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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자폐아, 그들의 입을 틔울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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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아 부모의 눈물겨운 투쟁기

한겨레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 자폐는 어떻게 질병에서 축복이 되었나

존 돈반·캐런 저커 지음, 강병철 옮김/꿈꿀자유·4만원


‘자폐적’이라는 말 또는 자폐증은 1942년 전에는 없었다. 부모와 눈길을 마주치지 않는, 옷 입기를 싫어하는, 애~애~ 괴성을 지르며 뛰어다니는, 무엇인가 계속 두들기는 아이. 그냥 ‘바보’나 ‘지진아’로 불렸다. 미국의 한 소아정신과 의사가 어린이 고객의 부모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 이름을 붙였을 때 바보 또는 지진아였던 아이는 비로소 자폐아가 됐다.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는 무지와 혼돈에서 자폐증상을 분리하여 독립적인 이름으로 규정하고, 집안에 유폐된 자폐아를 해방시켜 학교와 사회로 내보내기에 이른 80년 역사를 정리했다. 말이 그렇지, 실제로는 자폐아를 둔 부모의 눈물겨운 투쟁기다. 800쪽을 훌쩍 넘는 베개 책이다. 두 지은이는 모두 티브이(TV) 방송 저널리스트. 한 명은 큰아들이 자폐아이고, 또 다른 한 명은 오빠가 자폐인 아내를 두었다. 쌓인 말이 얼마나 많고 할 말이 얼마나 많겠나. 자폐인의 부모들이 혀와 입을 얻은 셈이다.

우생학이 위세를 떨친 1940년대, 미국의 경우 자폐아는 가정과 사회의 정상화를 위해 분리가 권장됐다. 이들은 병원이라는 이름의 수용소에서 조현병 환자들과 뒤섞여 살았고 죽어서야 그곳에서 풀려났다. 물론 ‘치료’ 또는 ‘정상화’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 1950년대 자폐아의 닫힌 입을 틔우려 엘에스디(LSD)를 먹였다. 황홀경을 경험하면서 자폐에서 깨어날지 모른다는 기대였다. 60년대 초반까지 그에 관한 논문이 1만 편이나 된다고 한다. 실험이 중단된 것은 엘에스디가 마약으로 널리 쓰이며 구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소몰이용 전기충격기 사용은 압권이다. ‘이상행동’을 보일 때마다 찌지직~ 고통을 줌으로써 이를 멈추게 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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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아의 부모는 자기 탓이 아닌가 하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주위 시선도 마찬가지다. 1948년 <타임>은 자폐아를 ‘유아 조현병’이라 하고 그 엄마, 아빠는 “자녀를 거의 이해하지 못한 채 항상 냉담하고 애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이라 썼다. 그들이 ‘냉장고’라는 누명을 공식적으로 벗은 것은 1974년. 자폐가 유전자(DNA) 이상에서 유래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다. 쌍둥이 가운데 한 명 또는 두 명이 자폐증인 사례연구를 통해, 두 명 모두 자폐인 경우는 일란성이고, 이란성 쌍둥이 중에 두 명이 모두 자폐증인 경우는 없음이 밝혀진다.

백신 부작용설 전말이 흥미롭다. 한때 홍역, 볼거리, 풍진 등 세 가지 질병을 한 방으로 예방하는 백신 엠엠아르(MMR)가 자폐 원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백신 속 바이러스와 오염방지를 위해 첨가한 수은성분이 지목됐다. 이 논란은 MMR 주사가 중단됐는데 자폐아 통계가 되레 늘어나고, 괴담 유포자가 MMR 대체 백신 특허출원자임이 밝혀지며 종식됐다. 요즘 코로나19 백신 괴담은 버전을 달리한 에피소드다.

자폐아동 공교육은 비교적 최근에 시작됐다. 미국의 경우 1990년 개정된 장애인교육법에 자폐를 장애의 한 범주로 명시했다. 법 따로 현실 따로는 어디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부모들은 교육청을 상대로 끈질긴 소송을 벌여 전문치료사가 시행하는 교육을 충분히 받기에 이르렀다. 한국은 어떤가.

임종업 <뉴스토마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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