자들이 동의한 부분”이라면서 “일부 발언을 필터링하거나 해당 평가자를 색출·제재하는 방식은 검열이나 또 다른 형태의 폭력과 차별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심사는 지원자 본인 사업에 대해선 평가할 수 없게 배정해 무작위로 그룹을 구성했고, 평가점수 편차에 따른 불이익 방지를 위해 통계적 기법을 적용해 공정하게 이뤄지도록 했다”며 “이번에 제기된 문제에 대해서는 차후에 보완해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유지혜 기자 kee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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