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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MT시평]'쇼 법과학자'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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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신민영 법무법인 예현 변호사]
머니투데이

신민영 변호사


1990년대 DNA검사기법이 도입된 후 수감자들의 소송이 잇따랐다. DNA검사를 통해 자신의 결백을 밝혀달라는 청구였는데, 요청을 받아 검사해보니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범인의 DNA와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이 달랐던 건수는 400건이 넘었다. 엉뚱한 사람을 잡아다 가둔 것이었다.

오판의 원인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수사관의 자백강요, 피해자의 착각, 거짓제보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 가운데 두 눈을 의심케 하는 네 글자가 있었다. 바로 과학수사였다. 오판이 왜 발생했는지 연구가 뒤따랐는데, 한 연구에 따르면 이들 오판 사례 중 약 60%에서 과학수사가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했다고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과학수사는 인간의 편견에 맞서 오판을 막아내는 존재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현실의 과학수사는 오히려 오판에 일조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좀더 파고들어가 보니 '과학'수사기법의 상당수는 과학과 전혀 무관한 기법들이었다. 일례로 현장에서 발견된 머리카락과 용의자 머리카락의 단면을 비교해 동일인 여부를 따지는 '모발비교법'의 경우 당시 광범위하게 사용됐으나 알고 보니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이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당시에도 이 기법이 말이 안되는 기법임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올해 44세를 맞이한 필자의 머리카락만 하더라도 정수리와 뒤통수의 굵기가 다르다.) 그 밖의 이빨자국의 모양을 비교하는 '치흔비교', 발자국의 모양을 비교하는 '족적비교' 역시 그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에서 벌어진 화성연쇄살인 제8차 사건에서 법원은 '방사성동위원소 분석기법'을 근거로 윤모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였다. 하지만 진범은 윤모씨가 아닌 이춘재였다. 뇌피셜(공식적으로 검증된 사실이 아닌 개인적인 생각을 뜻하는 신조어)이 '과학'이라는 도깨비 감투를 쓰고 사법부의 눈을 속인 것이었다.

실제 사건들을 다루는 시사프로그램을 보면 '과학'의 이름으로 제작진의 결론을 뒷받침해주는 '전문가'들이 많이 나온다. 이들의 전문성에 대한 검증은 충분히 이뤄지고 있는 걸까. 이들이 내는 '전문'의견은 과학적으로 검증된 기법에 기초한 것일까.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실제로 이들이 했던 주장들 중 상당수는 나중에 밝혀진 사건의 진상과 다른 경우가 많았다. 방송에 단골 출연하던 한 음향 전문가의 경우 그가 주장한 기법에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 얼마 전 밝혀지기도 했다.

한때 쇼닥터가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의사신분으로 TV에 출연해 검증되지 않은 시술을 홍보하거나 건강보조식품을 추천하는 이들에 대해, 잘못된 건강정보를 퍼뜨린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 그저 재미로 듣는 얘기라고 하기에는 현실에 끼치는 해악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과연 이런 일이 쇼닥터에만 국한된 것일까. 시사프로그램에 나오는 전문가들 역시 유명세를 바탕으로 각종 자문위원, 법원의 전문심리위원으로 실제 사건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직업상 이들의 의견서를 받아볼 때가 종종 있는데 한숨이 날 때가 많다.

신민영 법무법인 예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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